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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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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식

등록 2016-12-06 08:23 수정 2020-05-02 19:28

대의(代議)민주주의는 방정식이다. ‘뜻을 대신한다’는 것인데 누가, 누구의 뜻을, 어떻게, 얼마나 대신할 것인지가 변수다. 방정식의 답은 때로 민주주의이고 때로 독재이며, 가끔 혁명이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품고 있다. 올바른 것은 결국 다수의 지지를 받고, 다수가 원하면 공공선을 추구하는 대의자들이 제도와 권력으로 구현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기대와 달리, 정당은 순진무구하지 않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의 이론을 빌리면, 정당은 공익을 추구하는 좋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사익을 탐하는 이기적 인간들의 군집이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경쟁과 선택 때문이다. 정당이 각자의 욕심을 시장 좌판에 진열해놓으면,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은 ‘결과적으로’ 시민을 대의하게 된다.

새누리당에 분노하고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에 실망하는 이들에게 말해주자면, 정당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들은 원래 대의가 아니라 자의(自意)에 골몰한다. 대의민주주의는 그들의 ‘자의적 흥정’을 그저 지켜보는 권리만 시민에게 허락한다. 그게 싫으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대의민주주의 아래서 시민이 바랄 수 있는 최대치는 ‘다양하게 이기적인’ 정당의 존재다. 그래야 선거 때, 이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지지를 옮길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는 그런 선거에 의해 위태롭지만 질기게 연명한다.

그런데 위태로운 목숨의 명줄이 딱 끊어지는 일이 가끔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좌판에서 고르고 싶은 물건이 싹 사라졌다. 필요한 물건을 내놓는 장사치조차 없다. 그런데도 저들끼리 흥정하며 희희낙락이다. 그 지경이 되면, 다음 선거를 기다려도 어차피 선택할 정당 따위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시장 전체를 싹 갈아엎는 일이 시작된다.

그 일을 일컫는 여러 단어가 있다. 난리, 민란, 봉기, 혁명 등이다. 혁명은 수평이 아닌 수직운동이다. 수직으로 수평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운동이다. 오직 뒤집어놓는 데만 관심을 둔다. 혁명이 아름답다는 생각 역시 고전적이고 낭만적이다. 혁명은 아름답지 않다. 혁명은 한 세대의 생물학적·정치적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시킨다. 선한 이들이 나쁜 이들과 함께 퇴장당한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그것은 그냥 오고 마는 것이다.

순환이 막히고 눌려 쌓이면, 홀연 거대한 지각판이 흔들려 광막한 바다 밑을 헤집고, 가만있던 해저의 온갖 침전물이 바다 위로 솟구치고, 그 기세에 밀린 파도가 큰 산을 이뤄 육지로 몰아친다. 이윽고 뭍의 생명은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고 모두 휩쓸려간다. 그리고 죽어버린 것들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남은 것들의 의지와도 별 상관 없이, 그냥 자연 그대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나 같은 일개 기자 나부랭이도 그 일의 장차를 알 수 없어 두려운데, 대의민주주의로 밥 벌어먹는 국회의원들은 그 난리가 두렵지 않다는 건가. 그 앞에 부들부들 떨며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공공의 대의를 기대한 적은 없으나, 진정 이기적인 셈법에 기대 묻고 싶다. 이 방정식의 답을 모르겠는가. 살고 싶지 않은가. 다가오는 9일, 죽는 길로 가고 싶은가. 그냥 다 죽자는 건가.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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