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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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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스티브 잡스인가 돈키호테인가

문재인 대표와 결별 수순 밟는 안철수 의원은 무엇을 얻었나. 혁신의 내용보다 문 대표 사퇴 압박이 더 부각된 것은 아쉬워
등록 2015-12-15 02:13 수정 2020-05-02 19:28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6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당대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지난 12월6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한 혁신 전당대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그는 ‘안철수 현상’이란 구름을 타고 정치권에 등장했다. 그에게 환호한 지지자들도 이젠 가물가물해졌을 2012년 8월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문에 눈에 띄는 구절이 있다. 그는 출마 선언문 마지막 단락에서 “미래는 이미 와 있다”는 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했다. 새로운 변화의 미래는 자신을 통해 곧 실현될 것이란 자신감이었다.

출마 선언 당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를 향한 대중의 부푼 기대감을 보여준다. 대선을 4개월 앞둔 시점에서 그의 지지율(28%)은 문재인(11%) 후보의 2배가 넘었다. 박근혜(38%) 후보와 대적할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그는 호남(43%), 20대(42%)와 30대(40%),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자(46%), 무당층(35%)에서 강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새로운 미래’를 주장하던 안철수의 불안한 미래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안철수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란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특히 갈등을 빚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으며 이런 물음이 더 커진 듯 보인다.

그는 문 대표가 제안한 당 혁신위원장을 고사했고, ‘김상곤 혁신위 체제’의 혁신안을 “실패”라고 규정했으며, 자신이 제시한 혁신안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문 대표 사퇴를 전제로 혁신 전당대회를 제안했다. 혁신 전대를 문 대표가 다시 거부하면서 ‘안철수-문재인 갈등’이 깊어졌다. 최근 넉 달간 압축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정치적 대결주의 등 낡은 진보 청산’을 핵심으로 한 자신의 혁신안을 주장하다가 여기까지 흘러온 데 대해 “문재인 대표 개인과 권력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당과 야권 전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를 함께 풀자고 요청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비교적 그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 5명에게 안 의원이 몇 달간 보여준 정치적 선택에 대한 해석을 부탁했다. 그들 모두 이번 사태가 안 의원에게 어떤 식이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를 아는 인사들은 낡은 정치의 틀을 깨고 야당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안 의원의 혁신 의지까지 폄훼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권력 싸움’이 아니라는 안 의원의 발언에 대해선 다른 견해를 내비쳤다.

ㄱ씨는 “혁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문 대표가 자리를 내려놓아야 하며 이제 자신(안 의원)이 그 역할을 주도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던 것”이라고 최근 행보를 해석했다. ㄴ씨는 “문재인도, 안철수도 지난 대선을 거치며 물렁물렁하고 카리스마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는 교훈을 얻은 것 같고 그것이 이번에 강하게 충돌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이 문 대표와 부딪힌 이면엔 ‘불신’과 ‘앙금’이 작동했다는 해석이 많다. ㄷ씨는 “2012년 야권 단일화 과정에서 친노무현계 세력이 (부당하게) 자신을 눌러앉혔다고 생각해왔고, 자신이 이번에 주장한 혁신안을 문 대표가 빠르게 수용하지 않은 것도 문 대표를 둘러싼 패권적 문화가 큰 이유였다고 본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표와 그 주변 세력에 대한 안 의원의 서운함이 누적된 결과라는 얘기도 나왔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2012년 야권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당시 문 후보가 안 후보에게 했던 말이다.

안 후보는 금강산 관광 중 피살당한 박왕자씨 사건에 대해 남북 당국 간 공식 대화에서 재발 방지 확인이 있어야 관광이 재개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문 후보는 당시 토론회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재발 방지 약속을 받은 만큼 즉시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안 후보의 의견에 대해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ㄹ씨는 “안 의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데도 ‘새누리당 쪽과 비슷하다’는 등 그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덮어씌우는 것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예를 들어 ‘문-안 갈등 국면’이던 지난 10월18일 문 대표가 과의 인터뷰에서 ‘(안 의원이 말한) 낡은 진보는 새누리당 쪽에서 우리 당을 규정짓는 프레임’이라고 밝힌 것도 “안 의원을 상당히 자극했을 것”이란 얘기다.

안 의원이 지난 12월6일 문 대표에게 최후통첩성 기자회견을 했을 때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으면 정체성을 문제 삼는 사고와 인식으로 우리 당이 중도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도 당대표까지 지낸 자신을 의심하는 당 안팎의 시선에 대한 강한 반박을 담았다는 것이다. 특히 안 의원은 “우리가 (학생)운동을 할 때 당신은 뭐했느냐”는 식의 배타적 시선을 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할 당내 악습으로 본다는 것이다.

“안 의원은 정체성 의심에 모욕 느껴”
안철수 의원이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의원이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 유세를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안 의원의 최근 행보에 비판적인 이들 사이에선 ‘문 대표가 제안한 혁신위원장을 받지 않더니 정작 혁신안이 나오자 딴지를 걸며 분열을 부추겼다’는 의견이 많다. 문 대표가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혁신위를 띄워 극복하려 할 때 안 의원이 협조하지 않고 뒤늦게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ㄷ씨는 안 의원의 속내를 이렇게 바라보았다. “그간의 전례를 보면 (선거 패배에 대해) 당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비상대책위원회 산하에 혁신위를 만들곤 했다. 안 의원은 대표가 정치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사퇴 등)이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ㄹ씨는 문 대표 쪽을 결국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혁신위원장을 해서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그 공은 결국 문 대표가 차지할 것이며 혁신위원장을 맡더라도 흔드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 의원을 안다고 하는 이들도 이번 사태에 대처한 그의 정무적 판단이 부정적 자산으로 축적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ㅁ씨는 “시간이 갈수록 안 의원이 주장한 혁신의 내용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문 대표 사퇴가 혁신의 전부인 것처럼 단순화되면서 문 대표 사퇴를 줄곧 요구해온 ‘비노·호남권 의원’들의 주장과 같아져버린 상황”을 가장 좋지 않게 보았다. 안 의원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차기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이 될 수 있는 일부 의원들의 방패막이로 활용됐다는 인상을 대중에게 줬다는 것이다.

안 의원의 공정성장론은 뒷전에

ㄱ씨는 “안 의원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대중은 그를 비주류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됐고, 그 결과 여론이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 일부 비주류의 이미지가 안 의원에게 투영됐다. 이런 점이 안 의원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지금 안 의원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대중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왜 저러지’란 느낌을 준 것이 문제”라고 했다.

이에 대해 안 의원 쪽은 “안 의원은 가급적 당내에서 문제를 풀어보고 싶어 했지만 문 대표가 거부해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던 것”이라고 문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정치권에선 안 의원의 지지도가 당분간 반등할 계기를 찾지 못하는 흐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문재인-안철수’ 사이에 지루한 핑퐁게임이 이어졌는데, 안 의원이 대통령을 하고 싶어 대선의 경쟁자와 각을 세우고 물고 늘어진 것 아니냐는 인상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ㄴ씨는 “안 의원이 잘하는 과목이 있고 못하는 과목이 있는데, 안 의원이 못하는 과목(권력 투쟁 등)의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안 의원이 강하게 내세우려 했던 ‘공정성장론’ 등이 주목받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2012년 정치권에 입문해 제1야당의 대표까지 할 만큼 그에게 “시간이 주어졌지만 안철수표 정책과 노선을 아직까지 분명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ㄹ씨는 이런 점을 우려했다. “2012년 대선을 경험해보니 유권자는 착한 후보보다 믿을 수 있는 후보를 선호하더라. 5년간 자신과 가족의 삶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안 대표의 탈당은 (애초 신당을 만들려다 포기한 뒤) 민주당과 통합해 만든 새정치연합에서 다시 철수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것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칠까? 못되게 보이는 것보다 신뢰를 까먹는 것이 향후 대권 가도에서 더 좋지 않을 수 있다.”

한국갤럽이 12월11일 발표한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안 의원은 김무성(15%)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15%) 새정치연합 대표, 박원순(12%) 서울시장에 이어 4위(10%)에 올랐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9~10% 선에 묶여 있다.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지지를 떠받치던 20대(17%), 호남(17%), 새정치연합 지지자(15%), 무당층(12%)의 지지세가 모두 20%대를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임원은 “안 의원의 이미지가 (혁신을 상징하는) 스티브 잡스에서 돈키호테로 변한 느낌”이라고 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수석부장은 “안 의원이 야권 내 혁신 세력이 아닌 기존 세력과 변별력이 크지 않은 정치인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안철수 브랜드는 얼마나 유효한가

하지만 그를 아는 인사들은 그에 대한 기대가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ㄴ씨는 “2012년의 안철수 현상을 복원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비도덕적 정치인은 아니다. 인지도가 거의 100%에 이르는 점은 여전히 강점”이라고 했다.

ㄱ씨는 “아직 안철수는 기존 정치권의 패권적 질서의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그의 가치는 유효하다. 다만 그가 시베리아 벌판으로 나가는 것을 택했다면, 대중이 환호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다는 각오와 결기는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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