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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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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소통의 문’은 열었는데…

새정치민주연합, 시민들이 입법과 정책에 참여하는 ‘나정치닷컴’ 열어 ‘김부선법’ 등 법안 경연… 당력을 모아 끈기 있게 밀고 나가고 실제로 정책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 온라인 소통의 성패 갈릴 듯
등록 2015-03-04 06:44 수정 2020-05-02 19:27

“(그 해결책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여쭤볼게요.”(진선미 의원)
“아니, (먼저)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윤후덕 의원)
순간 두 의원의 목소리가 충돌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얘기하느라 목소리가 뒤엉키기도 했다. 같은 당의 의원끼리 벌이는 ‘설전’의 긴장감도 팽팽해졌다. 두 의원은 이른바 ‘김부선법’을 어떻게 채울지를 놓고 격론으로 치달았다. 진 의원은 모든 입주자가 볼 수 있는 아파트 관리비 회계 시스템을 만들어 상시 감시가 가능하게 하자는 안을 제안했다. 윤 의원은 아파트에서 1천만원 이상의 공사를 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대행 발주·감독하도록 해 입주자 대표와 업주 사이의 ‘검은 거래’를 차단하자는 안을 제시했다. 두 의원은 토론 과정에서 상대에게 양보의 틈새를 조금도 열어주지 않았다. 누구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를 놓고 온라인에서 겨루는 ‘법안 배틀(경연)’에 나섰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도 공모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 2월3일부터 온라인 소통 프로젝트 ‘나정치닷컴’(www.najungchi.com)을 열었다. 시민(네티즌)들이 새정치연합의 입법과 정책에 직접 참여하는 통로다. 란 방송 프로그램을 빗댄 ‘나는 정치다’란 이름의 경연이 우선 눈에 띈다. 이 코너에서 2명의 의원은 특정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각자 제시한다. 시민들은 두 의원이 토론하는 영상을 본 뒤 더 좋은 안을 냈다고 판단한 의원에게 지지 투표를 할 수 있다. 이긴 의원은 자신이 주장한 법안을 소속 의원 전체가 결의한 ‘당론’으로 발의할 권한을 갖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띄운 ‘나정치닷컴’ 홈페이지의 모습. 2명의 의원이 맞붙는 ‘법안 경연’과 시민들이 제안하는 ‘정책 공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나정치닷컴’ 누리집 갈무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띄운 ‘나정치닷컴’ 홈페이지의 모습. 2명의 의원이 맞붙는 ‘법안 경연’과 시민들이 제안하는 ‘정책 공모’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나정치닷컴’ 누리집 갈무리

‘나는 정치다’의 첫 회 경연 주제는 ‘김부선법’이다. 지난해 배우 김부선씨가 제기해 사회적 관심을 모은 아파트 관리비 문제를 시민과 함께 풀어보자는 것이다. 2월27일 현재 관리비의 투명 공개를 제도화하는 안을 주장한 진선미 의원이 68%의 지지를 얻고 있다.

첫 회 경연의 또 다른 주제는 ‘JYJ법’이다. 그룹 ‘동방신기’에서 나와 3인조 그룹을 결성한 ‘JYJ’가 이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의 방해로 5년여간 지상파 음악·예능 프로그램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하자는 취지의 경연이다. ‘JYJ 사태’가 불공정하게 기회가 박탈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본 것이다. ‘김부선법’이 민생 문제와 밀접하다면, ‘JYJ법’은 새정치연합을 ‘노쇠 정당’쯤으로 여기는 젊은 층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다. ‘JYJ법 경연’에선 방송사가 출연자를 상대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방송법을 개정하자는 최민희 의원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 사이의 ‘암묵적 카르텔(동맹)’을 막자는 홍종학 의원의 안이 맞섰다. 투표에선 최 의원이 80%의 지지를 받고 있다.

‘나정치닷컴’에선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도 공모한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 의원이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위한 ‘미생법’을, 남인순 의원이 어린이집·보육교사 문제 해결을 위한 ‘안심보육법’에 관한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영상을 통해 제안했다. 시민들과의 쌍방향 소통으로 당의 정책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아직 ‘정책 공모’에 시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진 않지만, ‘JYJ법 경연’에선 2천 명 넘는 시민이 투표에 참가했다. “오래전부터 JYJ 문제 해결 방안을 구상해왔다”는 최민희 의원은 “이런 (온라인) 소통은 우리 당이 진작에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새누리 ‘크레이지파티’에 맞불작전

시민과의 적극적인 온라인 소통을 새정치연합이 ‘비로소’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뒤늦은 시도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해 5월 ‘크레이지파티’라는 홈페이지를 띄워 시민들이 제안한 정책을 입법화하는 온라인 교감을 시작했다. 하지만 ‘크레이지파티’의 활동이 최근 뜸해진 즈음에, 새정치연합이 ‘나정치닷컴’으로 맞불을 놓았다.

의원들을 앉혀놓고 ‘법안 배틀’을 벌이는 판을 깐 이는 외부에서 영입된 유명 학원 강사 출신의 이범씨다. 그는 지난해 10월 새정치연합의 정책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원장 민병두)의 부원장으로 영입됐다. 새누리당의 ‘크레이지파티’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대국민 투표를 진행해 입법화하는 방식이라면, 이범 부원장은 의원들과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법안 배틀’이란 형식을 추가했다.

그는 “골방 세미나, 골방 토론회에 머물러 있으면 정치가 활성화될 수 없다”고 했다. ‘여의도 골방’에 갇히면 시민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정치적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정치권의 감수성은 위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치권에 세대 장벽, 젠더 장벽 등 여러 장벽들이 있다. 그러다보니 정치권의 감수성이 떨어져 대중의 민생 문제들이 정치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배우 김부선씨가 ‘난방열사’로까지 불렸고, 아파트 난방비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당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에도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시민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정치 혐오를 갖게 된다. ‘나정치닷컴’은 여의도 정치의 편협한 감수성을 확장시켜 야권뿐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기대감을 회복시키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나정치닷컴’의 성패는 새정치연합이 지속적 끈기를 갖고 실제로 입법과 정책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1야당이 어떤 사안을 관철해내는 지구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부선법, JYJ법, 미생법 등 작명을 통한 시선 끌기를 넘어, 여당을 설득해 해당 법안의 본회의 의결까지 이뤄내는 정치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이범 부원장도 “(정책 경연에서) 이긴 의원이 법안 발의를 주도하되, 경연에서 진 의원의 의견도 일부 수용해서 법안을 내게 될 것이다. (본회의에 최종 통과되기까지) 법안의 진행 과정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시도되는 새정치연합의 온라인 소통이 힘을 잃지 않도록 당력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마침 문재인 대표는 평소 정당과 국민의 온라인 소통을 강조한 정치인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아직은) 이범 부원장 개인이 (나정치닷컴과 관련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의원 보좌관·전문위원 강연 ‘새정치 15분’

새정치연합은 3~4월께 ‘나정치닷컴’에 ‘새정치 15분’이란 강연 코너도 연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해 의원, 의원 보좌관, 당 정책 전문위원 등이 강연자로 나선다. 보좌관, 전문위원이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범 부원장은 “당에서 잠재력이 사장되고 있는 이들이 보좌관, 전문위원들이다. 자신들의 전문 분야 지식은 교수 수준인데다, 법안을 만들고 여론의 반응을 살피는 훈련까지 된 사람들이다. 정치권의 특성상 국회의원과 갑을 관계라 이들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묻혀 있는 당의 잠재력을 당을 활성화하는 자산으로 응집시키겠다는 뜻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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