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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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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버지의 학원 일요휴무제

등록 2019-10-09 04:08 수정 2020-05-02 19:29

언론사는 근무시간이 일반 기업보다 많은 편입니다. 20여 년 전 저의 수습기자 시절을 떠올려보면, 주 6일을 일했고 토요 당직이 돌아오면 주 7일 일했습니다. 하루 3시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일(언론사에서는 수습기자 ‘교육’으로 부릅니다)을 했습니다. 수습을 떼고도 한동안 주 6일을 일하고 야근한 다음날도 일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주 6일 하루 21시간, 산술적으로 주 126시간을 일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생산적으로 일했는지 혹은 교육을 받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요즘은 신문사 수습 교육도 주 5일, 52시간 내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입니다.

2004년 단계적으로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됐을 때 경제에 큰 무리가 따를 거라는 ‘호들갑’이 있었지만, 요즘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제 다시 주 6일 근무제로 되돌리는 건 어려워 보입니다. ‘거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된 셈입니다.

어른들한테는 주 5일 근무제가 이렇게 당연한데, 학생들에게는 ‘주 6일 학원제’ 주장조차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전 사회적으로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오히려 학원 주말반 편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이 기막힌 역설과 부조리의 교육 현실 속에서 학원 일요휴무제 주장이 ‘논쟁’으로나마 번질 수 있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이 김진우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대표입니다.

“딸, 아들은 휴일에 학원에 안 보내셨나요?” 제가 김 대표에게 했던 ‘결정적 질문’입니다. 만일 김 대표가 “저는 어쩔 수 없이 보내긴 했지만…”이라고 답했다면 저는 제1281호 기사를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자기 자녀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이상주의적인 잣대’로 남의 자녀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이 요즘처럼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없으니까요. 김 대표의 ‘말’로도 모자라 저는 딸 김평화씨까지 만나 ‘확인’을 했습니다. 중·고교 시절 내내 휴일에 쉬고도 평화씨가 ‘잃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평화씨는 애초 ‘스카이’(서울·고려·연세대)가 꿈인 적이 없었고, 좋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총신대 유아교육과에서 원했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이름처럼 평화로웠던 평화씨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결정적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학원 일요휴무제 기사를 쓴 기자는 일요일에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습니까?” 다행히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큰 걱정 없이 주말 내내 놀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5년 뒤에도 제가 똑같이 답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그럴 것 같지만, 저 역시 불안하고 불완전한 존재라 몇 년 뒤 일에 ‘100%’ 장담할 자신은 없습니다. 다만 학원 일요휴무제가 도입돼, 굳이 고민하지 않고도 모든 부모가 일요일에 당연히 아이를 쉬게 할 수 있도록 제 자리에서 열심히 기사를 쓰겠습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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