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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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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양심세력도 기억해주세요

등록 2019-08-10 05:36 수정 2020-05-02 19:29

가마솥 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24일 일본 오사카에 갔습니다. 2월14일 도쿄에서 열린 강제징용 대법 판결 설명회에서 만난 자이마 히데카즈 변호사 등 일제 과거사 관련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분명한 상황에서 일본 변호사들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자이마 변호사는 일본 법원에 냈던 강제징용 소송이 패소하자 한국 변호사들에게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벌이자고 아이디어를 낸 분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한국 변호사들한테서 ‘최악의 한-일 관계 원인 제공자’라는 우스갯소리를 듣습니다.

자이마 변호사는 한국의 반일 감정과 관련해 기자에게 ‘뜻밖의’ 얘기를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일본인들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는 아베 정권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아베 정권과 일본인을 구분해서 대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일본 국민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렸습니다. 일본의 ‘양심세력’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초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협의를 하자는 아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합니다. 아베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때 만났다면 지금처럼 반한 감정이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자이마 변호사뿐 아니라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아무런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한국 땅에서 안전하게 일본을 비난할 수 있지만, 일본에는 100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일본 우익의 공격에 직접적인 표적이 된다. 이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해달라.” 일본을 공격하기 전에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을 먼저 생각해달라는 말입니다.

일본에는 한국인 과거사 피해자를 돕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이들이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는 것과 일제강점기 상황에도 매우 박식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맹목적인 반일 감정에 휘둘려 이들의 존재에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기사를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전에 일본어부터 제대로 배워야겠지요.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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