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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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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굥정’만큼이나 괴이한 한동훈의 ‘교뇽’

‘엄마 찬스’는 장려할 일이고 대필은 첨삭 지도이며 자비 인터뷰는 봉사 홍보라니
등록 2022-05-15 14:11 수정 2022-05-16 02:23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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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쓰고 제 자식을 ‘성공한 미국인’으로 만들려던 이가 법무부 장관이 되어도 온당한가. 대통령의 외교·안보 관련 참모와 국방·법무부 고위직은 적어도 본인과 자녀의 국적만큼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 국적자나 외국 국적자가 있을 수 있으나 그 과정과 이유를 충분히 밝히고, 국민이 그것을 납득해야 한다. 국가와 정권의 정통성을 위한 기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사진) 인사청문회에서 ‘그 조국’에 앞서 ‘이 조국’을 먼저 따졌어야 했다.

한 후보자는 다수의 영어 논문과 저서 등 자녀의 ‘스펙’이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전혀 없고 입시에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들통나서 못하게 됐다는 말인가. 애초 국내 입시용이 아니라는 말인가. 대필, 표절, 저작권 침해, 대리 개발, 자비 후원 의혹이 난무하는, 변칙적으로 과도하게 쌓아온 ‘스펙’ 내용도 노골적이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미국 유명 대학 진학이다. 한 후보자 자녀와 조카들의 ‘스펙 관리’에 처가 쪽 온 식구가 나선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한 명은 미국 유명 대학에 진학했다. 교포 사회가 출렁이고 있다. 당연하다. 거기서도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니.

억울하다면 적극적으로 자료를 내놓고 해명할 일이다. 그런데 불성실하기 짝이 없다. ‘엄마 찬스’ 의혹을 받는 복지관 노트북 기부 건을 보자. 한 후보자 자녀는 미국 매체에 말하길, 여러 기업 사회공헌 부서에 메일을 보냈고 “마침내 한 기업에서 연락이 와” 중고 노트북 후원을 연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한 후보자가 당시 주고받은 메일을 공개하면 된다. 처음부터 엄마 지인의 도움을 받고는 뻥친 것이라면 깨끗하게 인정하면 될 일이다. 아이가 나름의 꿈이 있어 미국 대학 진학을 꾀하느라 무리했다고 밝히기만 했어도 좋았겠다. 그런데 기를 쓰고 ‘스펙 관리’ 해주고는 기를 쓰고 아니라고 한다. 해명은커녕 “지방에 좌천돼 있을 때라(나는 잘 모른다)”는 소리만 반복했다. (틈만 나면 좌천 타령인데 말 나온 김에 짚자. 대체 전국적인 공조직에서 2년여 지방 근무가 그리 못할 일인가. 월급이 끊겼나, 밥줄이 날아갔나.)

한술 더 떠 노트북 기부는 “오히려 장려할 일”이고, 이를 미국 매체에 돈 내고 ‘셀프 인터뷰’ 한 것은 “봉사활동을 위한 홍보”라고 했다. 이 말을 하는 후보자의 얼굴은 연기가 아니라면 그게 왜 문제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나 투명한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이라니.

장관 후보자가 한 해 학비만 5천만원이 넘는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며 ‘변칙 스펙 쌓기’를 돕고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 못하는데 여당 원내대표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 다음날 “대한민국에 빈부 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받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현실이니 받아들이라는 소리인가. 재력과 정보, 인맥을 총동원한 ‘온 집안 찬스’가 그저 한낱 ‘교육의 차이’일 뿐인가. 한 후보자 자녀가 켜켜이 쌓아올린 ‘스펙’ 어디에 ‘교육’이 존재하는가. 내 눈에는 일그러진 ‘굥정’만큼이나 거꾸로 뒤집힌 ‘교뇽’만 보이는데.

떳떳하다면 왜 매체든 학술지든 행사의 사이트든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관련 자료가 삭제되고 있을까. 특권층의 교육열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눈감을 일도 아니다. 적어도 그런 이가 국록은 먹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들먹이지는 말아야 한다. 그냥 돈 쓰고 유세 떨며 내 자식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키우면 된다.

한 후보자 역시 삶의 기준점이 ‘그 조국’이 돼버린 걸까. 불법만 아니면 괜찮나. 우리 사회가 상식과 윤리를 언제부터 법의 잣대로만 판가름했나. 그와 그의 자녀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봉사’가 아니다. ‘반성’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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