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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평소’를 사는 일은 이명박 정부 이후의 ‘현상’

1931년 이후 벌어진 100여 건 고공농성 데이터를 모아 분석한 ‘한국 고공농성 80여 년’…
200일 넘는 5건의 고공농성 모두 MB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들어 하늘살이 ‘장기화·일상화’ 더 뚜렷해져
등록 2015-02-12 05:37 수정 2020-05-02 19:27

무엇이 노동자를 ‘하늘 감옥’에 가두나.
이 ‘한국 고공농성 80여 년’을 분석했다. 1931년 이후 벌어진 100여 건의 고공농성 데이터를 모아 집계하고 분류했다. 뚜렷한 흐름이 관찰됐다. 추출된 수치는 의미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말한다. ‘노동자를 하늘로 밀어올리는 것은 자본에 힘을 몰아주는 편향된 정치다.’
굴뚝이 굴뚝에 왔다. 지난 1월31일 텅 빈 공장 위로 차가운 하늘이 가팔랐다. “버겁지만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쌍용자동차 굴뚝에서 날아온 김정욱(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의 목소리가 스타케미칼(경북 칠곡) 굴뚝에 닿았다. 200일 먼저 ‘굴뚝살이’를 시작한 차광호(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가 하늘에서 작은 랜턴을 흔들었다. 그 흐린 불빛으로 차광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장 남문 앞 인도에 200여 명이 모여 앉았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깜깜한 하늘을 향해 “차광호”를 불렀다. 고공농성 250일째 날이었다.

위부터 2011년 6월 부산 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 5호 크레인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0년 12월 GM대우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의 황호인·이준삼 조합원, 2013년 4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철탑 위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 2014년 5월 충북 옥천 광고탑의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2014년 12월 서울 광화문 광고탑 위의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균·강성덕씨, 2014년 12월13일 해고노동자 김정욱·이창근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 2014년 6월 구미국가산 업단지 안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 박승화 기자, 류우종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이정용 기자,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위부터 2011년 6월 부산 한진중공업영도조선소 5호 크레인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2010년 12월 GM대우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의 황호인·이준삼 조합원, 2013년 4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철탑 위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최병승·천의봉씨, 2014년 5월 충북 옥천 광고탑의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지회장, 2014년 12월 서울 광화문 광고탑 위의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균·강성덕씨, 2014년 12월13일 해고노동자 김정욱·이창근씨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굴뚝, 2014년 6월 구미국가산 업단지 안 스타케미칼 굴뚝의 차광호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 박승화 기자, 류우종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겨레 이정용 기자,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2월9일 차광호는 굴뚝에서 259일째 아침을 맞았다. 갖고 싶지 않았던 숫자가 그의 이름에 따라붙었다. 이날 그의 굴뚝은 ‘역사의 현장’이 됐다. 기록의 첫 장은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해체)에 남겼다. 309일을 그곳에서 살았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천의봉의 이름은 두 번째 장에 있다. 그들은 현대차 울산공장 옆 송전철탑에서 296일을 견뎠다. 차광호는 유성기업 이정훈(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259일 광고탑 농성)과 같은 페이지에 하루를 머무른 뒤 이튿날 앞자리로 옮겨갔다. 2월10일부터 그는 국내에서 세 번째 장기 고공농성 기록을 쓴다. 296일과 309일에 얼마나 가까워질지도 알 수 없다.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기록경기를 뛰고 있는 게 아니다. 쫓겨난 노동자들과 다시 일하고 싶다는 소망 하나로 굴뚝을 지키고 있다. 250일을 넘기면서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성과 없이 농성을 마칠 순 없다. 생필품도 많이 갖췄다. 굴뚝에 새로 올랐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현재 스타케미칼 사 쪽은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상태다. 사 쪽 관계자는 해고자들의 고공·천막 농성을 가리켜 “불가능한 떼를 쓰고 있다”고 했다. 차광호의 하늘생활에 찍을 마침표가 희미하게라도 보이질 않는다.

한국 최초의 고공농성자는 평원고무공장(평양) 여성노동자 강주룡(1931년 을밀대 지붕에서 ‘임금 삭감 반대’를 요구하다 연행)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노동운동사에서 고공농성은 1990년 4월 현대중공업 100m 골리앗 크레인 투쟁(노동운동 탄압 중지 요구)으로 본격화된다. 이후 수많은 노동자가 죽음과 맞서며 삶을 지킬 마지막 싸움터로 하늘을 택했다.

고공농성 사례를 100% 집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업장 및 농성의 규모, 언론의 관심 정도에 따라 극한의 싸움은 때로 주목받고 때로 무시됐다. 갈 곳이 하늘밖에 없어 푸른 절벽에 매달린 뒤 어떤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울며 내려온 노동자가 없지 않을 것이다. ‘기록’에 외면당한 고공의 시간을 ‘기억’에서 찾아낼 순 없었다. 노동계가 정리한 자료에도 각자의 구멍이 있었다. 이 흩어진 조각들을 긁어모았다. 노동계 자료를 교차 비교하며 뼈대를 세웠다. 수십 년치의 언론 보도를 훑으며 뼈대의 여백에 조각을 채워넣었다. 그렇게 맞춘 퍼즐을 토대로 한국 고공농성의 흐름과 추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최근 발생한 고공농성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것이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4명이 전북교육청 옥상(30m)에 올라 대량해고 철회를 요구(1월30~31일)했다. 을밀대 지붕농성부터 영어강사 옥상농성 사이에 확인되는 사례들은 모두 번호를 매겼다. 101건이 나왔다. 연도별로 발생 횟수를 추린 뒤 농성 일수를 덧대 통계화했다.

101건 중 농성 기간 50일 이하는 82건(81.1%)이었다. 50일 이상은 19건(18.9%)에 달했다. 100일 이상을 기준으로 잡아도 11건(10.8%)이었다. 200일 이상 초장기 농성도 5건(4.9%)이나 됐다.

발생 시기를 기준으로 기간을 재분류(두 해에 걸친 농성일 경우 발생한 해에 포함)했다. 의미심장한 추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50일 이상 고공농성의 발생 빈도가 특정 정부 집권 시기에 뚜렷하게 치솟았다. 1990년부터 최근까지 50~100일의 고공농성 8건은 모두 2008년 이후의 일이다. 51~309일(최장기) 농성 19건 중에서도 이명박 정부 이전(1990년부터 2007년까지 18년간)엔 세 차례(15.78%)에 불과했다. 2003년 6월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의 129일 고공농성(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다 목숨을 끊음)이 있었고, 같은 해 11월엔 세아베스틸(옛 기아특수강) 노동자들의 132일 굴뚝농성(50m·고용 승계 등 요구)이 있었다.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해고자 복직 등 요구)은 노무현 정부 말기(2007년 12월)에 시작해 이명박 정부 초기(2008년 5월)까지 135일간 부평공장 남문 30m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에서 버텼다. 이명박 정부 때부턴 급증한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7년 동안에만 16차례(84.21%)가 확인됐다. 절반도 안 되는 기간 동안 3배가 넘는 빈도를 보인다.

100일 넘는 고공농성만 따로 떼어내면 11건이다. 2007년 이전을 통틀어 3건(27.2%)이지만 2008년 이후에만 8건(72.7%)이다. 200일 이상 5건도 100% 이명박 정부 이후 벌어졌다. 하늘에서 ‘평소’를 사는 일은 ‘틀림없이’ 이명박 정부 이후의 ‘현상’이다.

고공농성의 장기화·일상화는 ‘자본의 강화, 노동의 약화’ 흐름과 일치한다. 재벌기업 사장 출신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슬로건으로 외쳤고, 후임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두 시기 장기 고공농성이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건강 악화로 중단됐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송전철탑 296일 농성 뒤 착륙한 최병승(현대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정규직 복직을 못한 채 회사와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171일과 259일간 사선을 오가며 하늘을 견뎠으나 검찰은 노조 파괴에 깊숙이 개입한 창조컨설팅에 면죄부를 줬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171일 송전탑 농성도 정치인들의 ‘배반’으로 절망 속에 종료됐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농성장을 찾았지만 선거용이었다. 박근혜 캠프가 국정조사를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잇달아 들려오는 죽음의 소식이 더해져 희망을 잃은 몸은 급격히 망가졌다.”(송전탑 농성자 복기성) 재능교육 조합원들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13년 2월 성당 종탑에 올랐다.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던 당선자의 말에 농성 초기 회사도 움직이는 듯했다. 약속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회사는 침묵으로 돌아섰고 농성은 202일이나 지속됐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말했다.

“이명박 정부 이전엔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고공농성을 무작정 방치하진 않았다. 2008년 이후 정치가 기업 쪽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기업의 대응 양상도 달라졌다. 한국처럼 노동자들이 고공에 오랫동안 매달리는 나라는 없다. 노동의 힘이 그만큼 약하고 차별이 극심하다는 뜻이다.”

전체 고공농성 101건 중 2008년 이후 발생한 농성만 분류해봤다. 현재까지 모두 44건이다. 이 중 50일 이상은 16건(36.36%)이다. 100일 이상으로 잘라도 11건(25%)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임기 5년만 놓고 따지면 전체 농성은 34건이다. 50일 이상을 모두 합하면 10건(29.4%)이다. 100일 이상을 기준으로 잡으면 8건(23.52%)이 된다.


“통신비정규직 파업 사태를 해결하라” 하늘의 펼침막


또 하나의 고공

또 하나의 고공이 솟았다.
파업 중인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월6일 새벽 하늘에 매달렸다. 강세웅(46·LG유플러스 전남 서광주 고객센터)씨와 장연의(43·SK브로드밴드 인천계양행복센터)씨는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맞은편 중앙우체국 15m 광고탑 좁은 지붕 위에 위태롭게 섰다. 두 사람은 광고탑에 오르자마자 “통신대기업 원청인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가 통신비정규직 파업 사태를 해결하라”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1천여 명의 LG유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1200여 명의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날까지 각각 81일(노숙농성 138일)과 78일의 파업(노숙농성 109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후관리(AS) 기사인 강세웅씨는 장시간 노동, 수당 착복, 도급제 개선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5월 노조 설립 때부터 조합원으로 활동해왔다. 장연의씨는 KT고객센터에서 일하다 2011년 SK브로드밴드 센터로 옮겨 설치와 AS 업무를 해왔다. 2013년 재하도급 업체의 도급기사로 일방 전환되며 계약서 사인을 거부한 뒤 해고됐다.
파업 노동자들은 지난 1월 원청이 빠진 채 협력사협의회 및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교섭을 했지만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2월2일 LG 구본무 회장 자택 앞과 SK 본사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서울 여의도에서 이틀째 제3차 오체투지를 진행하던 두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고탑 앞으로 긴급 집결했다. 희망연대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 제공자이자 진짜 사장인 원청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신비정규직 노동자들마저 하늘행을 택했다. 지난해 12월31일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 임정균·강성덕씨가 서울파이낸스센터(서울 광화문) 앞 광고탑(고공농성 50일)에서 내려온 뒤 37일 만의 일이다.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박근혜 정부 시기와 물려 살피면 선명해지는 ‘진행’이 있다. 2013년 이후 벌어진 고공농성 전체 건수는 10건이다. 50일 이상은 6건(60%)이며, 100일 이상으로 계산하면 3건(30%)이다. 전 정부 때보다도 농성이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2008년~현재 200일 이상 5건 중 3건(스타케미칼 굴뚝 259일·유성기업 옥천광고탑 259일·재능교육 혜화동종탑 202일)은 현 정부 만 2년이 안 돼 발생했거나 계속되고 있다.

2012년 하반기에 시작해 2013년 상반기까지 계속된 3건의 장기농성(유성기업 2012년 10월30일~2013년 3월20일·현대자동차 비정규직 2012년 10월17일~2013년 8월8일·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012년 11월20일~2013년 5월9일)까지 고려(이명박 정부 발생 건에 포함)하면 현 정부에서의 ‘암울한 추세’는 속도를 더한다. 노무현 정부 임기 때(전체 43건 중 50일 이상은 3건 6.6%)와 비교해도 확연하다.

박근혜 정부는 ‘하늘의 기울기’를 점점 급하게 만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허용업종 확대 방안을 내놨다. 과보호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열악하게 만든다는 논리로 정리해고 요건 강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의 노동정책이 필연적으로 고공농성의 장기화·일상화를 부추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와 무관하게 일관성을 보이는 지표도 있다. 전체 101건 중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68건(67.3%)이다. 비정규직법 제정 논의가 일던 2004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농농성이 빈발했다. 2003년까지 전체 5건이던 횟수가 2004년에만 6건→2005년 8건→2006년 11건(비정규직법 제정)으로 뛰기 시작했다.

“2011년 대우조선 88일, 2007~2008년 GM대우 135일, 2012~2013년 현대차 울산공장 296일, 2014년 씨앤앰 50일 모두 비정규직 농성이다. 사내하청까지 합하면 비정규직 1천만 시대다. 유례없는 비정규직 차별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장기 고공농성을 부르고 있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다.” (박점규)

‘하늘살이 100일 이하면 눈길조차 받지 못한다’는 고공농성자들의 자조가 수치로 확인됐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이 살아야 할 때 사람은 자신이 사람인지 자문하게 된다. 사람됨을 회의하는 사람들로 빈틈없이 빽빽한 하늘 아래보다 위험한 땅은 없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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