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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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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을 고민한 시간

제5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작 소감
등록 2013-11-26 05:33 수정 2020-05-02 19:27
당선작 서주희‘산다는 것’을 고민한 시간

수상 소감 쓰기가 참 어렵네요. 당당하게 쓰자니 밑천 없는 자의 우연한 행운을 으스대는 것 같고, 마냥 낮추자니 그것도 가식 같고 그렇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그저 부끄럽고 쑥스럽습니다. 소설을 배운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서툴러서 억세고 거친 목소리 그대로 내보낸 것 같은데, 당선작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오래전 중증장애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기억을 살려 썼습니다. ‘산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한 장애아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삶의 비극성을 악화시키는 것은 불통이고, 완화시키는 것은 소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심사위원님들 감사합니다! 마포의 행복한 교실, ‘소설쓰기’의 우경미 선생님과 문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 글의 가장 깐깐한 독자지만 항상 저를 웃게 하는 남편에게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가작 황병욱하나를 내려놓으니 하나가 채워졌다

시린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문득 지나간 손길이 산등선을 쓰다듬는 것을 포착했다. 지금은 다 해진 손금 사이로 비탈진 노랫가락이 구슬프게 흐르는 계곡, 몇 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다시 꽃이 피기를… 말라버린 샘에 새가 날아와 흥얼거리는 꽃내음을 탈탈 털기를…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 은빛 시간들.

달콤했던 두 달간의 긴 소풍 같은 취재를 마치고 씁쓸하게 막걸리를 비우고 있을 때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는 기억이 없다. 다음날 희미하게 흩어져 있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째는 내려놓았더니 다른 한 가지가 채워졌다는 것, 그리고 진정성. 이 진정성을 담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다녔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가슴으로 이야기들을 삼켰다. 마지막 취재일에 울린 전화벨은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신 아버지 영전에 알리고 싶다. 어머니와 큰이모에게 감사드린다. 세상과 소통의 창구를 마련해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가작 이슬아100만원을 어떻게 쓸까

스물두 살에 이토록 멋진 격려를 받아서 기쁘다.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수상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100만원에 대해 생각했다. 막일을 해서 번 돈으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남동생의 지갑에 5만원을 넣어주고 싶다. 내가 더 작은 소녀일 때 한 푼도 받지 않고 논술을 가르쳐주신 민숙 이모에게는 월남쌈을 사야지. 5년째 몸담고 있는 어딘글방의 빛나는 인물들과 사랑하는 어딘에게는 간장치킨을,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시는 하영은 선생님에겐 립스틱을, 멋있는 남자친구에게는 양말을, 시인 이승현에게는 복분자주를, 김양에게는 담배와 성냥을, 날 끝없이 겸손하게 만드시는 교수님께는 양갱을, 셔츠가 어울리는 박군에게는 니트 넥타이를 선물하고 싶다. 이 위험천만하고도 황홀한 세상에 나를 낳은 엄마와 아빠에게는 커플 망사 속옷을 선물할 거고, 나의 우아한 룸메이트 안담에게는 사랑스러운 원피스를 사줄 거다. 그러고 나면 얼마 남지 않을 게 뻔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들이 빠진 내 삶이 얼마나 얇을지 잘 안다. 마음 아플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야기꾼을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사려 깊은 심사위원분들 덕분에 더 씩씩하게 걷고 읽고 듣고 쓰고 춤추고 입 맞추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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