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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제2의 국가보안법’ 될라

수차례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번번이 무산… 인권침해와 권력남용은 미국에서 이미 드러나
등록 2015-03-21 07:13 수정 2020-05-03 00:54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의 불씨는 ‘테러방지법’으로 옮겨붙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3월9일 리버트 대사 피습 사건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테러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책이고 대한민국은 테러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대테러 관련 법안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9·11 테러와 김선일 피살 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제19대 국회에서 △테러예방·대응법(이노근 의원 발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이병석 의원 발의) △국가사이버테러방지법(서상기 의원 발의)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기본법(송영근 의원 발의) 등 테러방지법 4개를 내놓았다. ‘테러예방·대응법’과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국가정보원 소속으로 테러통합대응센터를 신설해 국내외 테러정보 수집과 분석, 테러 위험 인물 추적 등을 수행하도록 한다. ‘국가 대테러 활동과 피해보전 기본법’과 ‘사이버테러방지법’도 국정원이 테러 예방·대응을 주도하도록 규정했다.

테러방지법은 2000년대 초반부터 국회에서 수차례 논의돼왔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발생 뒤 정부가 처음 내놓았다. 이 법안은 2003년 11월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2004년 5월). 제17대 국회에서는 김선일씨 피살 사건(2004년 6월) 등을 계기로 3개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정보위 소위원회가 법률안을 통합·조정해 대안을 제안했지만 또다시 무산됐다(2008년 5월). 제18대 국회에서도 2개 법안이 올라와 정보위에 회부됐지만 결국 폐기됐다(2012년 5월). 테러방지법안이 번번이 입법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인권침해 가능성이다. 테러라는 개념은 모호하다. 따라서 규제 대상이 되는 테러 활동을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폭넓게 적용할 여지가 있다. 과거 독재권력에서 권력남용을 경험한 탓에 테러방지법이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둘째, 국가정보원에 힘이 집중된다.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테러범죄에 관한 수사권까지 보유하면 다른 행정기관을 장악하고 상위 기관처럼 군림할 위험이 있다. 또한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처럼 정치적 반대자를 억압하는 도구로 테러방지법을 악용할 수도 있다. 셋째, 군병력 지원 규정도 문제다. 테러방지법은 국가의 중요 시설 등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군병력 지원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도록 돼 있다. 이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수행’을 위한 경우에만 군병력 동원을 허용한 헌법에 위반된다.

미 연방 1심, 애국법 위헌성 인정

테러방지법이 몰고 올 인권침해와 권력남용은 미국에서 이미 드러났다. 미 의회는 9·11 테러 발생 45일 만인 10월25일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및 수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애국법’(Patriot Act)이다. 이 법은 테러리스트로 추정·의심되는 외국인을 기본적으로 7일,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최대 60일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통신 감청도 대폭 확대했다. 외국인은 120일까지 허용하고 필요하면 최장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감청 대상도 특정 전화기가 아니라 특정 인물로 바꿨다. 다시 말해 감청 대상을 정하면 일반 전화는 물론 휴대전화, 전자우편 등 모든 통신수단을 포괄적으로 감청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문제가 터져나왔다.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감청 등으로 인해 국민의 사생활이 광범위하게 침해됐다고 폭로했다. 미 연방 1심 법원은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한 미 수정헌법 제4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애국법의 위헌성을 인정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개선안(미국자유법안·USA Freedom Act)을 마련했다. 미국 시민에 대한 감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국가안보상 필요하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연방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의 문턱은 아직 넘지 못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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