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펜을 들고 잔뜩 집중한 채 무언가 적고 있는 누군가 있다. 그의 펜이 향하는 곳이 연분홍 잡지였다면. 그러다 문득 손을 꼽아 숫자를 헤아렸다면. 그리고 슬몃 미소 지었다면. 그 사람, 독자 최원영(33)씨였을지도 모른다. ‘한가위 퀴즈큰잔치’에 응모한 최씨 엽서에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상 깊었던 기사, 필자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 다뤄줬으면 하는 주제, 하고 싶은 말까지. 정답과 함께 21이 듣고 싶었던 모든 질문에 답변이 빼곡하다.
한가위 퀴즈큰잔치 응모 엽서를 보고 이번주 단박인터뷰 주인공으로 모시고 싶었다. 영광이다.
퀴즈는 어디서 어떻게 푸셨나. 원래 책상에 앉아 작정하고 집중해서 풀어보려고 했는데 집중할 시간이 잘 안 났다. 응모 마감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풀었다. 다 풀고 바로 우체국에 가서 보냈다. 이번이 첫 응모다. 몇 년째 을 보고 있지만, 원래 이런 데 당첨되는 사람이 아니라, ‘되겠어?’ 하면서 명절 퀴즈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번에 당첨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책이라도 한 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희망을 가지고 도전해봤다.
급하셨는데도 에 하고 싶은 말을 빽빽하게 적어주셨다. 의료와 건강권 관련 문제를 많이 다뤄달라고 하셨는데. 의료 이슈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잠깐 휴직 중이지만 9년차 간호사다. 병원에서 노동조합 활동도 하고 있다. 그래서 보건의료, 의료 노동자의 처우에 관심이 많다. 고된 부분이 있지만 좋은 일이다. 운 좋게 환자 수가 많지 않은 병동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진심으로 환자한테 도움이 되고 싶고,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마음, 그때 느꼈던 보람이 참 인상적이었다. 근무 여건만 나아진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에서 인상 깊게 읽은 기사는? 아부는 아니고, 편집장님 ‘만리재에서’가 참 좋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8년 후를 다룬 기사(제1279호)를 보면서, 코호트 조사하듯 이후를 추적해본 것이 무척 좋았다. 연구기관처럼 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앞으로 조명받지 못했어도 중요한 이슈와 그것이 미친 영향을 장기간 살펴보는 기사를 계속 시도해주면 좋을 것 같다.
퀴즈 출제 위원장에게 한마디? 문제 내시느라 너무 고생하셨다. 정답을 다 합쳐서 ‘21’인 것 보면서, ‘아 이건 깨알 같은 섬세함이네’ 생각하면서 다 풀고 다시 한번 슬며시 웃었다. 근데 정답 ‘21’ 맞죠?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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