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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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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갈등으로 불안감 느끼는 중국 유학생들

사드 배치엔 한목소리로 반대… 한-중 갈등이 취업에 걸림돌 될까 걱정
등록 2017-03-16 02:11 수정 2020-05-02 19:28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강행 뒤 한-중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발해온 중국은 잇달아 보복 조치를 내놓는다. 중국 당국은 국방부와 경북 성주 골프장 사드 부지 교환 계약을 체결한 롯데를 겨냥해 자국 내 50여 곳의 롯데마트에 영업 중단 또는 벌금 조처를 내렸다. 여행사엔 3월15일 이후 한국관광 상품 판매를 중단하라는 지시가 뒤따랐다. 한국 정부도 중국을 겨냥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언급하며 맞대응했다.

불과 2년 전인 2015년 9월, 대통령 박근혜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나란히 톈안먼 망루에 올라 중국군 열병식을 지켜볼 정도로 순탄하던 양국 관계는 순식간에 험악한 갈등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은 중국 내 반한 감정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국에도 난처함을 겪는 이들이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중국인들이다. 은 3월8일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 5명을 어렵사리 한자리에서 만났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년 남짓 한국 생활 중인 이들은 한국에 애정이 깊었다.

이들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중국 안보에 해가 될 것 같다”며 반대하면서도 두 나라가 반목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선 “무척 속이 상한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2017년 1월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 유학생은 6만5천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11만3천여 명)의 절반을 웃돈다.

한국에 호감 갖고 온 중국 유학생들 어떻게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됐나요.
“<국제시장> <괴물>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해 6개월 전에 한국에 왔어요.” -장춘쉐

“<국제시장> <괴물>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해 6개월 전에 한국에 왔어요.” -장춘쉐

장춘쉐(24·중앙대 대학원)   영화를 공부하러 왔어요. 한국에 온 지는 6개월이 됐고요. 이전부터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했어요. 등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덩리팡(28·경희대 대학원)  교환학생으로 2012년 8월에 왔어요. 등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 갖게 됐죠. 드라마 배경이 된 남이섬도 가봤고요. 한국에 호감이 많아요.

안란(22·광운대)  전 3개월밖에 안 됐어요. 한국말을 열심히 배워 중국에 돌아가면 한국어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한국은 공기가 좋고 곳곳에 드라마 같은 풍경이 많아요. 특히 밤에 활기찬 곳이 많아요. 한국 생활이 재미있어요.

장란(25·경희대)  어릴 적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국과 한국은 무척 가까워서 방학 때 집에 가기 편리한 점도 고려했고요. 하하.

한류의 힘은 셌다. 유학생들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했고,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사드 문제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한국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이들은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이라는 한국 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사드 배치는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를 어떻게 보세요.
“중국의 반대는 당연하다고 봐요. 어느 나라든 자국의 위험에 반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장란

“중국의 반대는 당연하다고 봐요. 어느 나라든 자국의 위험에 반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장란

왕하오옌(23·상명대)  사드 배치를 미-중 관계의 문제로 봐요. 사드 장비는 한국의 것이 아니고 미군 것이잖아요. 한국에 책임 있는 게 아니라 미국에 책임 있는 거 같아요. (고성능인) 사드 레이더를 통해 미국이 중국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해요.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죠. 사드 배치는 한국에도 위협이 될 것 같아요. 한국과 북한 사이에 긴장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결국 미국에만 이득이 되는 거죠.

덩리팡  중국은 반대하고, 한국에서도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런 이야기를 듣지 않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중이어서 대통령 권한이 없었는데도요. 사드를 배치해도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할 수 없다고 하잖아요. 이해가 잘 안 돼요. 뭐랄까, 한국이 미국에 보험을 들어두려는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아요. 이 문제는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결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장춘쉐  사실 사드에 대해 잘 모르겠어요. 한국이나 중국이나 자국의 안보를 지키려는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 같은데. 물론 저는 중국 사람이라 사드 배치에 반대합니다. 중국은 안보를 아주 중요시합니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 군사 상황이 밖에 드러날 수 있죠.

안란  사드 레이더로 중국 영토 80%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도 하잖아요. 이건 한국 안보뿐 아니라 중국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로 봐요. 미국 때문인 거 같아요. 어쩔 수 없는 한국의 처지도 있는 것 같고.

장란  사드를 배치하는 게 한국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미국이 시켜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중국의 반대는 당연하다고 봐요. 어느 나라든 자국의 위험에 반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유학생들에게 사드 갈등 뒤 한국 생활의 변화를 물었다. 다소 경직돼 있던 학생들은 생활 문제가 나오자 자연스레 그간의 경험과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중국에 있는 부모들의 걱정과 한국 친구들과의 서먹함, 자신들을 향한 중국 누리꾼들의 비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롯데 물건은 사지 말자”사드 문제가 불거진 뒤 한국 생활에 변화가 있나요.
“이전엔 명동과 롯데백화점에 자주 갔는데 이제는 친구들 눈치가 보여요.”  -안란

“이전엔 명동과 롯데백화점에 자주 갔는데 이제는 친구들 눈치가 보여요.” -안란

장란  4년 전 한국에 왔을 때 두 나라 사이가 아주 좋았어요. 제가 생활하고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국 관계가 민감해져서 너무 속이 상해요. 한국 친구들과 밥 먹을 때 사드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옆자리 한국 학생들 눈치도 보고 조심하게 돼요. 경영학과라서 조별 발표 수업이 많은데, 조별 발표에서 알게 모르게 한국 학생들이 중국 학생과 같이하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속상해요.

중국에 있는 친구들도 사드 때문에 민감한 것 같아요. 제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한국 음식이나 여행지 사진 등을 올리면 “왜 아직도 한국에 있느냐. 이해가 안 된다. 빨리 돌아오지 않고 뭐하냐”는 댓글을 올려요. 어떤 이들은 “왜 애국을 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해요. ‘한국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해요.

한국 친구에겐 중국 이야기를, 중국 친구에겐 한국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전화를 해요. “괜찮으냐. 한국에서 위험한 일이 있는 건 아니냐. 빨리 졸업하고 돌아오라”고요. 한국에 여행 오기로 했던 친구들도 최근에 다 일정을 취소했어요.

서울 명동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에게 들은 건데요. 사드 문제가 불거진 뒤 아르바이트 시급이 줄었대요. 이전엔 1시간에 7천원을 받았는데 이젠 5500원으로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런지 물었더니 명동에 오는 중국 관광객이나 손님이 줄어서 그렇대요.

안란  한국에서 지내는 데 큰 변화는 없어요. 중국 유학생 친구들끼리는 “우리 쇼핑하러 롯데백화점 가지 말자. 거기 가면 우린 서로 친구 아니다”라고 이야기해요. 이전엔 명동과 롯데백화점에 자주 갔는데 친구들 눈치가 보여 이젠 근처에 가기가 좀 꺼려져요. 원래는 양국 관계가 좋았는데 갑자기 나빠져서 참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불편함이 많지는 않아요. 언론이 과장 보도를 하는 것 같아요.” -덩리팡

“실제로 불편함이 많지는 않아요. 언론이 과장 보도를 하는 것 같아요.” -덩리팡

장란  외려 좋을 때도 있어요. 최근 롯데백화점을 가봤더니 사람이 줄어서 편하더라고요. 하하.

장춘쉐  이전에 비해 한-중 합작 영화나 드라마 제작 건수가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해요. 영화 공부를 하는 중국 유학생들이 드라마나 영화 제작 현장에서 많이 일했는데 지금은 일이 별로 없어요.

왕하오옌  롯데 물건 사지 말자고 친구들끼리 이야기해요. 중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한국에 놀러 오라고 하면 잘 오지 않으려고 해요. 한국 오는 데 비자 받기가 까다로워졌다고도 해요.

덩리팡  실제로 불편함이 많은 것 같진 않아요. 중국에 계신 부모님께서 전화로 “한국은 안전하냐. 항의 시위가 벌어진다는데 그런 곳엔 가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언론이 과장 보도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보도는 불안감만 키울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한국 취업의 걸림돌

현실에서의 고민은 장래 걱정으로 이어졌다.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들은 앞으로 한국과 연관된 직업을 찾으려는 이들이다. 특히 취직을 앞둔 유학생은 양국 관계의 암운이 자신의 미래에도 드리울지 우려했다.

한-중 관계가 악화하면 취직에도 어려움이 있을까요.

장란  그게 큰 걱정이죠. 곧 졸업을 하는데 앞으로 1년 안에 갈등이 풀리기 어려울 거 같아요. 한-중 합작 회사나 한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은데 지원을 하면 “너는 중국 사람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요.

장춘쉐  저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영화나 영상 분야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데 양국 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을 찾기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우리 학교에도 중국 유학생 친구가 많은데 다들 걱정해요. 어서 문제가 해결돼서 두 나라 사이가 원래대로 좋아졌으면 합니다.

덩리팡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한국은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잖아요. 중국어, 한국어 능통자가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글쎄요, 저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는 편이에요.

인터뷰 말미. 유학생들은 한결같이 양국 관계가 갈등 국면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왕하오옌은 “사드 문제가 해결돼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로 자유롭게 쇼핑하러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란은 서툰 한국어로 “어서 이 문제가 끝나야 내 유학 생활에도 여러 가지가 좋을 것 같다. 세계 평화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 아니냐”라며 웃었다. 유학생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자신이 호감을 지닌 한국에서 이방인으로서 적대적 시선을 받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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