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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산 넘어 입법 성공기’ 유치원 3법·여성폭력방지법

다양한 장벽을 돌파하고 입법된 ‘유치원 3법’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록 2020-05-25 17:41 수정 2020-05-29 02:06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왼쪽),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2020년 1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이 통과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왼쪽),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2020년 1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유치원 3법’이 통과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국회는 법을 개정하고 제정하는 곳이다. 그런데 입법부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게 수월하지 않다.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 총 2만3045건 중 2890건(원안+수정안)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통과율이 약 13%로, 국회의원이 법안 10건을 발의한 경우 1건 남짓 통과된 셈이다. 다른 법률안에 반영된 것(5163건)까지 포함해도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의 반영률은 35%(2890건+5163건=8053건)에 그친다. 이익집단과 이해관계자의 반대, 상대 당의 반대, 여론의 무관심 등 다양한 ‘입법 장벽’이 법안 통과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13%의 좁은 문을 통과한 법안들은 어떻게 입법 장벽을 돌파했을까. 더불어민주당 초선인 박용진 의원의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과, 같은 당 초선 정춘숙 의원의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 과정을 통해 ‘법안의 운명’을 들여다봤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법안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국회 밖의 ‘여론’과 시종일관 함께했다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도 다르지 않을 풍경이다.

첫 번째 장벽, 불편한 이해관계자

유치원 3법은 법안 발의부터 통과까지 1년3개월 내내 이익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의 반대라는 큰 벽에 지속적으로 부딪혔다. 유치원 3법처럼 이해관계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법은, 법안 발의부터 이익단체들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을 찾는다. 이를 뚫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발의한 의원의 의지가 중요하다.

박 의원은 2018년 국정감사를 닷새 앞둔 10월5일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토론회를 국회에서 열었다. 석 달 전 교육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겨온 그는 “유치원 비리는 사립유치원장들의 거센 반발로 건드리기 어려운 교육위의 해묵은 과제”라는 말을 보좌관에게 들은 터여서 각오는 했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 의원은 “토론회가 예고되자 한유총의 압박이 시작됐다”고 했다. “토론회 며칠 전부터 내 지역구(서울 강북을)의 유치원 원장들이 의원회관으로 찾아와서 ‘왜 우리를 적으로 만드느냐’며 토론회를 열지 말라고 했다.” 곧이어 동료 의원을 통한 압력도 이어졌다. “여야 동료 의원들이 자신들 지역구의 유치원 원장들을 거론하면서 ‘나 ○○○ 원장과 친하다. 그 사람 얘기 잘 들어줘라’ ‘큰 정치를 해야지 왜 유치원과 싸우려고 하느냐’ 등의 회유를 해왔다.” 토론회는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욕설과 야유, 물리력으로 얼룩졌다.

박 의원은 사립유치원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여론의 지지를 얻는 방법을 택했다. 국정감사에서 유치원 교비로 사립유치원 원장이 명품 핸드백과 성인용품을 샀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감사 적발 유치원 명단’을 발표했다.(2018년 10월11일) 학부모들을 비롯한 여론은 분노했다. 여론이 들끓자 민주당은 같은 해 10월23일 박 의원의 유치원 3법을 당 소속 129명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당론으로 발의했다. 의원 개인이 만든 법안이 당론으로 발의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박 의원은 “여론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유치원 비리 근절에 대한 여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애초 국감 이후에 법안을 발의하려했던 의원실은 매우 바빠졌다. 유치원 3법 성안 실무를 담당한 이시성 보좌관은 “국회 보좌진 생활 12년동안 가장 급박했던 국감이었다”며 “의원님의 진두지휘하에 보좌진들이 밤 12시까지는 유치원 3법 준비를 했고, 밤 12시부터는 다음날 국감준비를 위해 질의서를 쓰는 등 모두 잠도 못자고 일했다”고 귀띔했다.  

11월8일 법안은 교육위에 회부됐다. 주요 내용은 모든 사립유치원이 국공립유치원과 마찬가지로 국가관리회계시스템(에듀파인)을 의무 도입하도록 하고, 유치원 교비 등을 부정하게 사용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법안심사소위에서 7차례 논의가 이어졌지만, 여야는 평행선을 달렸다. 접점을 찾지 못하자 임재훈 바른미래당 의원이 원안보다 형사처벌 수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중재안을 내놓았다. 여야 합의에 바탕을 두는 상임위 논의 구조상 특정 당이 반대를 고수하면 법안 논의 진도가 나가기 어렵다. 논의가 맴돌자 한국당을 제외한 교육위원들은 중재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다(12월27일). 교육위의 민주당(7명)과 바른미래당(2명) 의원 수가 패스트트랙 지정 요건(재적 의원 5분의 3)인 9명을 딱 맞출 수 있었다. 박 의원은 “(패스트트랙 가부를 투표하는) 기표소 안에서 내가 표를 잘못 찍으면 바로 부결되는 거라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6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신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6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신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제안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두 번째 장벽, 상대 당의 반대

패스트트랙 기간에 국회 논의에 진전은 없었다. 되레 이때 한유총은 에듀파인 도입 의무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21대 총선을 앞둔 여야 지역구 의원들과 간담회를 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적극 로비하는 등 유치원 3법 통과 저지에 나섰다. 박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한유총이 지역구 의원들을 흔들어대니까 유치원 3법의 본회의 통과를 장담하기 어렵겠다는 우려가 컸다”고 했다.

패스트트랙 기간 종료로 2019년 11월22일 유치원 3법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당시 여야는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 공직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에 따라 유치원 3법은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중요한데도 쟁점 법안이 여야 갈등 속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 의원은 ‘유치원 3법이 물 건너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크게 느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기적인 정치인이라는 얘기를 듣더라도 유치원 3법을 꼭 통과시키겠다”고 당을 압박했다. “민식이법·김용균법이 통과된 것은 국회가 피해자 부모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치원 3법은 (유치원생 자녀, 친척을 둔) 모두가 피해자임에도 국회에서 통과를 위해 악을 쓸 사람이 없더라. 나라도 통과될 때까지 계속 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장벽, 여론의 무관심

상황은 악화했다. 한국당이 선거법과 검찰개혁법 통과 저지를 위해 유치원 3법을 포함한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으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다. 박 의원은 이때를 ‘위기의 절정’으로 꼽았다. 12월16일 그는 패스트트랙 저지를 위해 한국당 의원들이 농성 중인 국회 로텐더홀로 뛰어들었다. 한국당 의원들의 비난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은 조속히 본회의를 개최해 유치원 3법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무리한 일인 줄 잘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유치원 3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여론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법안 취지에 동의하는 정당들과의 ‘연대’도 법안에 힘을 보탰다.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공조 속에 한국당의 반대가 지속될 수는 없었다. 해를 넘겨 지난 1월13일, 유치원 3법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유치원 3법 입법 과정 내내 기득권 이익집단의 엄청난 로비와 방해가 있었고,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많은 걸 할 수는 없지만 마음먹은 것은 해낼 수 있는 정도의 권한은 국민이 준 것 같다. ‘국민이 원하는 이 법이 통과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절박감이 있었다.”(박용진 의원)

맨바닥에서 시작, 법 제정의 어려움

법을 새로 만드는 것(제정)은 고치는 것(개정)보다 더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특히 ‘젠더’ 이슈처럼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법안을 만드는 것은 고생스러운 일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여성폭력방지법)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미투 운동’의 불씨를 댕긴 뒤 한 달여 만에 발의됐다. 덕분에 ‘미투 1호 법안’ 이름이 붙었고,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인 10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은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지원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자는 취지로 제정됐다.

그렇다고 이 법이 한 달 만에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출신인 정춘숙 의원은 20대 국회에 비례대표 의원으로 들어오고 나서 법안 발의를 준비했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을 비롯해 스토킹, 데이트폭력, 성폭행 등 관련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법 제정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빗발치고 있었다. 2017년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젠더폭력방지기본법’ 마련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법안을 만드는 중에 미투 국면이 펼쳐졌고, 정 의원은 대안이 될 여성폭력방지법을 즉각 발의하기로 했다. 여론의 요구가 있을 때가 아니면 법 제정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한쪽에서는 관련 쟁점이 다 나오고 난 뒤에 이를 모두 종합해서 법안을 발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수정할 수 있다며 지금 내야 한다고 밀어붙였다.” 이 법이 제정법이라 국회 통과가 더욱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개정법은 기존에 있는 법이라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된 상태이지만, 제정법은 법안 제정의 필요성과 신뢰, 공감대 형성을 맨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에 더 험난하다.”

8월21일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성폭력방지법 논의가 시작됐다. 법안심사소위 상정은 여야 간사들의 합의에 따른다. 어느 쪽이든 반대하면 법안이 논의조차 될 수 없다. 정춘숙 의원은 여가위 간사였다. 덕분에 법안 상정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여가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여야 간 큰 이견 없이 법이 한 달여 만에 가결됐다. 9월20일, 다음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는데 문제가 터졌다. 원안에서는 법의 보호 대상에서 성별 구분이 없었지만 법사위 논의에서 여성으로만 제한하는 것으로 내용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정 의원은 “여가위에서 결정한 법안을 법사위에서 반쪽짜리로 바꿔버린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소관 상임위에서 가결한 법안에 대해 체계·자구 심사를 해야 하는 법사위가 법안의 핵심 내용까지 바꿔버리는 ‘상원’ 기능을 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화살은 정 의원에게 쏟아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정 의원이 여성만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의원실로도 하루에 10여 통씩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남성들로부터는 ‘남성은 빠진 여성만 보호하고 지원하는 이런 법을 왜 만드느냐’는 오해에서 비롯된 비난을, 시민사회단체로부터는 단체의 요구 수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 ‘누더기’ 되는 법들

의원과 보좌진은 항상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한다. 법안은 국회 논의 과정을 거치며 애초 발의 의도와 달라지기도, ‘누더기’가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정 의원은 법사위에서 반쪽이 된 법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할지 고민하며 두루 의견을 들었다. “지금처럼 미투 국면이 아니면 통과가 어렵기 때문에 일단 제정하고 추후 수정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후 12월7일,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일단 그릇은 만들어놓고 앞으로 더 채우는 길을 택한 것이다. 4월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춘숙 의원은 경기 용인병에서 재선했다. 박용진 의원은 서울에서 최다 득표율(64.45%)로 당선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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