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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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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하는 중도층 뒤늦은 겸손

임미리 칼럼 논란, 공천갈등… 깊어가는 민주당의 고민
등록 2020-02-22 05:18 수정 2020-05-02 19:29
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이해찬(가운데 지도 오른쪽)·이낙연(지도 왼쪽) 상임선대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월20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이해찬(가운데 지도 오른쪽)·이낙연(지도 왼쪽) 상임선대위원장과 민주당 의원들이 승리를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선거는 기세다.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연이은 악재에 고전 중이다. 우선은 ‘코로나19’다. 2월18일 대구 지역에서 슈퍼전파자가 등장한 이래 첫 사망자가 나왔고, 확진자 수의 증가가 가파르다. 재난은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다. 물론 책임을 묻는 여론이 50여 일 뒤 어떻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정부견제론↑ 정부지원론↓

민주당의 현실적인 고민은 당 안에 있다. 선거는 실수하는 쪽이 진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 갈등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그 실수의 결과로 오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선거판은 반대편으로 급하게 기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당에 최근 벌어진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 고발이나 김남국 변호사의 서울 강서갑 공천 신청 논란은 분명한 악재다. 칼럼 논란은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이번 선거를 책임지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유감을 표하고 당에서 즉각 고발을 철회하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강서갑 공천 논란은 문석균·김의겸·정봉주 등으로 이어진 논란에 더해, 지난해 ‘조국대전’까지 소환되면서 갈등이 당내 ‘조국내전’으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촛불로 지켜오던 여권에 우호적인 여론까지 변할 조짐이 보여 당내에는 위기감이 감돈다. 2월14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은 ‘현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정부견제론)와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정부지원론)를 물어 결과값을 내놨다(2월11~13일 전국 18살 이상 1001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설 연휴 전인 1월7~9일 조사에서 49%던 정부지원론은 43%로 떨어지고, 정부견제론은 37%에서 45%로 오르면서 여론이 뒤집혔다. 2%포인트 정부견제론이 앞선 수치다.

2019년 4~6월 세 차례 여론조사에선 정부지원론이 정부견제론보다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그때만 해도 민주당은 여당심판론을 넘어서는 야당심판론으로 과반을 차지하겠다는 기세로 내달렸다. 이번 조사로 드러난 여론이 오차범위 안이라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정부견제론과 정부지원론을 중도층에 국한하면 변화는 더 도드라져 보인다. 중도층이 지지했던 정부지원론은 1월까지만 해도 52%로 절반을 넘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39%로 13%포인트 급락했다. 이에 견줘 정부견제론은 37%에서 50%로 13%포인트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표본이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점(1월 조사 283명, 2월 조사 293명)을 고려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중도 표심은 선거 판세를 가른다. 선거일이 가까울수록 진보·보수 지지자들이 결속하는 경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야 할 것 없이 중도를 잡기 위해 전략을 집중한다. 게다가 중도층은 진보든 보수든 선거판의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여론조사의 반전이 일회성이 아니라면 중도층 표심은 여권에서 야권으로 ‘추세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에는 민주당 인재영입 논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수사·기소 분리 발언 등이 반영됐다.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이나 김남국 변호사 공천 갈등이 더해지면 중도층의 여당에 대한 표심 이반이 더욱 가속될 수 있다.

‘조국 프레임’의 늪

여기에 ‘조국’ 프레임이 지속되면 민주당에는 이로울 게 전혀 없다. 지난해 조국 논란 때 전체적인 여론은 현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를 의식한 듯 이해찬 당대표 등 지도부는 김 변호사가 강서갑에 공천 신청을 한 직후부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 부적격에 이어, 2월15일 후보자 추가 공모 방침을 정하면서부터 상황이 꼬였다. 여기에 조국백서추진위원회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김 변호사가 강서갑 지역 공천 신청 뜻을 밝히고, 금태섭 의원이 “조국 수호로 총선을 치를 수 없다”고 맞서면서 민주당은 조국 프레임에 포획되는 모양새다.

물밑에서 움직이던 지도부는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밝혔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2월20일 KBS 라디오 프로그램 에 나와 “김 변호사의 행보는 지도부와 사전에 협의했거나 지도부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여러 경로로 (지도부의) 의견이 전달이 됐을 것”이라며 “일반적인 프로세스(절차) 또는 당헌·당규가 정한 프로세스가 가동될 것”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가 김 변호사와 분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같은 날 김성환 대표비서실장이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께서는 금 의원과 김 변호사가 우리 당의 다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소중하게 쓸 방법을 고민해보겠다는 게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하면서 이 대표의 해결 의지를 전했다.

지도부는 김 변호사를 만류하면서 강서갑 이외의 지역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 공천 등 다양한 카드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김 변호사가 같은 날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에 나와 “(민주당에서) 시간을 달라. 고민을 하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선거를 포기해달라고 요청한 경우는 없었다”고 밝혀 김 변호사와 당 지도부 사이에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 등 추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강서갑 지역 논란과 관련해 당 공천관리위는 별도 논의를 벌였다. 공천관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과 한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아직 논의된 바는 없다. 당의 입장은 이전 사례처럼 원칙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경선을 하지 않으면 악재는 해결된 것일까. 미래통합당 출범으로 사실상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박빙이 예상되는 수도권 출마자들은 이번 논란이 중도층 표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한다. 서울의 한 민주당 의원은 “금태섭 의원이 공수처 당론을 반대하는 등 당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일반 시민들 분위기는 금 의원의 비판 정도는 여당 내에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라며 “당에서 잡음이 계속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촛불을 계기로 민주당에 마음을 뒀던 보수 성향 유권자나 중도층 상당수가 최근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다시 ‘겸손’을 화두로

민주당은 2월20일 국회에서 ‘대한민국미래준비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을 열었다. 이해찬 당대표와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공동으로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두 사람은 현 상황을 위기로 진단하는 듯하다. 우선 ‘겸손’을 화두로 몸을 낮췄다. 이해찬 위원장은 “역사는 민주당에 한없이 커다란 간절함과 낮은 겸손함 두 가지를 요구하는데,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선거에 임해달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낙연 위원장은 “국민과 역사 앞에 훨씬 더 겸손한 자세로 선거에 임하겠다”고 더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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