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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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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대③ 박주민] “그가 머문 거리엔 존중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8·29 전당대회 ‘대신 쓰는 출사표’③ 기호 3번 박주민 후보
‘40대 기수론’ 박주민 ㅣ 카리스마보다 공감력으로 소통하는 새 시대 리더
등록 2020-08-08 07:13 수정 2020-08-12 05:36
2017년 여름 서울 은평갑 박주민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박 의원(가운데)과 이창민 교수(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창민 교수 제공

2017년 여름 서울 은평갑 박주민 의원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박 의원(가운데)과 이창민 교수(오른쪽)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창민 교수 제공

더불어민주당이 8월29일 새 대표를 선출한다. 이낙연, 김부겸, 박주민(기호순) 세 후보가 경합 중이다. 앞으로 2년간 176석의 거대 여당을 이끌 당대표가 되기 위해 세 후보는 7월25일 제주를 시작으로 주말마다 전국 광역시·도 대의원대회에서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 후보가 당대표가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21>은 각 후보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측근’ ‘동지’ ‘절친’들에게 물었다. ‘당대표 후보 대신 쓰는 출사표’ 콘셉트다.
박주민 후보의 출사표는 이창민 한양대 교수가 맡았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반에 만나 함께 학생운동을 하며 우정을 키웠지만 삶의 궤적은 달랐다. 하지만 박 후보가 정계 입문한 뒤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_편집자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인연은 1992년 종로학원에서 시작됐다. 100명 넘는 재수생이 한 반에 몰려 있던 시절, 그는 교실 앞쪽에서 나는 주로 뒤쪽에서 지냈다.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시 박 의원은 공부를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대원외고 출신 재수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박 의원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점수가 너무 잘 나와서 법대를 갔다는, 좀 재수 없게 들리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이다.

그 뒤 전공은 달랐지만 같은 대학의 93학번이 됐고 학생회라는 공간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학생운동이 영향력을 잃어가던 시절이었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더 많은 고민을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꽤 늦게까지 남아 학생회를 책임졌던 사람은 박 의원이었다. 다들 군대를 가거나 취업 준비로 활동을 정리하던 때, 그가 내게 와서 이야기했다. 자기는 남는다고. 얼떨결에 나도 남겠다고 답했다. 물론 박 의원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아, 주민이가 참 많은 일을 했구나!”

대학을 졸업하고 박 의원은 사법시험을 보고 나는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으려 미국으로 떠났다. 이때부터 박 의원은 나와는 많이 다른 길을 갔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직장을 구하는 동안, 그는 평택 미군기지,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등 다양한 현장에서 사회적 약자와 함께했다.

그리고 세월호가 있었다. ‘거리의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을 거다. 술을 한잔하면서 나에게 시민운동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그때 실망하던 박 의원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바빴고, 무엇보다 사고가 보수화됐던 시절이다. “너는 아직도 철없이 사냐”며 비아냥거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서면서 얼굴을 보지 못했다.

2016년 박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 영입인재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 싶어 지인들에게 박 의원을 소개하면서 그의 행적을 되짚어봤다. 많은 활동이 그제야 명확하게 내 마음에 들어왔다. “아, 주민이가 참 많은 일을 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호 변호사 하더니 그게 다 정치를 위한 발판이었다’ 등 냉소적인 야유를 듣는 게 마음 아팠다. 조그마한 자기희생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훈계만 일삼는 거 같은 생각에 화도 났다.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히 그와 연락하며 지낸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어떨 때는 함부로 말하기 어렵고, 가끔 말하면서 눈치도 보는 나를 발견한다.

박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나한테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기성 정치인과는 다르게 주변에 세력 모으는 재주는 없어 보이는 ‘거지갑’ 의원이 어떻게 저런 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내 생각은 이렇다.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막말이 넘쳐난다. 가짜뉴스는 더 이상 새로운 이슈도 아니다. 이런 시대에 박 의원이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감능력 때문이다. 당신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한탄을 몇 분이나 들어줄 수 있나? 솔직히 나는 남의 이야기를 5분 정도 듣는 것도 이제 자신이 없다. 한국 사회의 리더들은 공감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기에 바쁘다. 명분은 있다. 자기가 옳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당대표 선거에서 내세우는 소통의 필요성은 그의 공감력과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의 비전은 뉴딜, 약자 구호, 경제 활력 회복

요즘 더불어민주당을 ‘사회주의’ ‘빨갱이’라 비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참으로 당황스럽다. 나는 오히려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지는 민주당이 걱정이다. 176석 집권여당이 우리 사회에 제시하는 비전과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국난 극복과 당의 안정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전국 단위 네 번 연속 승리의 안일함과 관성이 묻어나오는 것만 같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쌓아올리는 건 어렵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쉽게 잊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박 의원은 민주당이 앞으로 10년을 굶을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전환의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야 할 비전을 이야기한다. 뉴딜, 사회적 약자 구호, 경제 활력 회복 등이다.

박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 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경제학을 공부한 내가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그래서 나는 박 의원이 너무 경제를 모르고 시민운동가적인 사고를 한다고 반박했다. 유치한 말싸움 같지만 돌이켜보면 맞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도, 박 의원도 부족한 부분이 많을 거다. 문제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우기는 거다. 특히 리더들은 카리스마를 잃을까봐 자기가 아는 만큼만 계속 밀고 나가곤 한다. 아직도 민주주의, 독재, 공산주의를 논하면서 싸우는 게 한국 정치다. 그리고 지지자들을 위한 ‘사이다’ 정치만 한다. 박 의원은 자기 확신에 차 있지 않다. 솔직하며 지적 호기심이 많다. 말도 신중하다. 박 의원은 단순히 세대교체를 외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는 세대공감과 세대혼합이라고 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다. 이는 전환의 시대에 새로운 가치를 발굴할 리더의 요건이다.

복종 아닌 존경의 메커니즘 만드는 정치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모두 훌륭한 지도자다. 그러나 각자 특징이 너무 다르다. 결국 시대의 요구가 리더를 통해 반영된다. 박 의원은 승부수를 던졌다. 나는 새로운 가치를 위한 박 의원의 도전을 응원한다. 이제 경륜과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가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정당부터 공정과 활력이 넘치는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군기 잡기가 아직도 먹힌다면 그건 리더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복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후진적 조직이다. 박 의원은 겸손한 권력, 국민의 공복이다. 누군가는 40대 재선 의원의 당대표 도전이 무모하다고 한다. 하지만 586세대에 대한 반성과 문제제기가 시작된 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50년 만에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투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면 정체와 퇴보가 우리를 기다릴 뿐이다. 혁신을 위한 가치투자를 부탁드린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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