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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품격] 부동산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내 나라 남의 땅이 된 한국, 문재인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등록 2020-09-19 03:06 수정 2020-09-21 01:27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청와대는 2019년 말부터 참모진에게 살지 않는 집은 처분하라고 했다. 6개월 안에 하라고 시한도 주었다. 연장도 해줬다. 하지만 상당수가 팔지 않았다. 2020년 8월 말 교체될 때까지 버티다 나간 한 비서관은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볼멘소리를 했다는데, 대상 아파트는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에 있다. 500만원만 내려 내놨어도 바로 나갔을 텐데…. 여하튼 그를 마지막으로 청와대 고위직 가운데 다주택자는 ‘0명’이 됐다. 이 어려운 걸 해냈다고 해야 할까.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도 그렇지만 누구보다 대통령이 큰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국민은 더 크게 다쳤다. 아, 문재인 정권도 부자 정권이구나.

부자는 정치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부자만 정치를 해서는 곤란하다. 어떤 집단이든 성공하려면 그 구성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어야 한다. 정부의 민생 정책이 왜 이리 현실과 엇박자가 나는지 공직자들의 부동산 보유 실태를 보면 일견 이해된다. 현직 장관 절반이 여전히 다주택자다(18명 중 9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2020년 9월 발표). 2급 이상 공직자 열 명 중 셋은 다주택자다(2020년 3월 기준). 힘 있는 부처나 사정 기관일수록 다주택자가 많다. 2년 전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1급 이상 공직자 셋 중 하나(33%)는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살지 않는 집은 팔라는 주문은 진작 있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내놓으며 1주택 보유 권고와 함께 이듬해 4월로 기한도 정했다. 부동산만은 자신 있다던 정권 초기 실세 장관의 말이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저마다 똘똘한 한 채 혹은 두 채를 묻어두고 ‘짱 보며’ 버텼다.

국회로 가면 더 민망하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76명 가운데 다주택자는 40명을 웃돈다(21대 총선 선관위 신고 기준, 경실련 2020년 6월 발표). 3채 이상 보유한 의원 수는 심지어 ‘원래 그런 정당’인 국민의힘보다 많다.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두 당이 다를 바가 없다는 방증이다. 투기를 막고 주거 안정을 위한 입법에 앞장서야 할 여당 의원들마저 이러할진대, 살벌한 ‘내 나라 남의 땅’에서 내쫓기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까.

안타까운 건 문재인 정부는 이럴 뜻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잘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선의를 믿는다. 그런데 도통 작동을 안 했다. 무능 때문일까. 위선이 더 큰 이유라고 본다.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조차 정부 정책 기조를 따르지 않는 위선 말이다. 그러니 스물세 번이나 나온 부동산 대책은 미친 집값에 덩달아 ‘난리부르스’만 춘 꼴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4·15 총선 전 모든 출마자에게 “2년 안에 한 채만 남기고 죄다 팔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몇 달째 매각 현황이나 이행 계획은 오리무중이다. 서약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마지못해 최근 7월 초 기준 2명이 매각했다고만 밝혔다. 대체 뉘신지, 어디신지 알 길이 없다. 다주택자인 김홍걸 의원의 말 바꾸기와 꼼수 증여, 부동산 쇼핑 실태 등이 알려진 것도 KBS 등 언론이 재산 내용의 전용면적 같은 최소 정보만으로 인터넷 등기소를 헤엄치며 찾아낸 결과였다. 민주당은 계속 미적댄다. 누가 봐도 이유는 하나다. 팔기 싫은 거다.

팔라는데도 안 파는 공직자를 안 자를 이유가 뭔가. 상식선을 벗어나 재산 집착을 하는 소속 의원들을 왜 가만두나. 내 편이라 봐주나. 저쪽은 더하니까 괜찮다고 여기나. 아니면 너무 중요한 일을 하느라 이 정도 일은 미룰 수밖에 없다는 건가.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지만 낮게 나는 갈매기가 정확히 본다. 최선을 다해 1주택 약속을 지켜야 한다. 나아가 선출직이든 임명직이든 지역과 여성, 청년을 안배하는 것 이상으로 철저히 ‘계급 안배’를 하자. 돌아선 민심의 옷자락이나마 잡는 길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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