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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을 BTS처럼 ‘당대표’ 김종철의 도전

‘조직력 우위’ 배진교 의원 꺾고 당대표 당선… 거대정당과 차별화, 대안정책 생산 숙제
등록 2020-10-17 01:21 수정 2020-10-17 01:55
김종철 정의당 대표. 김진수 기자

김종철 정의당 대표. 김진수 기자


4월 총선 뒤 위기에 빠진 정의당이 10월9일 새로운 대표를 뽑고 신발끈을 고쳐 맸다. ‘진보정치 2세대’로 불리는 김종철 새 대표가 침체된 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진보정치 3세대 교체 준비’를 말한다. 두 사람을 통해 정의당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본다. _편집자

진보정치 2세대의 문을 연 1970년생 김종철 정의당 새 대표는 방탄소년단(BTS)의 팬인 ‘아미’다. 김 대표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던 시절, 언더도그(상대적 약자) 성공 사례를 찾다가 방탄소년단에 꽂혔다(2013년 결성 당시 방탄소년단은 메이저 기획사의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가 반평생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바쳤지만 아직 원내 소수정당에 머무르던 진보정당의 활로를 모색하던 때였다. 방탄소년단의 화려한 퍼포먼스에 빠져 있던 김 대표는 그들의 모습에서 당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됐다.

진보정당 21년, 고군분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멤버로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지난 7년 동안 노래를 통해 ‘남의 꿈에 갇혀 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 → ‘방황과 좌절이 따라올 텐데 맞서 싸워라’ →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고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이어왔어요. 이 흐름을 함께한 아미들은 단순히 팬과 가수의 관계가 아니라 가족 같은 ‘친밀감’을 느끼죠. 또 방탄소년단은 이런 메시지를 ‘오랫동안 일관되게’ 내왔고,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세련되면서도 진심을 담아 유능하게 잘 전달’했어요. 무대에서 춤추면서도 라이브로 노래하는 등 ‘몸이 부서져라 최선을 다하는 퍼포먼스’를 해냈습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방탄소년단의 성공 포인트를 정의당의 정책 생산, 홍보, 실행, 당원과의 관계 등 주요 활동에 접목할 수 있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20년 넘게 진보정당의 성공에 매달려온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 결선투표(10월9일)에서 55.6%를 획득해 현역 의원인 배진교 후보(44.4%)를 꺾고 당선된 김종철 대표를 10월13일 국회 정의당 당대표 회의실에서 만났다. 회의실 중앙 벽면에는 ‘변화를 위한 과감한 혁신’이라는 당대표 선거 후보 때의 구호가 쓰인 펼침막이 붙어 있었다. 창가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에게서 받은 축하 난 화분이 줄지어 있었다. 김 대표는 이날 종일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각 정당 대표들을 예방하는 빡빡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 대표는 “당선된 지 4일이 지났는데 마치 40일이 지난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지며 자리에 앉았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던 김 대표는 1999년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의 권영길 대표 비서로 진보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정당 활동’이라기보다 정치 ‘운동’이라 생각했다. 그 뒤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을 거쳐 대변인, 최고위원이 됐다. 그는 2004년 10석으로 원내에 입성한 민주노동당에서 빠르게 성장한 젊은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진보정당이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보신당 대변인·부대표·대표권한대행, 정의당 노회찬·윤소하 원내대표 비서실장 등 주요 당직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32살 때 용산구청장(2002년)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서울시장(2006년), 국회의원(2008·2012·2014·2016년 서울 동작을, 2020년 비례대표) 후보로 7차례 공직선거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학생운동과 진보정당 활동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던 강병원·박용진·박주민 의원 등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재선 의원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 우물만 팠던 김 대표의 정치 이력에는 진보정당의 신산한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 만큼 당대표가 된 소회가 남달랐을 듯하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의외로 담담했다. “결혼 이후 보험설계사, 옷가게·식당 운영 등을 통해 가정경제를 도맡아온 아내가 당대표 당선에 대해 ‘결혼하고 나서 제일 기쁜 날’이라고 하는 등 가족이 기뻐해줘서 좋았어요. 사실 그 외에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지요.”

‘데스노트 기록자’를 넘어

김 대표의 이런 반응은 정의당이 처한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비롯됐다. 21대 총선 결과 정의당은 20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6석 그대로였지만, 민주당은 180석 가까운 의석으로 ‘공룡 여당’이 됐다. 이로써 정의당의 원내 존재감은 크게 위축됐다.

이 상황에서 정의당 당원들은 ‘민주당에 대한 독자 노선’을 앞세운 김 대표를 선택했다. 정치권 안팎의 예상을 깬 ‘이변’이었다. 김 대표는 배진교 후보에 견줘 조직도 열세였고, 국회의원도 아닌 원외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원들은 왜 김 대표를 선택했을까. 그의 자평이다. “정의당에 ‘확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원 여론이 반영된 거라고 봅니다. 그것은 국민 여론도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무난하지 않았고, ‘금기를 깨야 한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세게 던져서 당원들의 표를 얻은 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 과정에서 국민과 당원들의 마음에 다가서기 위해 ‘정의당이 뭔가 새롭고 과감한 걸 시도해야 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종철 대표의 당선으로 진보정치 2세대의 강물이 밀려와 심상정·노회찬으로 대표되는 진보정치 1세대의 강물을 밀어내게 됐다. 김 대표는 정의당의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하는, 사실상 혁신위원장 역할도 겸하고 있다. 그는 정의당 위기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정당의 핵심은 (다른 당과의) ‘차별화’인데, 이 부분이 미흡했어요. 그러다보니 정의당이 ‘선수’가 돼야 함에도 다른 정당들이 형성한 프레임을 평가하는 ‘채점자’에 그치고 만 측면이 있어요. 가령 정의당의 ‘데스노트’(고위 공직 임명자에 대한 부적격 평가)가 주목받은 것은 정의당의 원칙에 입각한 가치 기준을 보여줬기 때문이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의당이 하려는 정책 중에 나에게 도움되는 게 뭐지?’라는 국민의 물음에 답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어요.”

“금기를 깨야 한다”는 김 대표의 주장은 이러한 진단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코로나19로 위기와 불평등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정당들과 유별나게 차별화되는 해법이 존재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래서 그동안 금기시돼온 영역에 대해 말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과감하게 제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는 금기를 깨는 정책으로 ‘선거제도 개혁(연동형비례제)과 의원내각제로의 헌법 개정’, 복지 확대를 위해 저소득층 세금을 조금 올리고 고소득층 세금은 더 많이 올리는 ‘보편적 누진증세’ 실시, 고용보험 확대, 동일노동·동일임금 적용, 노동이사제 도입, 사회안전망 확충 등의 ‘안전장치’를 전제로 한 ‘(덴마크식) 노동유연화’ 검토, 형평성과 적자 문제 해소를 위해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국민연금으로의 통합’ 등을 제시했다. 노동유연화는 기존 정의당에서 검토되지 않았던 정책이다. “2000년대 초 민주노동당의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등의 정책이 당시에는 금기였죠. 이 정책들이 이제는 실현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금기시되는 영역을 말하고 토론하며 현실화하려 합니다.”

김종철 정의당 새 대표(왼쪽)가 심상정 전 대표와 함께 10월1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지도부 이·취임식에서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김종철 정의당 새 대표(왼쪽)가 심상정 전 대표와 함께 10월1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지도부 이·취임식에서 당 깃발을 흔들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보편적 누진증세, 전 국민 고용·소득보험

김 대표는 이렇게 해야 정의당의 발목을 잡는 ‘민주당 2중대론’도 끊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정의당이 앞으로는 정쟁 이슈에 대해 발언을 아끼고, 원래 우리가 해야 하고 하려던 정책 위주로 이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책’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 구도상, 정의당이 원내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예산을 따내는 것이 민주당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대표는 그 대응책으로 “민주당의 허락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민주당이 정의당의 정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나아가 끌려오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의 5대 입법 과제 중 하나인 ‘전 국민 고용·소득보험제’를 예로 들었다. 현재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등을 모두 포괄해 고용보험제도 적용 대상이 되도록 하고, 고용·실업 상태만 따지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소득 감소도 보전해주도록 사회보험을 설계하자는 것이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에서는 정부·여당의 ‘전 국민 고용보험제’와 공통점이 있지만, 소득 보전과 관련해서는 ‘차별화’한 것이다.

김 대표는 여당을 끌고 오기 위해 ‘현장’에서 시작하려 한다. “당대표와 전국 지역위원회 당원들이 함께 해당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찾아가려 합니다. ‘매달 소득의 1.25%를 고용·소득보험료로 내면, 코로나19 상황처럼 폐업하거나 소득이 많이 줄었을 때 폐업급여, 소득감소급여 등의 이름으로 일정액을 매달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이 보험료를 낼 의향이 있으십니까’ 등의 설명을 하면서 의견도 받고, 설득도 하면서 광범위하게 자영업자들을 접촉할 계획입니다. 이렇게 정의당이 자영업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면 정부·여당이 재정 부족, 자영업자 반발 등의 핑계를 대기 어렵게 되죠.”

정치의 완성은 정당

20대 국회에서도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현장 정치’를 강조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정의당은 다를까. “민주평화당의 경우 대표 한 개인만 움직였던 한계가 있었다고 봐요. 대표만 움직여선 안 되고 정당 전체가 움직여야 합니다. 당내 정치인과 당원들의 뜻과 실천이 모이도록 하는 게 가장 먼저 할 일이죠. 이를 위해 당원들이 다시 기운을 ‘붐업’할 수 있도록 돕고, 전국 지역위원회를 돌면서 함께 캠페인도 하고 현장도 찾을 예정입니다.”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리 탁월해도 한 명의 인물이 세상을 체계적으로 바꿔내기 힘들다고 봅니다. 정치의 완성은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정당입니다. 그러기 위해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더 힘을 키우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이 되도록 할 겁니다.”

정책을 강조하는 김 대표의 등장으로 정쟁으로 가득한 국회에 모처럼 ‘정책 바람’이 불었다. 이날 인터뷰 직전 김 대표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한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당 선거 과정에서 (김 대표가) 정책을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국회가 정책 중심으로 경쟁하고 협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9월 정기국회 대정부 질의가 정쟁으로만 흐른 것을 보고 좌절했다. 대통령 말씀대로 정책 중심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날 김 대표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했을 때도, 첫 상견례 자리였지만 노동관계법, 공정경제 3법 등에 대한 ‘즉석 정책 대담’이 이뤄지기도 했다. 김 대표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마음으로 신발끈을 조인다. “신상품은 일주일, 한 달 지나고 나서 별거 없다 싶으면 더 이상 안 팔립니다. ‘혁신적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오래가겠죠. 여의도에 정의당발 노란색 정책 바람이 솔솔 불도록 만들겠습니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21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김 대표의 첫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김 대표의 구상은 무엇일까. “민주당은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당헌·당규를 지키는 것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보궐선거를 치르는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선거연대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에 서울시당위원장이 된 정재민 위원장, 권수정 서울시의원 등 훌륭한 정의당 후보들이 있습니다. 부산에서도 후보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렇게 정의당 후보들과 다른 진보정당들, 시민사회와 함께 진보적 선거연대를 협의할 생각입니다.”

2022년 3월 대선 역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당이 국민에게 인기 있어야 대선 후보들도 신나서 선거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당 지지율을 두 자릿수로 올리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래야 심상정 의원과 이정미·윤소하 전 의원, 현역 의원들과 차기를 고민하는 2세대 정치인들이 함께 다양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거예요.” ‘경쟁’에 김 대표도 포함될까. “훌륭한 후보가 많으니 그분들이 경쟁하면 돼요. 혹시 어떤 사정이 있어 제가 차출될 필요성이 생기면 언제든 그라운드에 올라갈 준비는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선의 경우 저도 당당히 그 후보군에서 뛸 예정입니다.”

‘평등한 자유’를 꿈꾸며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보정치인 김종철’이 꿈꾸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만 사람의 이익보다 한 사람의 자유가 더 무거운 세상을 꿈꾼다.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개인의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39살의 젊은 진보정치인 김종철은 <출발 3%>라는 제목의 ‘중간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진보정치인이 ‘평등’이 아니라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 이채롭다. 2020년 50살 정의당 대표 김종철의 생각은 어떨까. “모든 인간은 죽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자유’예요. 평등은 자유를 위한 수단으로, 평등해야 자유가 보장됩니다.”

‘자유가 확장되는 사회’를 향한 그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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