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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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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을 빼고 봐야 보인다

반복되는 징후와 팩트에도 보지 못했던 것들
등록 2021-01-09 14:33 수정 2021-01-12 05:00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혼밥과 유체이탈 화법. 뼈저리게 경험한 ‘나쁜 통치’의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보인다. 진작부터 보였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더는 그러지 못하겠다. 위험신호가 크고 잦아져서다.

대통령은 1월5일 새해 첫 국무회의(사진)에서 경제강국, 선도국가로 도약하자며 국민을 ‘치어업’(Cheer Up)하는 말씀을 많이 했다. 하지만 ‘긍정 회로’를 지나치게 돌리셨다. 경제성장률 예상과 수출 반등세를 꼽은 건 그렇다 쳐도, 코스피 3천을 내세워 “우리 경제와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 또한 역대 최고”라고 치켜세운 건 아무래도 심했다.

큰손 투자가들의 고공행진을 개미들이 떠받치는 게 지금 주식시장이다. 적잖은 이가 막장 도박의 심정으로 쥐꼬리만 한 자금을 끌어 쏟아붓고 있다. 전세보증금을 빼거나 이른바 ‘영끌 대출’로 ‘몰빵’한 이들의 사정을 대통령이 모르쇠하고, 나아가 도리어 부추긴 꼴이다. 그야말로 ‘회로 타는’ 말씀이었다. 같은 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자그마한 충격에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증시로 자금 쏠림과 가계빚 급증을 우려했다. 워런 버핏의 말처럼 “누가 벌거벗은 상태로 헤엄치는지” 썰물이 빠지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데 대통령 눈에는 안 보이나. 아님 눈을 감으셨나.

언제부턴가 정치가 아니라 심리 영역에서 대통령을 보게 된다. 선택적 침묵과 의전 중심의 행보가 반복되면서다. 2020년 12월10일 추-윤 갈등의 절정이었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첫날 저녁, 난데없는 특별방송을 통해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25도 30도 아닌 50이었다. 앞으로 30년 동안 어찌하자는 다짐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들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중차대했을까. 검찰총장 징계라는 초유의 문제에 대해 대통령의 책임 있는 반응을 기다리던 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한 탄소중립은 물론 중요하다. 예정한, 필요한 선언이었다 해도 현안은 외면한 채 내놓는 미래 선언은 공허하다. ‘중립적’인 메시지로 분위기를 환기해 ‘좋은 대통령’ 이미지를 관리하겠다는 의도가 읽힌 건 억측일까. 이런 얕은수와 잔머리는 대체 누가 굴리는 걸까. 대통령은 누굴 만나 대화하고 국정 운영의 가닥을 잡는 걸까.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0년 11월30일 그 유명한 ‘빵 발언’이 나온 국회 현안 질의에서 부동산 문제로 대통령을 직접 만난 게 언제냐고 묻자 “몇 달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고 스스로 민망했는지 “대통령이 충분히 듣고 있고,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고 크게 상처 입고 정권의 지지 기반을 무너뜨린 최고 악재라는 소리를 듣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주무 부처 장관과 이렇게 뜨문뜨문 대면했다니, 놀랍다.

그는 ‘통치’를 즐기지 않는다. 낯가림도 심하다. 대통령이 자기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거나 강성 지지층과 그들에 밀착한 정치인들이 포장하고 분칠한 이미지에 안주하는 건 큰 불행이다. 법원이 징계에 대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며 사실상 윤석열 검찰총장 손을 들어준 뒤 여권 인사 여럿이 분개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익숙한 기득권 냄새”라며 “대통령께서 외롭지 않도록 할 일을 찾겠다. 다시 아픈 후회가 남지 않도록”이라고 다짐했다. 이런 자세로 그는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했던 거다. 청와대 권력은 처음부터 대단히 잘못 세팅된 게 아니었을까. 개인숭배와 피해의식으로 말이다.

최고 권좌에 밀어올려주고 180석 의석을 만들어줘도 ‘기득권 세력’ 때문에 어렵다니. 이런 오만과 몽상에 빠진 ‘내 편’에 둘러싸여 대통령은 오늘도 “마음의 빚”을 진 이들에게는 절차와 관행과 국민감정을 무릅쓰고 잘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선한 표정으로 한없이 무심하고 둔감할 수 있는 거다. 징후와 팩트는 반복됐지만 제대로 보기를 게을리했다. 이제는 알겠다. 문재인을 빼고 봐야 보인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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