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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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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노회찬을 찾아서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에 만난 노회찬 때문에 정치에 뛰어든 사람들
등록 2019-07-10 00:45 수정 2020-05-02 19:29
1년 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뜨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다섯 청년 황시영, 박예휘, 김가영, 김지수, 서진원(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1년 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뜨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다섯 청년 황시영, 박예휘, 김가영, 김지수, 서진원(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6411번 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고 노회찬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행사에서 언급한 바로 그 버스다. 새벽 첫 차 속에는 오늘도 서울 강남 빌딩에 출근해 투명인간처럼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타고 있다. 노 의원이 떠난 지 1년, ‘투명인간’들을 위한 정의당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노 의원의 마지막 바람은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는 듯하다. “평생 국회의원 안 해도 된다. 이 자리에서 물구나무라도 서고 싶다”며 그토록 강조했던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 개혁은 위태롭기만 하다. 7월23일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가 온다. 그의 ‘멈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배달노동자, 중소기업 대리, 알바 순례자…

은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를 맞아 ‘노회찬’을 이유로 1년 전 진보정당에 입문한 이 5명을 만났다. 정의당은 당시 젊은 ‘노회찬’을 만들겠다며 만 35살 이하 청년 30명을 모아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를 꾸렸다. 300일이 흐르는 동안 이들은 중앙당 정책, 기획홍보부터 지역위원회 조직까지 다양한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또 6월부터 시작된 정의당 전국동시 당직선거에 부대표, 전국위원, 지역위원장, 대의원 등으로 출사표를 냈다. 이들에게 정의당은 곧 노회찬이고, 정당정치는 노회찬이 밟아온 길이다.

인터뷰 장소인 여영국 의원실 510호에 당 기획홍보팀 김가영 차장과 정책위원회 김지수 차장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경기도 화성 지역위원회 황시영 조직팀장은 다니던 직장에 오전 반차를 내고 황급히 의원실에 들어섰다.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마친 청년부대변인 박예휘, 서진원씨가 서둘러 합류했다.

1년 전 벼락에 맞은 듯 정치에 입문한 삶들이 그려온 궤적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서울 동대문 인근에서 고용보험 없는 배달노동자로 거리를 내달리다가, 또 다른 이는 강남의 한 일본계 중소기업에서 7년 동안 총무팀 대리로 일하다가 정의당의 문을 두드렸다. 경기도 수원에서 텔레마케팅으로 시작해 안 해본 것 없이 스무 가지 넘는 아르바이트 순례를 하던 이도, 경기도 한 공장에서 품질관리를 맡아 고객사 갑질을 묵묵히 견딘 엔지니어도 있다. 지난해 이들의 삶으로 노회찬의 죽음이 불쑥 들이닥쳤다. 이들은 “미안했”고 “먹먹했”고 결국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당원이 됐고, 정의당의 정치인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인물 영입의 시대를 끝내고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위해 젊은 노회찬을 만들어내겠다는 정의당의 도전에 호응한 신인들의 면면에 정의당이 거는 기대는 크다. 당에서는 20대 청년 노회찬이 인천에서 용접공으로 위장 취업해 만난 노동자들이 세대를 건너 정의당에 입당한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스펙은 더더욱 문제가 안 된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중소기업 사무실에서, 대공장 한쪽에서 묵묵히 살아오던 청년노동자들이 노회찬이 떠난 자리를 메우려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당내에서는 정당사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회찬이 정의당에 새로운 역사를 쓰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 말을 새기며

당사자들은 어땠을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회찬 때문에 뛰어든 그곳에 노회찬은 없었다.

“(노회찬 의원 돌아가시고) 입당했을 때는 정의당에 (노회찬처럼) 정말 좋은 사람만 있고, 현명하게 일처리를 할 줄 알았어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부에서 정의당다운 방식으로 좀더 정의당답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노 의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생각했죠.”(김지수)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지자, 정의당 내에서 몇 달 전 논쟁이 일었던 낙태죄 법안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난 4월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나흘 만에 ‘자기낙태죄’(제269조 1항)와 의사 등의 ‘동의낙태죄’(제270조 1항) 조항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장 앞선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오히려 후퇴한 법안”이라는 비판으로 뜨거웠다. 하지만 두 달여 흐른 지금, 이들은 다른 지점을 얘기하고 싶어 했다. 사안의 ‘옳고 그름’ 이전에 그것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내 갈등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일부 의견을 배제했던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회찬이라면 그렇게 했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었고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너나 할 것 없이 답했다.

“법안 발의 자체를 서두르기보다 담을 내용과 발의 과정에서의 진정성에 방점을 찍었어야 했는데…. 실제로 당내(여성주의 그룹)에서나 외부 여성단체에서 비판이 터져나올 때, 지도부는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성주의는 차치하고라도 소통 자체가 어려웠어요.”(김가영)

소통 부재를 경험하고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직후 얻었던 17%의 정당지지율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의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노회찬에 대한 부채의식 말고 그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니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것 아닌가요.”(박예휘)

‘그 이상’은 무엇일까. 야단법석이던 다섯 명이 동시에 한참 뜸을 들였다.

“(정치에 관심 없이 알바만 하던) 나처럼 내가 나서도 될까, 내가 정치를 얘기해도 될까,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나서게 하는 것 아닐까요. 저도 중앙당과 계약(정책위 당직자)이 끝나면 곧바로 지역으로 가려고요. 온몸으로 나서는 게 내 안에 있는 노회찬 아닐까요.”(김지수)

“지난해 추모제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그게 뭔지 다시 새겨야 할 거 같아요. 당비가 적어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요.”(서진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하겠지만, 회사에서 허락하는 만큼, 퇴근 뒤, 주말에 당원들을 만나려고 해요. 현장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황시영)

300일짜리 정치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정치 신인들이 내놓은 말이 모두 정답일 리 없다. 누군가에게는 지금까지 소외되던 계층을 조직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노회찬 정신을 이론으로 더 세련되게 가다듬는 것이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현장 속으로 들어가 소외 계층과 함께 일하면서도 정당정치 이론가로서 면모를 잃지 않았던 노회찬의 모습이기도 했다.

10주기가 되면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젊은 노회찬들’이 노회찬 사진 앞에 섰다. 노회찬을 ‘갭모에’(영어 ‘gap’과 일본어 ‘모에루’(萌える)를 합성한 것으로 ‘반전매력’을 뜻함)라고 하던 활기는 노회찬 사진 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활짝 웃어보면 어떻겠느냐 해도 경직된 얼굴을 어찌하지 못한다. 누군가 “웃어도 되나”라고 한다. 억지로 그린 미소가 자연스러울 리 없다.

여전히 숙연한 이들을 향해 “지금 각자에게 노회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노회찬을 정의할 수 있는 세상의 문장들은 차고 넘치는데, 그럴싸하게 말해도 될 법한데 단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노회찬이라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김지수)거나 “(노회찬을 떠올리면) 버퍼링이 걸릴 때가 있다”(서진원), “내면화는 아직 잘 못하겠다”(김가영)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이들이 ‘나에게 노회찬은 무엇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날, 진보정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노회찬만으로 택한 정의당, 후회는 없을까. 진보정당으로 입문해 기존 거대 정당으로 옮겨간 정치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소거법으로 하면 정의당밖에 없거든요. 노동이 당당한 삶을 대변해주는 것은 정의당밖에 없죠”(황시영)라거나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면 생각하는 바를 훨씬 빨리 이룰 수 있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하면, 저는 거기에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박예휘)라는 결심만으로 이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당직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7월13일이면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낙선을 경험할 것이고, 정치 구도나 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300일 동안 이들과 함께한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청년이 배달노동을 하며 지역위원장이 돼 곳곳을 누비고, 평범한 중소기업 대리가 퇴근 뒤 지역주민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 자체가 노회찬이 그토록 바라던 현장 속 정당정치의 모습일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노회찬 10주기가 되면 정의당에서 육성한 정치인들은 그렇게 노회찬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

7월20일 모란공원에서 묘비 제막식

이들과 함께, 1주기를 준비하는 곳은 또 있다.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은 ‘그리운 사람 노회찬, 함께 꿈꾸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7월15일부터 2주 동안을 추모 주간으로 정했다. 7월20일 노 의원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추모제와 묘비 제막식이 열린다. 노 의원 서거 1주기 추모집 은 모금 사흘 만에 추모집 발행을 위한 목표액을 달성했다(펀딩 후원은 7월14일까지 계속됨). 또 노회찬상 시상식과 추모문화공연, 추모미술전시회, 학술토론회도 예정돼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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