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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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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평화…“반드시 평화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쓴 단어 빈도 분석…

‘평화’ 20차례 등장, 동북아 문제 ‘한국의 주도적 역할’ 강조
등록 2017-08-22 05:29 수정 2020-05-02 19:28
문재인 대통령이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쟁은 안 된다!”(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취임 첫해 광복절 경축사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대통령이 청와대와 내각의 진용을 갖춘 뒤 자신만의 국정 철학을 추진할 채비를 마치는 시기다. 정권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공약을 이행할 예산을 정해 부처 곳곳에 새 기운을 돌게 할 때이기도 하다. 입법과 예산 문제 등으로 국회와 관계 정립에 본격적으로 나설 시점이기도 하다.

이같은 대통령의 의지를 국내외에 공식 천명하는 광복절 경축사는 정무적·정책적 판단을 아우르면서 각계각층의 이해와 요구를 고려해 작성된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추진할 외교적 향방을 밝힌다는 점에서 이웃 나라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세계 열강이 주목해왔다.

북핵·미사일로 소란한 정세 반영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한겨레21>이 분석했다. 가장 많이 쓴 말은 ‘우리’다. 평화·한반도·대한민국·북한 등 자주 사용된 단어에서 경축사에 담긴 의도가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한겨레21>이 분석했다. 가장 많이 쓴 말은 ‘우리’다. 평화·한반도·대한민국·북한 등 자주 사용된 단어에서 경축사에 담긴 의도가 드러난다.

특히 이번 8월15일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된 북한과 미국의 적대적 긴장이 완화될 기미를 보인 시점이라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북한은 8월8~9일 미국 영토인 괌을 타격하기 위한 “실제적 행동을 반드시 취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14일엔 “비참한 운명의 분초를 다투는 고달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더 지켜볼 것”이라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한발 물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16일(현지시각)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단을 내렸다. 다른 선택은 재앙을 불러올 만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 교환은 북한과 미국의 강 대 강 대결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동시에 양쪽 ‘물밑 대화’가 급진전될 수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둘의 틈을 “전쟁은 안 된다”는 확고부동한 메시지를 던지며 적절하게 파고든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빛이 바랜 지난 7월 ‘베를린 구상’과 달리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축사의 의미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경축사에 사용된 단어들을 분석해봤다. 연설문의 의미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단어의 쓰임을 통해 거꾸로 연설의 의미를 재해석하기 위함이다.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우리’로 41회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마음’이었다.

그 뒤를 잇는 단어는 스무 차례 언급된 ‘평화’였고 국민(17회), 한반도(15회), 역사(14회), 정부(14회), 북한(14회) 등이었다. ‘우리’란 단어는 주제를 불문하고 광복절 축사 전반에 두루 사용됐다. 통합과 소통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기조를 고려하면 이는 당연해 보인다. 그 밖에 평화·한반도·역사·북한 등이 많이 사용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소란스러운 한반도 정세에 문 대통령이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추정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경축사에서 20회 사용된 ‘평화’라는 단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정의”라며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된다.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어떤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북핵 문제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거듭 강조하는 ‘평화’는 동북아·한반도·북한·미국 등과 조응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가닿는다.

이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강조한 것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었다. 이는 ‘8월 위기설’로 사재기 조짐까지 보이는 국민의 안보 불안을 달래는 것을 넘어 현재 위기를 일으킨 두 주체인 북한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먼저 북한에 대해선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의 목적도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거나 “국제적인 협력과 상생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지금처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발사를 이어가는 한 경제제재가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아예 한국 정부가 용인할 수 없는 남북관계의 ‘레드라인’을 “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북한·미국 향해 단호한 목소리

미국을 향한 목소리도 단호했다. 문 대통령은 “누구도 한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미국 는 이를 두고 “한국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등 거친 언사로 놀란 가운데 문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직설적 비난’을 했다. 대통령의 반작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 대한 비정통적 접근이 오랜 한-미 동맹에 새로운 긴장을 불어넣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 이 발언을 “한반도에서 어떤 군사행동에 대해서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 군사행동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함축적 신호”라고 해석했다.

문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론’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라는 명확한 철학을 갖고 주변국들을 설득하는 여러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반드시 일정 부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뜻밖의 보도가 나왔다. 는 8월18일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심도 있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북-미 간에 비밀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괌 포위사격을 철회한 것도 이와 관련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고, 북-미 비밀접촉이 한국 정부와 교감 없이 이뤄지는 것이라면 또 다른 의미의 ‘코리아 패싱’이 진행 중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보도에서 훈련 축소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두고 당장 8월21일부터 실시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축소·조정하기는 어렵다는 현실론을 들어 다음 훈련부터 축소·조정하는 카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는 UFG는 지휘소 훈련이므로 규모 조정은 의미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한국 주도로 북한에 여러 암시를 줄 순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이 괌 타격을 경고한 8월8일 ‘조선인민군 전략군 성명’에서 지적한 미군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의 출격 자제를 요구해 이를 성사시킨다면 북한은 긍정적 신호를 읽어낼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엄청난 변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작은 변화라도 우리가 주도해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우선 미국에 적극적으로 미 전략 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한국 요청으로) 괌에서 출격하는 전략폭격기가 오지 않으면 북한도 (문 대통령이 천명한) 메시지의 중요성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목받지 못한 “재일동포 고향 방문”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주도해 현재의 대결 국면을 평화적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일부 전문가들은 남북 물밑 접촉이 이미 시작됐을 것으로 확신했다. 또 광복절 메시지 가운데 주목받지 못했던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이라는 조선적 재일동포 고국 방문 정상화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일동포의 고향 방문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 정상회담 때 직접 요구해 관철된 것이어서 재일동포뿐 아니라 북한에도 각별한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한국 입국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사실상 불허돼왔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재일동포 고향 방문 정상화 제안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반대 못지않게 이 제안은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큰 의미를 갖는다. 의외의 지점에서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주도적 역할론에 여전히 구체적 실행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대화의 전제로 내세운 추가적인 핵·미사일 도발 중단은 북한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그 때문에 여전히 남북대화에 전제 조건을 내거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갑갑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변지민 기자 dr@hani.co.kr

한반도 전쟁 위협


8월 위기설 끝났나?


‘8월 위기설’로 치닫던 북한과 미국이 한발씩 물러나며 극한 대결 국면이 소강기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8월 위기설은 최종적으로 끝난 것일까.
단기적 변수는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을 활용해 괌 주변을 해역에 탄착시키는 계획을 포기했는지 여부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8월14일 “미국의 행태를 좀더 지켜볼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과의 전면 대결을 뜻하는 ‘괌 타격’을 단기간에 실행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반도에서 전쟁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중·장기적 변수는 북한과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부터 이어진 오랜 ‘전략적 인내’를 끝내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지다. 이와 관련해 힌트를 준 것은 미국 정부였다. 미국은 8월15일(현지시각) 대화를 위해 북한이 △핵실험 중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단 △동북아 안정을 저해하는 언행 중단 등의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기꺼이 북한과 자리에 앉아 대화할 것이나 우리는 아직 그 근처에 있지 않다”고 했다. 공은 이제 북한으로 넘어왔다.
미국의 요구사항 가운데 핵실험을 보자. 북한은 2016년 9월9일 5차 핵실험 감행 뒤 아직까지 6차 실험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것이란 예측도 있지만, 지난 다섯 번의 실험으로 이미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 기술력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핵실험보다 더 중요한 변수는 미사일 발사다. 최근 한·미·일 3개국은 지난 7월28일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4형 실험을 실패로 규정했다. 8월17일 국방부 산하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은 일본 카메라가 화성 14형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포착한 동영상 화면을 분석한 결과 “불꽃이 보이고 나서 공중에서 사라졌다는 점과 이후 추가 폭발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의 탄두가 정상적으로 폭발하지 않은 채 비정상적으로 폭발하거나 타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정상 폭발됐다고 가정하더라도 카메라에서 관측된 폭발 고도가 높아 지상까지 도달하는 재진입 능력을 갖췄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자신들이 완벽한 ICBM 능력을 확보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또 다른 발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 8월이 지나더라도 8월 위기설이 최종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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