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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야당 편이었다? [언론비평]

잘못된 질문에 갇혀 있으면 언론을 개혁하기도, 지지율 추락의 해법을 찾기도 어려워
등록 2021-04-10 11:26 수정 2021-04-11 01:53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지금 언론하고 포털이 선거운동을 대신해준다”고 주장했다. T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지금 언론하고 포털이 선거운동을 대신해준다”고 주장했다. TBS 유튜브 화면 갈무리

4·7 재보궐선거가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계속 추락하는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2022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도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민심이 떠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능함, 오만함, ‘내로남불’… 곳곳에서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일부 정치인과 열성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여론의 변심이 언론의 공정하지 못한 보도 때문이라 주장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방송인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지금 언론하고 포털이 선거운동을 대신해준다” “이쪽은 좋은 뉴스가 안 나온다”며 “이 선거가 끝나면 포털의 공공통제를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라디오에 출연한 민주당 김종민 의원도 언론이 오래전부터 편파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좀더 심했다”고 ‘언론 탓’을 합니다.

정말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과 손잡은 언론이 보수 야당의 문제는 눈감아주고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만 집요하게 흔들어댔기 때문에 민주당이 몰락한 걸까요?

운동장은 몇 도나 기울어져 있는가

언론 환경이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정파적 이익을 좇아 방역의 발목을 잡은 덩치 큰 보수언론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의 언론 지형이 보수 편향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은 분명 옳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장이 몇 도나 기울어져 있는가에 대한 판단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모든 언론이 일치단결해 민주당을 공격한다거나 일방적으로 민주당에 적대적인 분위기라는 인식은 지나칩니다. 보수언론만큼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지 않을 뿐, 여권에 꽤 우호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을 유지하는 언론들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언론이 야당 후보의 의혹을 파헤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SBS가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의 아들이 소유한 엘시티(LCT) 아파트 구입 관련 의혹을, KBS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내곡동 측량 현장 참여 의혹을 처음 보도했지요. 야당에 불리한 이슈에는 언론이 철저히 침묵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대다수 언론이 (오 후보가 방문했다는 내곡동) ‘생태탕집’ 이슈를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래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언론이 민주당을 더 많이 다루고 더 많이 비판한다는 불만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이건 언론이 기득권 적폐 세력과 한패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원내 절대다수 의석을 거머쥔 집권당이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권력을 감시하는 건 언론의 본분이고, 집권여당이 다른 정치 세력보다 혹독한 검증을 이겨내야 하는 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위해 불가피한 일입니다.

선거가 끝난 뒤 라디오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도 언론이 오래전부터 편파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좀더 심했다”고 언론 탓을 했다. 공동취재사진

선거가 끝난 뒤 라디오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도 언론이 오래전부터 편파적이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좀더 심했다”고 언론 탓을 했다. 공동취재사진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소수자에게 민주당은

집권 세력이라 해서 무조건 견제하려 드는 언론을 꾸짖는 분들도 있습니다. 청와대와 입법부를 겨우 장악했을 뿐 한국 사회의 실질적 권력은 여전히 검찰을 비롯한 거대 기득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들과 맞서 싸우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불의와 적폐에 맞서 싸우는 민주당은 집권당이라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애정과 응원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언론이 욕먹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역사의식’을 결여한 상태에서 기계적 중립과 권력 비판의 도그마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저는 오랜 삶의 경험과 고민에서 비롯된 이런 판단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와 다른 판단도 마찬가지로 존중돼야 할 것입니다. 정의와 불의를 구분하는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어떤 시민도 자신의 관점을 다른 시민에게 강요할 순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도 다양한 시각이 공존할 수밖에 없고 누구도 해석 기준을 독점할 순 없습니다.

‘민주 대 반민주’ 전선에 주목하는 시민들에게 민주당이 힘을 모아야 할 정당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에게, 성소수자에게, 집 없는 서민에게도 민주당이 똑같은 의미를 갖는 정당일까요. 이들에게 과연 같은 판단 기준을 가지라고 강요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저널리즘 원칙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기자와 시민들이 합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여야 합니다. 특정 정치 세력이 집권당이 됐을 때는 언론이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는 인식을 개인 유권자가 갖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것이 언론의 취재와 보도 행위를 규정하는 규범은 될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기세가 등등하던 2015년, 새누리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은 누리집 메인 화면에서 정부·여당에 부정적인 기사가 야당에 부정적인 기사보다 10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포털이 ‘친야권’ 편향이라는 논란이 불거졌고 여당은 한동안 포털을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새누리당, 청와대, 모든 정부 부처와 기관을 한 범주로 묶어 야당에 대한 기사와 비교했던 겁니다. 당연히 전자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많을 수밖에 없지요. 그나마 대다수 기사는 중립적이었고, 정부·여당에 부정적인 기사는 전체 분석 대상의 2%에 그쳤습니다. 말 그대로 침소봉대입니다. 제목만 갖고 전체 기사의 성향을 판단했고, ‘긍정’과 ‘부정’ 기사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했던 점도 문제였지요.

박근혜 정부 보고서의 피해의식

어떻습니까. 지금 언론이 ‘친야권’ 성향이라고 비판하는 민주당의 논리나 접근 방식이 이 보고서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나요? 작은 비판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화끈하게 자기편만 들어주는 진영 언론을 기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다른가요? ‘좌파’ 언론에서 ‘적폐’ 언론으로 용어가 바뀌고 좌우만 달라졌을 뿐,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은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아 있지 않나요?

잘못된 질문을 던지면 늘 잘못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 ‘언론이 누구 편이냐’는 질문에 갇혀 있으면 언론을 개혁하기도, 지지율 추락의 해법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혹시라도 민주당이 선거 패배의 원인을 언론 탓으로 돌리며 ‘언론 죽이기’에 나선다면, 다음 선거 결과도 불 보듯 뻔합니다. 부디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 언론과 싸우지 말고 현실 속 언론과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1358호 표지이야기 - 4·7 재보궐선거 분석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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