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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586 오빠들(아빠들)은 이래서 안 돼

무려 34년, 386에서 586으로 이어져 알기 쉬운 그들의 꼰대질
등록 2021-02-28 16:06 수정 2021-03-01 13:21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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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 차기 대선 ‘제3 후보론’이 심심찮게 나온다. 면면을 보면 하나도 참신하지 않다. 작명조차 그렇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에 합류한 386들의 모임이 ‘제3의 힘’이었다. 이들은 그해 총선에서 ‘젊은 피’로 대거 발탁됐다. 그러고는 20년 넘도록, 이름도 구성원도 거의 바뀌지 않은 채 참 오래 정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참 후지고 낡게 만들고 있다.

“박원순이 곧 우상호”라고 했다가 ‘2차 가해’라는 거센 비판을 받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사진)는 2월15일 라디오방송 <김현정의 뉴스쇼>(CBS)에 출연해 해명하다 논란을 더했다. 유족을 위로하려면 비공개적으로 할 수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만하시죠. 제가 충분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라고 말을 자른 것이다. 해명하러 나왔는지 ‘시비를 털러’ 나왔는지 알 수 없는 태도였다. 그가 유별난 게 아니다. 이제는 586으로 불리는 민주당 주축 세력의 정서가 바로 이렇다.

단지 당내 경선을 앞둔 표 계산 때문이었을까. 우상호는 박원순과 ‘가치의 동맹’을 맺어왔고 그게 훼손되는 게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편이며 그래서 늘 옳아야 하니까. 기이하다. 여성운동을 함께 했던 권인숙·정춘숙이나 참여연대를 함께 만든 김기식·박원석도 아니면서, 서울시장 선거를 돕고 그 뒤 당적을 공유했다는 이유로 이리 쉽게 ‘동일시’하다니. 하지만 386에서 586으로 이어져온 ‘n86세대’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공고한 집단주의와 고난을 헤쳐왔다는 ‘내편의식’은 그 세대의 동력이기도 하다. 가령 우상호는 자신을 설명할 때 ‘민주화 세대’를 제일 앞세운다. 운동을 한 시간보다 정치를 한 시간이 훨씬 길지만 1987년 6월, 학생 시위대를 이끈 경험을 리더십으로 첫손에 꼽는다. 무려 34년 전이다. 이쯤 되면 거의 ‘표본화’ ‘박제화’가 아닐까. 다음 세대로서는 이런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오빠들(아빠들)은 이래서 안 돼.’

n86들은 가가호호 아들에게 자원을 몰아주던 시절 전두환이 한껏 낮춰준 대학 문턱을 넘었다. 메이저 캠퍼스로 불리던 유명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며 총학생회장을 하고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도 했다. 운동권에도 가부장제가 팽배하던 때 ‘잘난 큰아들’이었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본인들이 가부장이 됐는데도 여전히 ‘큰아들 정치’를 하는 게 이들 세대의 모순이자 다음 세대에게는 질곡이다. 이들이 압도적 쪽수로 사다리를 독차지한 바람에 다음 세대는 오르기는커녕 만질 수도 없다. 걷어찬 것과 결과적으로 같다. 진작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박용진(71년생)은 후보군으로 언급도 안 하며 유령 취급하고, 대중성 높은 박주민(73년생)은 ‘형님들’ 난처할 때 언론에 나와 설명하는 뒷설거지 담당으로 부리는 모양새다.

제3 후보군 중 한 명인 이광재 의원은 2020년 펴낸 책 <노무현이 옳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대 감별’에 쓰일 만한 문장이다. “왜 586세대는 우월감에 빠진 꼰대가 됐나. 뒷모습마저 아름답기 위해선 변화에 떠밀려 마지못해 밀려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이 되어 활약할 다음 세대를 이끌어주고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으로 역할 전환을 해야 한다.” 비장하게 끄덕인다면 당신은 n86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세대에게는 그저 지도편달을 포기 못하는 ‘꼰대질’이다. 그런 줄 알면 그냥 조용히 비켜주면 될 게 아닌가.

그리 오래 정치를 하고도 한결같이 ‘자기 브랜드’가 없는 것도 딱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동지들’만 알아듣고 관심 있는 추상적 언어로 여전히 ‘통일운동 중’이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기득권 냄새 나는 적들에게 포위돼 계속 ‘민주투쟁 중’이다. 이 와중에 서로 덕담은 잊지 않는다. 끈끈한 형제애로 엮인 이들은 정치를 좌우와 위아래로만 본다. 그러니 납작한 평면에서 맴돌밖에. 왜 앞뒤가 있다는 생각을 못할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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