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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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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10-08 03:56 수정 2020-05-02 19:29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기사가 될 것 같다. 조국을 지지하는 분도 지지하지 않는 분도, ‘서초동 촛불’에 참여한 분도 참여하지 않은 분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도, 자유한국당 지지자도….

이승준 기자의 푸념이다. 마감이 벅찰 때마다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이번호 표지 기사를 쓰면서는 더하다. 머릿속이 복잡한 탓인지 끽연을 위해 자리 이탈 횟수도 잦다. 한 개비에 원고지 한 장이나 쓸까.

그의 맞은편 책상에서는 하어영 팀장이 참여연대 인사와 통화 중이다. “혹시 오해가 없도록 전화를 드렸다. 사실 김경율 회계사도 만났는데, 기사 쓰기 전에 확인….” 한참 불편하게 통화하더니 상대는 기사화에 반대했다. 전화를 끊은 뒤 그의 입에서 연신 한숨이 새나온다. 마음이 산란한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주위를 서성인다. 편집장 옆에 앉은 이춘재 팀장도 마감이 신통치 않다. 이유를 물어보니, 평소보다 힘들단다. 이 글을 쓰는 순간 뉴스룸 풍경은 우리 사회와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조국 사태’를 다루는 기사는 좋게 말해 신중하지만, 거칠게 말해 자기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를 의식한 독자 친화적인 기사를 넘어서, 특정한 팩트(사실)는 소거되거나 어떤 관점은 제거되면서 기사 쓰기가 제한된다. 예민한 소재여서 표현 하나도 조심스럽다.

진보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이제 조국 사태를 빼놓고 기술하기 어려울 것 같다. 꽤나 오랫동안 안과 밖, 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구분짓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진보는 ‘안’, ‘나’, ‘우리’ 내부에 닥친 분열에 당황했다. 차이가 부각되면서 정체성을 둘러싼 내부 갈등, 대립을 겪고 있다. 참여연대도 경실련도, 정의당도, 노동계도, 교수모임도, 교사단체도… 심지어 이 글을 쓰는 기자가 소속된 한겨레신문사마저.

지지와 후원, 응원을 주고받던 관계에도 불신이 번졌다. 정당은 당원, 시민사회단체는 회원, 언론은 독자와의 관계에 긴장한다. 탈당, 탈퇴, 절독 행렬 앞에 정당, 시민단체, 언론은 목소리가 튈까봐 자신을 검열한다. 독자와 독자, 회원과 회원, 당원과 당원끼리도 서로 다름을 확인하며 실망한다.

조국 사태는 오랜만에 경험하는 진보의 원심분리기다. 1987년 대선에서 ‘양김’(김대중·김영삼)이 분열했을 때와 비슷할까.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의혹과 사실에 대한 판단, 각각의 윤리적·도덕적·사법적 잣대와 그 우선순위의 차이는 하나로 겨우 붙어 있던 진보를 분열시켰다. 어쩌면 하나의 진보는 애초 없었는지 모르나, 적어도 ‘반(反)보수’ 연대로 뭉쳤던 진보는 조국 사태로 여지없이 금이 갔다. 상처의 기억은 꽤 오래 각인돼 남을 것이다.

지난주 뉴스룸은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검찰의 조국 수사가 이번주 분수령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고, 표지로 다루기로 했다. 이른바 ‘갈라진 진보’를 주제로 기획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불편한 주제를 어떻게 다룰지, 또 뒷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비겁한’ 편집장은 2주 전 제1280호 ‘만리재에서’ 칼럼을 두 개 준비했다. 동료들의 의견을 구한 뒤 ‘자기 검열’이란 제목으로 쓴 초안을 버리고 ‘검찰공화국의 비극2’를 내보냈다. 지난 주말 서초동 촛불은 표지의 방향을 다시 바꿨다. 촛불의 의미를 짚어야 했다. 그새 ‘안’ ‘나’ ‘우리’의 간극은 검찰개혁이란 모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제 앞에서 다소나마 봉합되고 좁아졌다. 어쩌면 오늘 예상을 뛰어넘는 보수 정당·시민사회단체·종교단체의 광화문 시위는 그 촉매제가 될지 모른다.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진보 내부에서 간극과 분열, 갈등을 낳았던 ‘질문’들에 대답해야 한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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