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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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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 3각연대

등록 2017-06-20 07:39 수정 2020-05-02 19:28

아베 신조라는 ‘문제적 인간’이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피력한 것은 2013년 4월23일이었습니다. 그는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에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 무라야마 담화(1995)를 헐뜯는 마루야마 가즈야 자민당 의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침략의 정의에 대해선 학술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가 관계 속에서 어느 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 화들짝 놀란 것은 한국과 중국이었습니다. ‘침략에 정해진 정의가 없다’는 것은 일본이 과거 한국과 중국을 상대로 저지른 침략전쟁을 사실상 부정한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아베 총리는 2015년 8월14일 자신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담은 ‘아베 담화’를 발표합니다.

담화엔 메이지유신(1868)부터 현재에 이르는 자국 근·현대사에 대한 일본 보수 세력의 생각이 비교적 명료하게 녹아 있습니다. 담화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는 결정적 계기인 러일전쟁에 대해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적었고, 만주사변(1931) 이후 일본 군부의 폭주에 대해선 “세계공황이 일어나고 구미 여러 국가가 식민지 경제를 휩쓴 경제 블록화를 추진하자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고 변명했습니다. 담화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등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연민으로 끝을 맺습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에 맞서 한국 국회가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만든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습니다. 국회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나온 지 2개월 만인 2013년 6월 특위 설치를 의결합니다.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에 맞서야 할 특위는 뜬금없이 ‘고대사 논쟁’을 시작합니다. 특위에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것으로 보이는 일군의 학자들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들이 집착한 문제는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군의 위치 비정 문제와 일본 주류 학계에선 사실상 폐기된 임나일본부설이었습니다.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요동 지방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지금까지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 2600여 기의 낙랑고분이 확인됩니다. 옛 사서의 기록과 이 성과를 근거로 한국의 고대 사학자들은 대부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인근으로 비정합니다. 이것이 ‘일군의 학자’들 눈에는 견디기 힘든 ‘식민사학’의 잔재로 비친 것이지요.

정치인과 유사역사학의 결합에 결정적으로 힘을 보탠 것은 독립운동가 후손입니다. 2014년 3월 ‘식민사학해체 국민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한수 이북은 중국에서 지배했고, 또 일본놈은 이 밑에 있는 모든 나라 임나왕국을 지배했다. 그럼 우리 민족은 어디서 정통성을 찾아요? 이번 기회에 이런 식민사학을 완전히 청산하고 국민운동을 하자, 이 말씀입니다”라고 말합니다(같은 한국인으로 말씀의 선의는 이해합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신성불가침의 ‘국뽕 3각연대’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8년부터 진행되던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을 폐기했습니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학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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