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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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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빠진 문 대통령 새해 메시지, 왜?

문재인 대통령 신년사와 새해 기자회견에서 언급 없어…
“지지율 하락 반영·갈등 차단용” 해석
등록 2021-01-22 17:11 수정 2021-01-24 01:39
2021년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온·오프라인 통합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질문하기 위해 숫자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21년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온·오프라인 통합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이 질문하기 위해 숫자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나 새해 기자회견에서 ‘촛불’이 빠진 적은 없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이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정체성을 규정했다. 이듬해부터 문 대통령은 신년사와 새해 기자회견에서 촛불을 주요하게 언급했다.

“이제 촛불정신을 국민의 삶으로 확장하고 제도화해야 한다.”(2018년 1월10일 신년사)

“지난 20개월은 촛불에 의해 탄생한 정부로서 촛불 민심을 현실정치 속에서 구현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세월이었다.”(2019년 1월10일 새해 기자회견)

“우리 정부의 소명은 그냥 촛불정신이 정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좀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고, 한편으로 더 혁신적이고 포용적이고 공정한 경제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남북 간에도 이제는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시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2020년 1월14일 새해 기자회견)

2020년까진 빠짐없이 ‘촛불정신’ 강조

이처럼 문 대통령은 집권 뒤 한 해도 빠짐없이 향후 1년간의 정부 기조와 방침을 제시하는 신년사나 기자회견에서 촛불정신을 강조하며 새해를 시작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차인 2021년, 문 대통령의 신년사(1월11일)와 새해 기자회견(1월18일)에선 ‘촛불’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신년사와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촛불 언급 횟수는 2018년 9번, 2019년 4번, 2020년 3번으로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그 내용의 강도는 한결같았다. 언어에는 지향하는 의식과 가치가 반영된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 대통령의 입에서 2021년 새해에 촛불 언급이 사라진 모습은 문재인 정부가 처한 현재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배경으로, 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득표율(41.1%)을 밑도는 국정수행 지지율이 꼽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1월 둘째주(12~14일) 전국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한 비율은 38%이고, 부정 평가한 비율은 53%였다. 집값·전월셋값 상승, 코로나19로 인한 민생의 어려움, 추미애(법무부 장관)-윤석열(검찰총장) 갈등 등으로 문 대통령 지지율은 2020년 후반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높은 국정지지율은 국민과 국회에 대한 리더십은 물론 임기 동안 실시하는 선거에서도 승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청와대에서는 지지율 하락으로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훼손된 상태에서 촛불정신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지난 3년간 새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8년 1월 첫째주(2~4일) 72%, 2019년 1월 둘째주(8~10일) 48%, 2020년 1월 둘째주(7~9일) 47%로 대선 득표율보다 높았다(한국갤럽 조사).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지지율 하락에 청와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 민심으로 출범한 정부이지만, 촛불을 강조할수록 갈등이 부각될 소지도 있는 만큼 가뜩이나 코로나19로 피로도가 증가한 민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국정지지율이 문 대통령의 당선 득표율보다 낮아지는 것은 중도층 이탈을 의미한다. 2020년 4월15일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둘 때,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59%였다(한국갤럽 4월 셋째주(13~14일) 조사).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55%, 부정 평가는 34%였다. 이때와 견주면 2021년 1월 둘째주 중도층의 긍정 평가는 31%로 24%포인트나 빠졌고, 부정 평가는 61%로 두 배 가깝게 늘었다.

대선 득표율보다 낮은 국정지지율

중도층 이탈이 심각한 상황에서 4월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전직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보궐선거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도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 감사원 관련 발언 등에서) 정치적으로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언급을 피하거나 몸을 낮추는 등 악화된 민심을 수습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라고 평가했다.

여권에선 촛불 언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촛불정신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정 농단을 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촛불의 힘으로) 탄핵되고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이에 따라 (촛불정신에 해당하는) 적폐 청산은 국민의 명령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과 최저임금·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도입 등 ‘양극화 해소’가 두 축이었다. 그런데 검찰 개혁,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우리가 관리를 잘못한 측면과 반대쪽의 거센 저항이 얽혀서 상황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이 촛불 언급을 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촛불정신을 살리기 위한 암중모색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도 “정부·여당의 개혁 기조가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촛불 언급 부재를 큰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국정과제를 정리해야 하는 ‘정부 5년차’라는 시기적 특성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촛불은 마무리 단계보다는 새롭게 개혁 의제를 던질 때 적합한 용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5년간의 국정을 혁신(2017년 5월~2018년), 도약(2019~2020년), 안정(2021년~2022년 5월) 3단계로 계획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은 ‘안정’ 단계다. 이는 문 대통령이 2020년 말 정무형 대신 관리형이라는 평가를 받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한 인사와도 맥이 닿는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집권 5년차는 새롭게 판을 벌이기보다는 지금까지 시행해온 개혁 과제를 매듭짓고, 다소 미흡한 부분은 보완하고, 차기 정부에 넘겨줄 일을 정리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안정과 관리의 시기라는 것이다.

“판 벌이기보다 개혁 매듭지을 때”

집권 5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과제에 대해 민주당 지도부 소속 의원은 “코로나19 방역과 위기관리,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피해자들에 대한 민생 대책, 새로운 대한민국 개혁 과제 재정비 등 세 가지”라고 짚었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개혁 과제 재정비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권력기관 개혁, 정치개혁, 사법개혁, 민생개혁으로서의 양극화 해소 등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민들의) 갈증이 있는데, 이와 관련한 제도 개혁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재정비가 필요하고, 민주당은 이와 연계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본격적인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문재인 정부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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