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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윤핵관’은 누구인가

기자들만 알고 독자에겐 비밀로 하는 ‘관계자 저널리즘’…
기자는 실명 보도 요구하고 공직자는 책임 있게 응답해야

제1395호
등록 : 2022-01-01 15:50 수정 : 2022-01-0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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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핵관’ 관련 뉴스. MBC 화면 갈무리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윤핵관’(윤석열 후보 쪽 핵심 관계자)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정체가 궁금해서 정치부 기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상황마다 다르긴 하지만 선수끼리는 누군지 다 안다”고 하네요. 이상한 일입니다. 왜 ‘선수’끼리만 알고 독자에게는 말해주지 않는 걸까요? 독자를 ‘관중’ 취급하는 걸까요?

‘핵관’은 윤석열 후보 곁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뉴스를 보면 검찰에도, 여당에도, 기획재정부에도 ‘핵심 관계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핵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위 관계자, 주요 관계자, 그냥 관계자…. ‘관계자’가 너무 많습니다.

고위 관계자와 ‘핵관’은 다르다?
관계자가 특히 많이 등장하는 출입처가 청와대입니다. 얼마 전 기자들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의 오찬 간담회 뒷얘기를 전한 이는 ‘핵심 관계자’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에 대한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건 모른다”는 말만 반복하며 진땀을 뺀 사람은 ‘고위 관계자’였지요.

그런데 청와대발 익명 보도 역시 알 만한 ‘선수’끼리는 누구인지 다 아는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서로 암묵적 약속이 돼 있기 때문입니다. ‘고위 관계자’는 비서실장, 정책실장, 수석비서관을 가리킵니다. ‘핵심 관계자’는 대개 대변인을 말합니다. 공식 브리핑을 할 때는 ‘대변인’이지만, 카메라가 꺼지면 신분이 ‘핵심 관계자’로 바뀌는 거지요.

청와대 직원과 기자들에게는 당연한 약속일지 모르겠지만, ‘이너서클’ 밖에 있는 사람의 눈에는 이런 관행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상해 보입니다.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사 볼드모트나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권력기관에서 공보 창구로 나선 공직자의 이름을 왜 말하지 못하나요?

익명 취재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건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정보 출처의 투명성은 뉴스 품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언론은 좀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명 취재원이 신뢰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걸 입증하는 최소한의 정보도, 불가피하게 익명을 쓰는 이유에 납득할 만한 설명도 제공되지 않습니다.

이런 기사를 보는 독자는 언론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기자가 익명 취재원 입을 빌려 본인 생각을 담거나 사실을 조작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실제로 기자가 ‘뇌피셜’이나 ‘소설’을 쓰기 위해 가공의 익명 취재원을 동원했다가 발각된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익명 취재원 관행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 니다.

그러나 과도한 익명 보도와 관련해 언론의 문제만을 거론하는 건 반쪽짜리 비판에 불과합니다. 학계에서 계속 지적하고 시민사회가 아무리 변화를 요구해도 언론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요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이 익명 취재원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윤리강령을 마련해놓아도 현장에서 기자들이 준수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로 취재원의 요구입니다. 특히 언론이 높은 비중으로 의존하는 공적 영역의 취재원들이 실명을 원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고위 공직자들은 수시로 익명을 요구하고, 실명으로 보도하겠다 하면 입을 열지 않습니다. 기자들끼리 다 아는데 독자에게는 비밀로 하는 ‘관계자’ 저널리즘이 유행하는 배경입니다.

익명 뒤에 숨은 공직자는 옳은가
‘기자가 취재원 요구를 왜 다 받아주느냐’고 물으실 수 있겠지만, 실명 인용을 하면 그 뒤로 해당 공직자에 대한 취재가 아예 불가능해지거나 어려워집니다. 기자로서는 많은 정보를 가진 소중한 취재원을 잃는 거지요. 실명으로 취재에 응하는 또 다른 취재원을 어떻게든 발굴해서 실명 보도를 하는 게 기자의 본분이지만, 인력이 부족하고 늘 마감에 쫓기는 취재 환경에서 이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공직자들이 실명 인용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실명으로 발언이 보도됐다가 혹시라도 책임질 일이 생겨 인사와 승진에서 불이익이 생길 것을 걱정하는 보신주의가 가장 큰 이유겠지요. 집단주의적 조직문화 속에서 상급자의 눈을 의식해 ‘튀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관료문화는 언론을 상대할 때도 어김없이 작동합니다.

주권자의 위임을 받아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영역은 국민 앞에 설명의 책임(Accountability)을 갖습니다. 공직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국민을 대신한 언론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사인과 달리 이 과정은 익명으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적 영역에 속하는 이들일수록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실명 보도 역전 현상이 벌어집니다. 사적 영역에 속하는 일반 시민과 기업인(대체로 기업의 홍보 담당자입니다)은 언론에 실명으로 등장하는데, 정작 공적 영역에 속하는 관료와 정치인은 익명에 숨어버리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취재원의 익명 요구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기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론을 욕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언론을 바꾸는 게 목적이라면 기자들만 손가락질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 니다.

뉴스는 기자와 취재원의 상호작용 속에 만들어집니다. 언론의 영향력은 이용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이율배반적 태도의 취재원이 바뀌지 않는 한 익명 취재원 관행도 바뀌기 어렵습니다. 브리핑이나 공식 취재에 응하는 모든 공직자에 대해 실명 인용이 가능하도록 관료조직 문화와 정부 공보 지침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언론도 익명을 요구하는 권력에 순응해선 안 됩니다. 개별 기자나 언론이 거부하기 어렵다면 기자단 차원에서 실명 표기 원칙을 요구해야 합니다. 기자단은 출입처 편에서 관행을 지켰는지 단속할 게 아니라, 출입처에 맞서 원칙을 관철하는 힘이 돼야 합 니다.

‘박경미 대변인’으로 써주세요
가장 먼저 청와대 출입기자단이 ‘관계자 저널리즘’을 버려야 합니다. 바라건대 이제 ‘핵심 관계자’라는 암호명 대신 ‘박경미 대변인’으로 써주세요. 청와대 공보 라인과 기자들이 바뀌면 다른 정부 부처들도 뒤따라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관계자’에게 이름을 찾아줍시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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