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당선자는 가장 덜 미운 사람

재보궐선거에는 구도도 이슈도 인물도 기존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
등록 2021-01-25 13:32 수정 2021-01-27 01:37
공동취재사진

공동취재사진

가장 덜 미운 사람이 당선될 것이다. 4월7일 치르는 재보궐선거 예비후보자들의 라인업이 짜이는 걸 보면서 한 생각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정권 심판 여론이 적지 않은데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열 손가락 다 써야 할 정도로 후보들이 우후죽순 나섰다.(사진) 각 잡고 싸울 채비가 영 안 돼 있는 셈이다. 대표 선수들은 10년 전 구도를 들먹이며 결자해지니 단일화니 참으로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인다. 자당 군소 후보들에 대해서는 당에서조차 관심이 없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집권 프리미엄을 활용하긴커녕 쥐어짜듯 뜯어내듯 후보를 내세워 겨우 당내 경선을 치른다. 소속 단체장의 성 비위로 치러지는 선거인지라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지만(또한 여전히 후보를 안 내는 게 옳다고 보지만), 지금 움츠린 구도는 반성과 성찰에서 나온 게 아니다. 두 당 모두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지 않다.

지도력 공백도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추-윤 갈등’의 쓰나미가 휩쓸고 간 여당은 우왕좌왕하며 2020년 하반기 이후 사실상 아무 일도 못했다. ‘지난 갈등은 대충 민주주의 작동 과정으로 퉁치자’는 요지의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을 기점으로 겨우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모습이다. 대통령의 한참 늦은, 어설픈 ‘봉합’ 때문일까. 감사원과 검찰, 법원을 향해 앞다퉈 으르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모두 한날한시 합죽이가 된 듯하다. 대통령 문제인지 당의 문제인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인이 안 맞고 손발이 따로 놀았다는 사실만큼은 감추기 어렵게 됐다. 그동안 쏟아낸 말을 어찌 주워 담을지 아득해 보인다. 자업자득이다.

제1야당은 역대급의 ‘줘도 못 먹는’ 신공을 발휘하고 있다. 자당 후보 그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 티를 티 나게 내는 노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메시지 관리에서나 정책 제안에서나 당내 인사 누구보다 젊고 참신해 보이는 바람에 ‘나이 파괴’만 혁신적으로 보여준다. 줄곧 여당에 이기는 것으로 조사되는 부산시장 선거는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세력 다툼과 잡음에 휩싸이는 기색이다. 다 된 밥상으로 여기고 서로 차지하려는 모양새다.

누가 봐도 1980년대 민주주의 감성을 가진 대통령과 1990년대 세대교체 감성을 가진 비대위원장이 거대 양당의 ‘대표 감성’이다. 민망하다. 아무리 코로나19 재난으로 일상이 마비돼도 21세기 선거를 20세기 감성으로 치러서야 되겠는가.

사람들이 화도 많이 나고 실망도 거듭했다. 안 그래도 재난 시기를 건너느라 힘겨운 이들이 부동산 가격 폭등과 자산 쏠림, 일자리 실종으로 좌절한 상황이다. 누구는 일 안 하고 돈 벌고, 누구는 일하다 죽는다. 양극화 심화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도처에 널려 있다. 전임 단체장의 충격적인 행적과 그에 따른 여진으로 갈가리 찢긴 마음도 여전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읽어내고 공감하고 미안해하는 사람에게 표가 쏠릴 것이다. 정책이나 능력은 그다음이다. 유권자는 정치인보다 민감하다. 습관과 구태를 버리고 과감히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럴듯한 정책 백번 낸들, 돈 쓰고 사람 써서 그럴듯한 이미지 관리 아무리 한들, 유권자 촉을 이길 수 없다. ‘요즘 사람’의 가장 절실한 ‘요즘 문제’를 후보 자신이 소화할 감수성이 없어 보이면 말짱 꽝이다.

구도도 이슈도 인물도 기존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양당 공히 ‘밑천 다 까(이)고’ 시작한 탓인지 아예 정치가 ‘초기화’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역설적으로 묘하게 팽팽한, 날것 그대로의 긴장과 균형의 시간대에 들어선 기분이다. 진짜 실력 대결, 진검승부의 시간 말이다.

선거 과정 전체가 반성과 위로의 시간이 되면 좋겠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좋아하는 걸 더 해주려고 용쓰지 말고 싫어하는 걸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관계의 기본이다. 정치도 그렇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