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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여년 동안 비난 받은 유시민의 입

등록 2020-04-18 05:06 수정 2020-05-02 19:29
<유시민의 알릴레오> 화면 갈무리

<유시민의 알릴레오> 화면 갈무리

여론조사와 몸무게는 추이를 봐야 한다. 상황에 따라 등락이 있고 튀기도 하지만 거짓말을 못한다. 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유시민(사진)의 말도 그렇다. 가끔 틀리거나 튀기도 하지만, 추이를 주목하는 게 좋다.

이번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그랬다. 그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는 안목이 달라졌다며, 전에 없던 ‘관대함’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것이 투표율과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보았다. “범진보 진영 180석”이라는 희망 사항은 이렇게 나온 말이다. 미래통합당은 그 말을 낚아채 ‘현 정부의 오만과 폭주를 막아달라’며 길바닥에 엎드렸고, 이들의 위기감을 부채질해 그쪽 표 결집을 도운 꼴이라며 더불어민주당 사람들도 원성을 쏟아냈다. 자당 후보와 ‘뜬금없는’ 정책협약식을 하러 다니며 선거는 자기 혼자 다 치르는 기세인 한 인사는 “저의가 의심된다”고까지 했다. 직후 다른 라디오 방송에서 유시민은 “저한테 한 소리는 아닐 것”이라 눙쳤지만, 그가 그간 민주당에 빙의돼 해준 많은 충언과 조언을 볼 때 저의 운운은 참으로 성마른 발언이었다. 대체 의석을 누구에게 맡겨놓기라도 했나. 저마다 얻을 만큼 얻는 거지. 유권자도 바보가 아니다. 유시민의 말 한마디에 찍을 사람 바꾸고 안 찍을 정당 새삼 찍지 않는다.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 유시민은 늘 이런 식으로 뒤집어썼다. 실제 언행보다 몇 배는 더 욕을 먹었다. 욕의 누적 절대량으로 봤을 때 한 200년은 정치한 사람 같다. 호불호도 갈린다. 그런데 둘이 같은 이유다. 저 잘난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영향력이 크고 여느 정치인보다 정치를 잘 알고 심지어 잘하지만 그는 이제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를 그만둔 뒤 대놓고 굵은 웨이브로 머리를 파마했다. 사람이 달라 보인다. 직모와 곡모의 차이만큼 부드러워졌다. 자신을 둘러싼 날 선 이야기도 적당히 둘러메치거나 타 넘어간다. 아프게 잃은 ‘동지’(노무현)와 ‘동무’(노회찬)를 환기할 때만 드물게 스스로 링에 올랐다.

이번 ‘180석’ 발언으로 정의당 좋은 일 시킨다는 비난도 나왔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이라 더 경솔하다는 것인데, 노무현의 정신 어디에 정의당이나 다른 소수정당에 표를 주지 말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정의당에서조차 그 발언을 곡해했다. 선거 막바지라는 민감한 시기임을 고려하더라도 정치권의 ‘유시민 사용법’은 늘 이렇다. 달면 써먹고 쓰면 탓한다.

진영(만)을 위한다고 욕먹고 진영(만)을 위하지 않는다고 욕먹는다. 정치를 정치로 보지 않고 종교로 보는 이들이 무리 짓고 그중 상당수가 유시민을 좋아하는 이들과 교집합을 이룬다 해도 그들의 행동이나 선택을 유시민이 책임질 수는 없다. 진영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과 진영을 위해 자신을 내주는 사람은 다르다. 같은 배에 타도 결정적 순간에는 다른 선택을 한다.

그가 특유의 영민함과 재바름, 성실함으로 공부하고 취재하고 분석해 내놓는 여러 말을 사실 우리는 공짜로 얻었다. 두어 해 전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뜨고 많은 이가 잘 몰라 우왕좌왕하던 때, 전공자도 아닌 그는 몇 날 며칠 날밤을 새워 공부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알려줬다. 토론에서 ‘무려 정재승이 발렸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공부해서 남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 요구가 많다. 선수도 감독도 아닌 해설자에게 경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강준만 선생이 말한 ‘정치적 소비자’로서도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싸울 때는 두들겨 맞지 않으려면 눈앞의 적을 봐야 한다. 관전하는 처지에선 시야각이 달라진다. ‘국민 해설자’로 살아온 최근 몇 년의 이력을 보면 그가 생각하는 진영의 범위는 굉장히 넓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유능함은 유익하다. 그가 정치하지 않는 건 아쉽지 않지만 잠시라도 ‘해설’을 쉬면 꽤 아쉽겠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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