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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살찐 고양이가 안 되는 법

등록 2020-09-26 00:48 수정 2020-09-28 01:54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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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흠 의원의 처신은 교과서 같다. 물론 나쁜 의미다. 정치인들의 해명은 형식이 이미 정해져 있다. 첫째, 불법은 아마도 없다. 둘째, 그래도 도의적 책임은 지겠다. 셋째, 하지만 모든 건 모함이다. 박덕흠 의원이 탈당하면서 주장한 것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해충돌이나 1천억원대 특혜 수주 의혹은 사실이 아님에도 당에 부담을 줄 수 없어 탈당하지만 사태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최근 연이은 악재에서 벗어나려는 여당의 음모라는 거다.

여당의 정치적 계산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특혜 수주 의혹은 그렇다 쳐도 국토교통위원회에서 5년간 활동하고 간사까지 맡았던 국회의원이 관계된 건설사가 피감기관으로부터 공사를 계속 수주해온 것은 그 자체로 이해충돌 문제를 야기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국민이 볼 때 납득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긴급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었다. 당내 논란을 봉합한 결과였다. 그러나 징계를 위한 조사는 탈당 탓에 시작도 못하고 좌초됐다. 박덕흠 의원 탈당은 그래서 당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게 아니라 징계를 피할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지도부와 논의하고 내린 결정은 절대 아니라지만, 협의가 없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결국 진상규명이란 그저 핑계였던 게 아닌가?

이와 비교하면 더불어민주당이 김홍걸 의원을 신속하게 제명한 것은 잘한 일 같다. 하지만 이 역시 ‘봐주기’라는 지적을 안 할 수 없다. 김홍걸 의원은 비례대표인 탓에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게 결정에 반영된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격 제명’은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후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가린다. 김홍걸 의원이 비례대표가 된 것은 ‘김대중 후광효과’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양정숙 의원과 윤미향 의원 검증 실패 역시 지도부가 비례위성정당을 급조하도록 하면서 생긴 문제다. 국민의힘에서 재산 신고 누락 의혹을 받는 조수진 의원이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의 공신(?)으로 불리는 윤창현 의원도 마찬가지다.

앞서 박덕흠 의원이 오랫동안 국토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당 지도부가 안이하게 판단한 탓이다. 결국 김홍걸 의원이 제명당해 의원직 상실을 피한 것이나 박덕흠 의원이 탈당으로 징계를 피한 것이나 ‘꼬리 자르기’인 것은 매한가지란 거다.

국민의당은 여당에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인사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거나 피감기관 장관을 지낸 이들이 관련 상임위원장을 맡은 사례가 있다며 전수조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장관을 맡았던 정치인이 관련 상임위에 있는 걸 이해충돌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기준이 필요하다면 ‘내로남불’을 말하기보다는 법을 만드는 게 순리다.

누더기가 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전례로 볼 때, 거대 양당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 주장은 고양이가 생선을 맡겨달라 청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못 믿겠다고만 할 순 없으니 정치인들 스스로가 믿음직한 고양이임을 증명했으면 좋겠고, 기왕 하는 거 ‘살찐 고양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법도 만들면 더 좋겠다. 그러면 지금까지 고개를 좀 갸우뚱한 일들도 좋게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른다.

김민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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