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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정치의품격] 윤미향, 설득이든 맞짱이든 뭐든

정치하면 안 되는 시민운동가,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제1314호
등록 : 2020-05-22 14:14 수정 : 2020-05-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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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년 전이다. 장원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 하필 가장 뒤숭숭한 날, 녹색연합 사무실을 찾을 일이 있었다. 김제남, 서재철 등 실무 책임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녹색연합은 이제 어떻게 되냐” 조심스레 묻자, 서재철 자연생태국장(현 전문위원)이 “괴롭지만 괜찮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총장 한 명의 잘못으로 무너질 조직이면 무너져야죠.” 순간, 서 국장의 까치집 뒤통수에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이 느낌 뭐지? 꿀릴 것 없는 활동가의 자부심과 조직에 대한 신뢰가 단단하게 느껴졌다. 당시 녹색연합은 장원 전 사무총장에 대한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즉각 그의 직책을 박탈하고 제명했다.

여러 악조건 속에 시민단체 활동을 꾸준히 해온 이들에게는 일종의 ‘도덕적 면허’가 주어진다. 과정에서 실수나 불찰이 있어도 대체로 접고 봐준다. 나를 대신해 좋은 일 옳은 일 해준다는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가 이를 내세우면 불편해진다. 그 면허는 사람들 사이에서 ‘효과’만 있는 거지 그 자체가 ‘자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 기부금 처리나 자산 거래 등과 관련해 의혹을 받는 처지에서 말끝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한 지난 30년 운동의 성과”를 들먹이는 건 듣는 내내 불편하다. 그 헌신과 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사자 운동도 아니고 당사자를 도우며 해온 운동이다. 나라 안팎 극우, 친일 세력의 방해와 협잡이 판치는 악조건 속에서 말이다. 어떤 전례도 참고도 없이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보듬고 독려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밀어왔다. 온몸으로 길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박수로 후원으로 그 길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가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부터는 다른 길이다.

윤 당선자가 일부 회계 오류를 시인한 정의연의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의아했는데, 다음날 아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빗댄 심정을 페이스북에 비장하게 올린 것을 보고 뜨악했다. 이 와중에 한쪽만, 내 편으로 추정되는 쪽만 보고 있구나 싶어서다. 조국 일가의 처신이 그릇돼 보여도 검찰이 미워 눈감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정의연의 주먹구구식 회계 문제에도 친일 세력과 언론이 어찌 나올지 걱정돼 말을 아끼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걱정과 배려를 여지없이 무시한 태도였다.

그는 “정의연과 저에 대한 공격은 위안부 진상 규명과 사죄, 배상 요구, 평화인권운동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모략”이라고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피해자와 운동단체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라고 목소리 높였다. 정의연 기자회견 직후 여론이 그리 나쁘지 않을 때였다. 그러나 그 뒤 새로 제기된, 본인만 밝힐 수 있는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일부 후원금, 지원금을 개인 계좌로 받은 것과 그 입출 내역이 분명하지 않은 것, 해명 과정에서 불거진 개인 주택 거래 자금 출처 등이 그것이다. 근거만 정확하게 대면 아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정의연은 단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해명에는 충실한 편이다. 일일이 자료를 내놓으며 소명하고 있다. 일부 언론의 사실 왜곡과 악의적인 물어뜯기를 비판할 자격도 그런 과정에서 생긴다. 그러나 윤 당선자는 개인에 대한 의혹조차 단체 뒤에 숨어 ‘업혀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정의연의 해명마저 버겁고 꼬이게 하는 처신이다.

운동가로 사는 삶은 면죄부나 월계관이 아니다. 정치적 보증수표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이번에 보여준 태도는 운동에도 정치에도 불신을 덧댄다.

억울하거나 설사 부당한들, 비판하고 공격하는 쪽을 향해 설득이든 맞짱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려우면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뜻 맞는 이들과 계속 운동을 하는 게 낫다. 그것도 값지다. 그의 평생 동지였던 이용수 인권운동가의 말마따나 해결해야 할 일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더 그렇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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