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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대통령 퇴진이 아니다

차기 대통령
등록 2016-12-06 11:28 수정 2020-05-02 19:28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어찌 보면 익숙한 포즈다. 책임져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말하지 않고 책임을 전가하거나 결정하지 않으면서 가장 먼저 그 자리에서 탈출하는 모습.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재난구호의 최종 책임자임에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붕괴하는 시스템에서 탈출했다. 이번에는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의 주범으로 지탄받는 상황에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서 결정을 회피했다. 책임도 결정도 통치도 부재한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세 가지가 부재하기 때문에 박근혜는 상황을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 동안 책임과 통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박근혜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며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2015년 10월27일 재벌들로부터 미르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날, 박근혜는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면서 서비스발전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국제의료지원법, 5대 노동개혁법 처리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을 요구했다.

역시 재벌들로부터 K스포츠재단 모금이 완료된 다음날인 올해 1월12일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노동개혁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발전법 및 원샷법 처리를 주문했다. 이 모든 법안은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담고 있고 노동 압박과 재벌 이익을 담보한다.

당시엔 누구나 박근혜가 어떤 국정 철학에 따른 통치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저 사적 이해를 위한 거래 행위에 불과했다. 그러니 박근혜가 말한 “국정 혼란과 공백”은 박근혜가 퇴진하든 말든 4년 동안 한국 사회의 상수였다.

그러면서도 결정을 회피하며 통치한다. 박근혜의 말은 사퇴가 아니라 “대통령직 임기 단축”이었다. 자신이 잘못해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 임기 자체를 줄여서 물러날 길을 열라는 주문이다. 퇴진이 아니라 “진퇴”다. ‘물러난다’는 뜻만 가진 퇴진이 아니라 ‘직위에 머물러 있음과 물러남’을 함께 뜻하는 진퇴를 택해 그 결정에 따라 일정 기간 직위를 유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마저도 “여야 정치권이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한없이 충성스러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있으니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방안을 만들 리 만무하다. 박근혜를 수사 대상으로 삼는 박영수 특별검사의 임기는 최장 120일. 최소한 이 시기까지 특검 임명자이자 형사소추를 위한 압수수색과 체포·구속을 면책받을 수 있는 대통령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언질이다. 그 언질에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4월 퇴진’ 로드맵을 꺼내들어 화답했다.

시민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다. 거리의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새누리당 해체”를 외치고 있다. 4년 동안 책임도 결정도 통치도 부재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그리고 새누리당과 이해관계를 함께하는 이들은 그 부재한 상황에 타올라 사적 이익을 챙겼다. 박근혜의 담화로 인해 조기 대통령선거가 유일하게 공식화했지만,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지에 집중된 정치는 이들을 단죄할 수 없다.

박근혜 문제가 단순히 박근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처럼, 2016년 11월의 촛불은 문재인이나 반기문, 안철수나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쉽게 받아안기 어려운 문제들을 묻고 있다. 그것은 1987년 체제의 미비점과 1990년 3당 합당이라는 귀결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시민들의 몸부림이다. 그러니 출발점은 3당 합당의 결과물을 한국 사회에서 퇴출하는 것으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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