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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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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짜뉴스 제조자인가

편집장의 편지
등록 2019-07-16 01:33 수정 2020-05-02 19:29

“가짜뉴스란 뭔가?” 가짜뉴스 전문인 변지민 기자에게 물었더니 곧바로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란 답이 왔다. 그 기준을 적용하니 다름 아닌 가짜뉴스를 비판하던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가짜뉴스 전파자였다. 따져보니 한두 건이 아니다.

2년 전 디스커버팀에서 에디터로 있을 때다. 그해 9월5일치 신문에 “권성동 의원 비서관, 강원랜드 부정청탁 입사”를 첫 보도로 시작해 ‘“권 의원 비서관 특채 기관들… 상임위 피감기관이었다” “‘권성동 쪽 채용 청탁 10여 명’ 강원랜드 문건으로 확인” “강원랜드 합격한 권성동 인턴비서, 원래는 탈락 대상자였다”… 세어보니 가짜뉴스 기사가 수십 건이다.

법원과 검찰청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힘 있는 의원의 의혹을 다루는 기사라 팩트(사실)에 터 잡아 엄밀하게 쓰긴 했다. 소송 등 되치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중을 기했다. 읽는 독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의혹을 단정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물론 당사자인 권 의원 쪽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사실관계 소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명예훼손적인 질문을 삼가달라거나, 아무 관련이 없다는 태도였다. 계속된 보도에 검찰은 덮었던 사건의 재수사에 나섰고 끝내 그를 기소했다. 방탄 국회가 엄호하면서 그는 구속을 면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가슴 시리게도 6월24일 강원랜드 채용 비리 탐사보도는 법적 사실을 왜곡한 가짜뉴스로 판별났다. 1심 법원은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수사권, 아니 조사권조차 없는 기자들이 진실을 드러내려 최대한 취재해 쓴 기사들은 결국 가짜로 드러났다. 인내심을 갖고 117쪽짜리 1심 판결문을 읽어봤으나, 그 끝은 권 의원에 대한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못박혀 있었다. 판결문은 곳곳에서 청탁했다는 의심이 가기는 하나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거나, 의원한테 청탁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의 “진술의 신빙성”을 부정했다.

그는 무죄였다. 재판이 끝난 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빠져나오는 그는 연신 달뜬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에게도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앞으로 다시는 정치검찰에 의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탄압이 없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를 법정에 서게 한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정치검찰을 추동한 정치언론에 불과했던가. 8일 뒤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는 정지된 그의 당원권을 모두 회복해줬다. 그는 다시 당직 자격을 얻었다. “결백이 증명되었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당과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도 밝혔다.

그때 썼던 기사들은 그러면 뭔가? 보도로 공평하지 못한 채용 비리를 청산해야 한다는 여론이 크게 일었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섰다. 기자들은 권위 있는 한국기자상도 관훈언론상도 탔다. 그런데 기사가 억울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운 꼴이 됐다. 이제 상패는 반납하고 그에게 사과해야 할까? 그때 조일준·임지선·최현준과 함께 주무를 맡은 임인택 기자는 그럴 뜻이 없는 듯했다. “너무 헐렁해요, 법이… 김성태는 되겠어요?” 권성동 의원도 면죄부를 받은 마당에 딸의 KT 부정 채용 혐의를 받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법적 심판을 제대로 받겠냐는 냉소였다.

7월9일 검찰의 항소로 권성동 의원 사건은 2심인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에 배당됐다. 항소심 선고공판 때까지 2년 전 무수히 쏟아낸 기사들은 가짜뉴스 신세다. 법률적 진실을 다툴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항소심 뒤 대법원 판결은 또 어떻게 나올까. 법원 판결로 진실 논란을 매듭지을 수 있을까. 사법 농단 사건으로 법복에 가려진 민낯이 드러난 법원에 선과 악의 최후 심판자 역할을 어디까지 믿고 맡길 수 있을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문다. 지금 나는 가짜뉴스 유포자와 권력의 폭로자 사이에 불안하게 서 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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