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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조국이 현재의 조국을 본다면

특권층 비판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

“여기서 무너지면 큰일” 시점이 무너지는 순간
등록 2019-08-24 06:50 수정 2020-05-02 19:29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22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22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민주당 지지층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8월21일 CBS 라디오 )처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은 그의 지지층에서 더 매섭다. 조 후보자가 그동안 했던 사회적 발언이 실제 그(가족)의 삶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의 삶은 전형적인 ‘금수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금수저의 반칙과 특권을 신랄하게 공격해왔다. 지지자들은 그를 ‘강남좌파’라 부르며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조 후보자는 지금 자신이 쏟아낸 말들을 감당하기 버거운 처지다. 딸(28)의 대학 입학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팩트’(사실)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온 ‘기회 평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조 후보자는 “(딸의) 부정입학 의혹은 명백한 가짜뉴스”라며 불법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지자들은 명문대 입학을 위해 쌓은 스펙이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는 사실에 허탈해한다. 그런 특권을 강하게 비판했던 조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가 지지자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냈다.

외고-논문 저자-의학전문대학원 ‘금수저 코스’

조 후보자의 딸은 외고-논문 저자 기재-대학-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금수저 코스’를 밟았다. 단 한 차례 필기시험도 치르지 않고 오로지 스펙으로만 이뤄낸 ‘성과’였다. 그의 딸이 대입을 위해 스펙을 쌓던 시기(2007~2009년)는 ‘외고-의대’ 진학 문제가 정점에 달한 때였다. 외국어 집중 교육으로 글로벌 인재를 키우겠다는 외고에서 의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과연 특수목적고 제도의 취지에 맞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실제로 당시 외고 졸업생 가운데 대다수는 법대와 의대, 상경계열 학과로 진학했다. 외고 설립 취지에 맞는 어문계열 진학자는 전체 20% 수준에 그쳤다. 의대와 법대, 상경계열 등 비어문계열 진학자가 70%를 웃돌았다. 이처럼 외고의 인기 학과 진학률이 높아지자 외고를 겨냥한 사교육이 활개를 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 외고를 손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정두언 전 의원은 외고를 특성화고로 만들어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내용의 외고 개혁 법안을 발의해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조 후보자는 2007년 4월 칼럼에서 ‘외고 열풍’ 현상을 비판했다. “유명 특목고는 비평준화 시절 입시 명문 고교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생을 위한 특목고 대비 학원이 성황이다. 이런 사교육의 혜택은 대부분 상위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이 누리고 있다.” 조 후보자는 2014년에 출간한 에서도 외고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계급, 계층, 집단 출신의 사람을 알고 사귀고 부대껴야 한다.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성적만이 공부의 전부가 아니다. 현재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에 다니는 성적 우수 학생들이라면 이 점을 유념하면서 생활하고 공부해야 사고의 폭과 깊이가 제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 후보자는 말에 그쳤다. 자신의 딸을 ‘소신’대로 키우지는 못했다. 그의 딸은 ‘외고 취지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지 않고 의대를 가기 위한 스펙 쌓기에 ‘올인’ 했다. 부유층 수험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에 가까운 스펙이었다. 그중 압권은 대학 학술논문에 당당하게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고 2학년이던 2008년 12월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작성한 소아병리학 관련 영문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됐다. 고작 2주 동안 인턴으로 참여한 고교생이 해당 연구를 전공한 대학원생들보다 더 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도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 후보자의 딸이) 영어 논문 작성에 큰 기여를 했다”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단국대는 8월22일 연구윤리위원회를 열고 제1저자로 등재된 과정의 적절성을 따지기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조 후보자의 딸을 제1저자로 올린 것이 예사롭지 않다고 본 것이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이 연구에 참여했다. 이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학부모들이 자녀의 자기소개서 경력을 만들어주기 위해 운영한 일종의 ‘품앗이 스펙 관리’ 프로그램이었다. 지도교수의 아들과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고 국제반에서 같이 공부했다.

“당시 상황 고려해야” vs “결단 불가피”

‘품앗이 스펙’은 조 후보자 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교육부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당시 잘나가는 외고에는 학부모 인맥을 활용한 인턴십 프로그램이 많았다. 전문직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논문을 쓴 뒤 그것을 대입에 활용하는 것이다. 2014학년도 입시부터는 논문 실적을 학생부에 쓰는 것을 금지했지만, 당시에는 명문대 진학 수단으로 장려됐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의 딸은 2010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세계선도인재전형’에 지원하면서 단국대 의대 논문을 활용했다.

조 후보자 딸의 대학 입학을 무조건 특혜로 비난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입학사정관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2009년과 지금의 대입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고려대를 비롯한 사립대들은 수험생의 영어 능력을 매우 중시했다. (조 후보자 딸이) 영어로 논문을 썼다면 대학 쪽에서 영어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을 것”이라며 “그런 입시 제도의 허점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한 수험생을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 8월21일 CBS 에 나와 “(조 후보자 딸의 입시 관련 의혹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해명을 내놓는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결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린이다. 국민들이 결코 양보하지 못하는 기회의 평등 문제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017년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5월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억여원을 ‘묻지마 투자’?

조 후보자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도 그의 과거 발언과 충돌한다. 조 후보자는 2009년에 발간한 에서 정글 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하며 “대한민국은 어린이들에게 주식·부동산·펀드를 가르친다”고 적었다. 그는 “돈이 최고인 대한민국”이라며 ‘동물의 왕국’에 빗대기도 했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 부임 후 두 달 만인 2017년 7월에 그의 배우자와 딸, 아들은 사모펀드에 10억여원을 투자했다. 조 후보자 쪽은 “블라인드 펀드라서 투자 대상을 알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인 10억여원을 ‘묻지마 투자’했다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투자 대상 등에 제한이 없는 사모펀드의 특성을 고려하면 고위 공직자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펀드는 차입 매수로 회사를 사들인 뒤 이를 쪼개 파는 수법으로 거액의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었던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 대표를 지낸 경력으로 곤욕을 치렀다. 베인캐피털이 1993년 캔자스시티의 한 철강회사를 사들인 뒤 2001년 이를 매각하는 바람에 75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롬니의 인수·합병 전략은 노동자와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먹튀 전략’”이라고 공격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인사는 “조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사모펀드가 어떤 대상에 투자했는지 청문회에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 후보자 가족이 투자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는 투자 종목과 운용 명세 자료의 국회 제출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은 조 후보자의 펀드가 투자한 업체가 서울시청과 광주시청 등 50여 자치단체의 관급 공사를 싹쓸이했다고 주장했다.

조 후보자의 ‘내로남불’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교통방송(tbs)의 의뢰를 받아 8월19~21일 전국 1507명에게 전화 여론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2.5%포인트)를 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2.3%포인트 하락한 38.3%였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주 연속 하락한 46.7%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2.9%포인트 오른 49.2%로, 긍정평가를 앞질렀다.

청와대 “의혹만 있고 진실은 가려져 있다”

청와대는 그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청와대는 8월22일 조 후보자의 각종 의혹에 대해 “의혹만 있고 진실은 가려져 있는 것 같다”며 조속한 국회 인사청문회 개최를 촉구했다. 조 후보자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을 보면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조 후보자를 임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금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여기서 무너지면 큰일 난다’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역대 정권이 어려워지는 과정을 보면 여권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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