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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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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회의 시간] ‘임계장’ 조정진씨가 고민정 의원에게

등록 2020-05-23 05:42 수정 2020-05-26 01:59

5월30일 시작하는 제21대 국회 앞에도 4년이라는 국회의 시간이 펼쳐집니다. 코로나19로 여기저기서 삶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국회가 할 일이 많습니다. 제21대 국회 앞으로 7통의 편지가 배달됩니다. △10대 청소년 △성소수자 △20대 여성 △학부모 △배달노동자 △1인 가구주 △노인.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보통의 바람을 꾹꾹 눌러쓴 손편지입니다. 편지를 받은 의원과 정당이 정성스레 답장을 쓰듯, 시민들이 요구하는 법안과 예산안을 차근차근 완성했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고민정 의원님, 의원님을 좋아해요. 맑은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이시기 때문입니다. 왠지 저 같은 노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주시리라는 믿음이 들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첫인사 드려요. 저는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는 63세, 조정진입니다. 최근에는 <임계장 이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랍니다. 그리 유쾌한 글은 아닙니다.

저는 직장에서 60세에 퇴직한 후에도 생계를 위해 배기가스로 가득한 버스터미널에서 노동하다가 척추염이 걸렸는데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받자 그 부작용으로 신장 기능이 절반 이상 손상되고 말았습니다. 젊어서 잘 살았어도 그의 노년이 괴롭다면(특히 저처럼 몸이 아파서) 그의 삶은 인생 전체가 괴로운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청년 문제와 노인 문제를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청년들의 취업 시점이 늦어짐에 따라 저 같은 은퇴자들도, 자녀가 취업할 때까지 기약 없는 노동을 하게 됩니다. 이제 곧 신장투석을 받아야 한다네요. 문득 죽음이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답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 된 사람 모두의 마음일 것입니다. 의원님께 여쭙니다. 사람이 존엄을 유지한 상태로 삶을 마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다소 무거운 말이지만,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수입으로는 아파트 대출금 상환하기도 버거워, 부모의 요양병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많이 부족한데도, 부모의 생물(학)적 수명만 길어지게 되면, 기약 없는 세월을 부양해야 하는 자녀들의 삶이 위태로워집니다.

이 문제를 의원님과 더불어 논의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가수 송가인에게 나이 든 팬이 많은 것은 꼭 노래를 잘하기 때문만이 아니고, 노인의 마음을 그리 잘 알아준다네요. 의원님도 국회의 송가인이 되어주세요. 파이팅!!!!!!!!!!!

임계장 조정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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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2018년 2월부터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도록 한 존엄사는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스위스처럼 개인이 자발적으로 죽음의 시기를 앞당기는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고 별다른 논의도 되지 않고 있다.

나이 들어 아프면 치료와 돌봄을 받으며 인간답게 여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제도의 틀도 마련돼 있다. 현재 노인이 치료받기 위해 요양병원(건강보험 적용)에 입원하거나 요양원(노인장기요양보험 적용)에서 돌봄을 받는 비용은 본인이 20% 부담하면 된다. 다만 여기에 치료비·식비·간병비 등을 보태면 개인과 가족이 매달 감당해야 하는 돈이 상당하다. 요양원과 달리 간병비를 전액 가족이 내야 하는 요양병원은 공동간병인을 둬도 한 달에 총 100만~200만원이 들어간다.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내건 문재인 정부는 보호자 없이 간호사·간호조무사가 간병까지 담당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하루 2만원) 제공 병상 수를 크게 늘려왔지만, 중증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선 그런 서비스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제 국회의 시간, 평범한 사람들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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