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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새로운 자격, 18세

촛불 주역 청소년 선거권 보장 요구 분출…

‘진보적 청소년’ 두려운 보수 진영 반대가 걸림돌
등록 2017-01-05 05:53 수정 2020-05-02 19:28
2014년 1월 ‘당연한 청소년 선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청소년, 시민, 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2014년 1월 ‘당연한 청소년 선거권 보장을 촉구하는 청소년, 시민, 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내가 이러려고 수능 공부를 했나.” “수능 끝, 하야 시작.” “청소년이 주인이다.”

누적 참가자 1천만 명에 육박하는 촛불집회에서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은 ‘교복부대’로 대표되는 청소년이다. 전국 청소년 단체들은 잇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특히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틀 뒤 열린 2016년 11월19일 4차 촛불집회에는 입시 굴레에서 벗어난 고3 학생이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에 공분하며 기성세대가 만든 대한민국 부조리에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년들의 목소리 가운데는 ‘만 18세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11월17일 수능 당일 저녁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박근혜 하야 고3 집회’에서 한 학생은 “어른들의 투표로 이런 사달이 났는데 피해 보는 것은 잘못 없는 청소년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활동하는 김정윤(18·군산중앙여고) 학생은 과 통화에서 “이미 많은 친구들이 SNS 등을 통해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18세라고 판단이 미숙하지 않다. 정치는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19세가 된다고 갑자기 정치나 사회문제에 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면 그에 걸맞은 판단을 하기 위해 사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이들의 목소리는 광장과 인터넷에서만 존재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이 선거연령을 만 19세 이상으로 규정한 탓이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목소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7년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당리당략이라는 주판알을 튕기며 20년 넘도록 해묵은 과제를 붙잡고 있다.

대선 후보들 앞다퉈 “선거연령 18세”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2016년 12월1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입구에 18세 선거연령 인하를 촉구하는 현판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2016년 12월1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입구에 18세 선거연령 인하를 촉구하는 현판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그동안 선거연령을 낮추는 데 부정적이던 새누리당이 갈라져 4당 체제가 됐고, 그 가운데 광장과 촛불의 힘을 확인한 정치인들이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을 탈당해 가칭 ‘개혁보수신당’에 합류한 남경필 경기지사는 12월29일 자신의 페이북에 “탄핵 국면에서 촛불집회에 가보고 민심을 살피면서 청소년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치 참여와 여론 주도 등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청소년들은 모바일 세상에서 성인보다 많은 경험과 토론을 하고 있다”며 “이제 18세로 선거권을 낮춰서 그들의 정치의식과 토론 등을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했다. 남 지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구체제를 해체하고 새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2017년 2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보수신당의 주축인 유승민 의원도 18세 선거권 확대에 찬성 입장이다. 유 의원은 12월26일 통화에서 “18살이면 충분히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다. 선거권 확대는 가야 할 기본 방향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2014년 10월 김세연·황영철·하태경 의원 등이 만 18세로 투표권을 낮추는 내용을 뼈대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한 바 있다. 개혁보수신당에 몸담은 주요 대선 후보 2명 모두 선거연령 낮추기에 찬성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야당은 이미 선거연령 인하에 적극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2월19일 발표한 ‘12월 촛불 시민혁명 입법 정책 과제’ 가운데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중단 등과 함께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방안을 포함했다.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국민의당도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안 전 대표는 12월17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18세 선거연령 인하’ 현판식을 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은 투표권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 중 가장 후진국인 셈이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 역시 12월26일 “지난 두 달 광장에서 분출한 열망을 정치권이 법과 제도로 받아안을 때”라며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춰 시민참정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박주민·진선미·소병훈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관영·이용호 국민의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이 선거연령 변경에 관한 공직선거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한국의 선거 가능 연령은 1948년 21세→1960년 20세→ 2005년 19세로 꾸준히 낮아졌다. 그렇지만 19세로 선거 가능 연령을 제한한 규정은 세계적 추세나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졌다는 지적이다. 232개국 가운데 92.7%인 215개국에서 선거 가능 연령은 18세다.

일본 청소년 240만 명 새 유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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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우, 2015년 선거연령을 20세에서 18세로 단번에 두 살을 낮췄다. 1945년 이후 70년 만에 선거연령을 낮춘 것으로, 18~19세 청소년 240만 명이 새 유권자가 됐다. 2016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교육비 경감 정책을 내놓으며 청소년 유권자의 표심에 손을 내밀었다. 일본이 선거연령을 낮춤으로써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19세가 돼야 투표하는 나라로 남게 됐다.

국내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18세로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할 것을 권고해왔다. 중앙선관위는 2016년 8월 “정치사회 민주화, 교육 수준 향상,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정보 교류로 인해 18세에 도달한 청소년도 독자적인 신념과 정치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양을 갖췄다. 나아가 미래 세대에 더 가깝고 다양한 의견, 특히 교육 정책 등을 의정에 반영할 경우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13년 선거연령을 낮추고, 정당 가입 연령(만 19세)도 낮추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학생들 반새누리 성향이라 안 된다?

그럼에도 18세 선거권 하향 조정이 2017년 2월 임시국회에서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은 선거연령을 낮추는 데 여전히 부정적이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에서 젊은 층의 ‘분노 투표’가 패배의 원인이라고 여긴다. 당시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55.3%로 19대(45.4%)에 견줘 10%포인트가량 올랐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12월27일 통화에서 “아직 내부에서 의견이 검토된 것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업하는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확대하는 것은 시기상조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학생들은 아직 사회생활에 어둡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2016년 초 총선을 앞둔 선거법 개정 협상 당시 김무성 대표(현 개혁보수신당)가 “수도권은 2~3%포인트 득표율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데 (선거연령을 낮추면) 수도권 의원들이 가만있겠느냐”며 반대한 바 있다. 새누리당의 판단에는 ‘젊은 유권자=반새누리, 반보수 성향’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선거연령 낮추기를 12개의 촛불 시민혁명 입법 정책 가운데 중장기 과제로 분류해둔 상태다. 시급성에서 다른 입법 과제보다 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12월21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선거연령 인하는) 사실 시급한 일인데 여당이 반대해서 못해왔다. 계속 대화를 시도해보겠다. 정치 관계법 개정은 여야 합의 사항이기 때문에 여당이 반대하면 못한다. 반드시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 성향과 보수·중도 성향 의원들이 함께 모인 개혁보수신당도 당론 확정까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유승민 의원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교실이 정치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투표연령 인하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령화 시대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정략적 접근이 아니라 정치 참여 확대와 세대 갈등 통합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선거연령 낮추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투표연령 인하 문제는 정치적 유불리 혹은 진보·보수를 구분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촛불시위에서 많은 청소년이 기성세대에 큰 불만을 표출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이를 억압할 것이 아니라 정치 참여, 대의민주주의 확대 차원에서 이들의 불만을 제도와 절차 안으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통합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반대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추면 19대 대선에서 유권자 61만 명이 새로 투표권을 얻는다.

갈수록 고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확대 반영해야 균형 잡힌 민주주의가 활성화된다는 의견도 있다. 201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656만9천여 명으로 10년 전 436만5천 명보다 220만 명 증가했다. 전체 인구의 13.2%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젊은 세대가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다. 공정한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심화하려면 선거연령을 낮춰 청소년의 목소리를 제도권 안에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장  인터뷰


18세,  군대는  가라면서  투표는  왜  못하나?


“만 18세가 되면 병역이나 납세의 의무가 생깁니다. 그런데 왜 청소년에게 의무만 부여하고 투표권은 안 주는 거죠?”
정건희(45) 청소년자치연구소장은 이번에는 반드시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2016년 9월부터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주장하는 한국YMCA, 흥사단, 한국청소년센터 등 전국 139여 개 단체가 연대한 ‘18세 선거권 공동행동네트워크’(http://blog.daum.net/18vote)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공동행동네트워크는 각종 토론회와 집회, 청소년 참정권 확대 서명운동 등을 벌이며 18세 선거권 확대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정 소장은 2016년 12월27일 전화 인터뷰에서 “청소년을 유권자로 인정해 이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 이유는.
청소년들은 2000년대 들어 효순·미선이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등 굵직한 정치·사회 사건에 참여해 생각과 주장을 표시해왔다. 이들을 제도권 내 유권자로 포함해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18세가 되면 교육·근로·납세·국방의 의무가 생기는데 선거권만 19세 이상으로 하는 것은 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향후에는 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을 더 낮은 연령대로 확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 참여가 기본이다.
일부에선 청소년이 선거에 참여하기엔 미성숙하다고 주장하는데.
성숙·미성숙 개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시민 성숙도를 측정하는 시험이라도 봐야 한다. 19세는 성숙하고 18세는 미성숙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탄핵 국면에서 보았듯이 청소년들은 자기 주장이나 기준이 분명히 있다. 청소년을 시민,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보호·통제 대상으로 보는 것은 시대에 안 맞는 인식이다.
교육 현장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교육기본법에는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고 돼 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민주당과 공화당의 공약에 관해 토론을 한다. 과거 독일에서 15세 때부터 녹색당에 가입해 그린피스 활동을 하다 19세에 국회의원이 된 안나 뤼어만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도 19세에 뉴욕주 발라트 시장이 된 제이슨 네츠키 사례가 있다. 외려 청소년들의 정치화가 안 돼 세대 갈등이나 혼란이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호의적 환경이 조성돼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선거연령을 낮추라고 권고했다. 여러 국회의원들도 개정안을 냈다. 2017년 1월18일에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선거연령을 낮추는 선거법 개정안을 낸 의원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열고 입법화를 촉구할 계획이다. 대통령선거 전에 꼭 법이 개정됐으면 한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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