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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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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소설이 아니었습니다

등록 2019-08-08 02:24 수정 2020-05-02 19:29

제1273호 표지이야기 ‘#오빠 미투’가 보도된 뒤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 전자우편으로 온 질문과 의견, 칭찬과 비판 감사합니다. 수천 개 댓글과 전자우편에 일일이 답변드릴 수 없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렇더라도, 몇 가지는 지면을 통해 꼭 설명과 소개가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날 새벽 오빠가 내 방에 들어왔습니다’ 기사에 관한 오해부터 해명하겠습니다. 이 기사에는 “*‘오빠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1인칭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라는 각주가 달려 있었습니다. ‘재구성’이라는 표현이 충분치 않아 일부 독자가 오해하셨던 같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안 쓰고 소설을 썼다”는 댓글이 대표적입니다.

이 기사는 오빠 성폭력 생존자와 세 차례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서 쓴 인터뷰 기사입니다. 다만 생존자분이 자신이 겪은 일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기사의 성격상, 인터뷰보다는 자기고백 형식이 더 적절할 것 같았습니다. 생존자분에게 원고를 부탁하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전문 글쟁이가 아닌 일반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를 통한 취재 기사를 쓰되, 인터뷰어의 질의와 인터뷰이의 응답 대신 1인칭으로 기사를 재구성하게 된 이유입니다.

짧은 지면 안에 최대한 인터뷰 취지를 담아내기 위해, 기자는 생존자의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을 도왔습니다. 기사에 나오는 내용 중 단 한 단어도 기자가 자의로 보탠 말이 없습니다. 모두 생존자분의 입을 통해 나온 증언입니다. 기자는 중복되거나 사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분을 덜어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추린 내용을 토대로 순서를 정리하고 문장을 가다듬고 1인칭으로 바꾸는 것 정도가 기자의 몫이었습니다. 기사가 출고되기 전 생존자께 여러 차례 초고와 수정본을 보여드렸습니다. 완성본 역시 최종 허락을 받아 출고됐습니다. 기사가 완성된 뒤 생존자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짜 제가 말한 그대로 기사가 나와서 너무 놀랐어요.”

‘오빠 성폭력’ 기획의 취지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생존자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피해자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피해를 당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더 이상의 피해를 멈추게 할 용기를 드리고도 싶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익명 댓글을 다는 것으로나마 ‘#오빠 미투’에 동참하신 분이 많았던 것은 고무적입니다.

기사의 또 다른 취지는 오빠 성폭력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을 바꾸고 예방 교육을 강화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직 소기의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만 지난호 보도 뒤 에 추가 제보를 해주신 또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각성’의 계기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조만간 후속 보도로 찾아뵙겠습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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