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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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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조7천억원 해외투자, 회수율 겨우 3.8%”

이명박 정부의 세금 탕진과 실정의 기록 을 쓴 고기영 한신대 교수…
“MB의 자원외교는 한마디로 ‘묻지마 투자’… 쓸모없는 기업들을 바가지 쓰고 산 꼴”
등록 2015-02-10 05:53 수정 2020-05-02 19:27
지난 2월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 근처에서 ‘MB 자원외교 사기의혹 및 혈세탕진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모임’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대통령에게 자원외교 국정조사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지난 2월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 근처에서 ‘MB 자원외교 사기의혹 및 혈세탕진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모임’ 소속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 전 대통령에게 자원외교 국정조사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자원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 사업이다.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평가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해외 자원개발의 총괄 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 우리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한승수 총리를 임명한 것은 그 같은 이유였다. (중략) 국내외의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가 담당하고, 해외 자원외교 부문을 한 총리가 힘을 쏟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최근 펴낸 회고록 에서 자원외교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재임 시절 ‘성과’로 내세웠던 핵심 국책사업인 자원외교는 회고록 전체 798쪽 가운데 고작 5쪽을 차지했다. 그마저도 한승수 전 총리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야당의 공세를 반박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19일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합의한 뒤에, 야당이 이 전 대통령 증인 채택을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을 다분히 의식한 서술이다. 정말 이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와 관련된 각종 의혹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자원외교 몸통이 한승수? 비겁한 변명”

이명박 정부 때 탕진한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본 책 〈MB의 비용〉에서 자원 외교 부분을 집필한 고기영 한신대 교수. 김진수 기자

이명박 정부 때 탕진한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본 책 〈MB의 비용〉에서 자원 외교 부분을 집필한 고기영 한신대 교수. 김진수 기자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책이 나왔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이사장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기획해 16명의 전문가들이 각 분야별로 이명박 정부 때 터무니없이 탕진한 국민 세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본 책 (알마 펴냄)이다. 이 책은 이명박 정부가 떠넘긴 비용이 자원외교(공기업 부채 증가액 42조원), 4대강 사업(사업비 및 금융·환경복원 등 향후 소요비용 합산 84조원), 부자·대기업 세금 감면(63조원) 등 최소 189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한다. 이 전 대통령이 ‘녹조라떼’를 일컬어 “녹조가 생기는 건 수질이 나아졌다는 뜻”이라고 변명하자,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소속 교수들이 분노한 것이 에 글을 연재하고 이후 책까지 펴내게 된 단초였다.

과 달리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356쪽 가운데 84쪽)을 할애한 부분은 자원외교다. 사업비로만 봐도 자원외교(31조원)는 4대강 사업(22조원)보다 덩치가 크다. 일본에서 산업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뒤 현대자동차 임원, 한국타카타주식회사 대표이사를 지낸 고기영 한신대 교수(경제학)가 자원외교 부분 집필을 맡았다.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정부와 공기업들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 언론 기사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지난 2월4일 고 교수를 만나 ‘MB의 자원외교 비용’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한승수 전 총리가 자원외교를 주도했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자원외교의 몸통이 한승수였다? 어느 국민이 믿겠나.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는데. 2008~2012년 한국광물자원공사가 맺은 자원개발 양해각서 35건 중에 21건이 대통령이 사인한 거다. 총리가 사인한 것은 3건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총리 지시를 받아서 다 한 건가? 비겁한 변명이다.

-을 보면,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기업이 해외 자원에 투자한 26조원 중 4조원은 이미 회수됐고, 투자 대비 총회수율은 114.8%로 노무현 정부(102.7%)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돼 있다.
=우선 ‘총회수율’ 자체가 그동안 정부나 공기업의 자료에서 등장하지 않던 개념이다. 현재 시점에 회수된 돈만 따지는 ‘회수율’이 있을 뿐이다. 총회수율에는 미래에 회수할 걸로 예상되는 돈을 다 포함시켰다. 자원 투자는 워낙 리스크가 크고 돌발변수가 많다. 그래서 어떤 사업에 투자할 땐, 연도별로 얼마씩 회수된다는 계획을 세운다. 총회수율이 100%가 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미래 예상수익이란 게, 자신의 추측이나 희망을 넣어 아무 탈 없이 회수될 걸 전제로 했다는 게 문제다. 지금 40달러인 석윳값이 10년 뒤에는 100달러가 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미래 회수율을 확정지을 수 있나? 일종의 숫자놀음이다.
이명박 정부 때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3사가 5년 동안 29조7092억원을 투자해 1조1275억원(2014년 6월 기준)을 회수했다. 회수율이 겨우 3.8%다. 1977~2008년 해외 자원 투자 회수율이 석유공사 67.6%, 가스공사 121.9%인데 이명박 정부 때는 각각 3.4%, 5.6%에 불과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는 해도, 회수율이 낮아도 너무 낮다.


2조5492억 투자 볼레오 사업, 첫 삽도 못 떠


-자원외교와 관련한 부실·비리 사례가 고구마 줄기처럼 캐면 캘수록 나온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부실 사업은 뭐였다고 보나.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 프로젝트다. 석유·가스 생산 광구를 보유한 하베스트를 인수하면서 자회사인 정유시설 ‘날’(NARL)을 1조400억원에 동반 인수했는데, 날은 화재도 많이 나고 설비가 노후해 가동률이 떨어지는 문제의 시설이었다. 그걸 현장 한 번 안 가보고, 경제성 평가도 하지 않고 부르는 가격대로 사준다. 하베스트도 부채 22억캐나다달러까지 떠안으며 사줬다. 이 밖에 석유공사의 이라크 쿠르드 유전 개발사업이나 광물자원공사가 벌인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개발사업 등도 부실 덩어리였다. 규모가 작아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업도 꽤 있을 거다. 확실한 근거가 잡히진 않았지만, 검은돈이 오간 것이 아닌지도 의심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처럼 자원외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공기업들이 여기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정권의 브랜드 사업에 공기업이 이용당했고, 그걸 막을 방법도 없었다. 대통령이 2008년 5% 수준이던 에너지 자주개발률(우리 기업이 개발해 국내에 도입한 자원 수입액/그해 전체 자원 수입액)을 임기 내 18%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은 자원개발 경험이 풍부하지 않다. 탐사-개발 과정에서 돈만 쓰다가는 자주개발률을 높일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이미 생산하고 있는 광구를 사려고 한 거다. 석유공사 자원투자 18조원 가운데 95%가 이미 생산하는 광구에 지분투자를 하거나 기업을 통째로 산 거다. 이건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해외자원개발이 아니라 해외자원투자였다. 광물자원공사의 멕시코 볼레오 사업만 해도, 처음엔 10% 지분투자(279억원)만 했다가 상대방이 사실상 디폴트를 선언하니까 지분 60%를 추가로 넘겨받는다. 결국 이 사업에 투자한 총금액은 2조5492억원으로 불어난다. 그런데 볼레오 사업은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결국 까막눈이 물건 사려고 가서 당하고 온 꼴이다.




MB 자원외교 진상 규명을 위한 국민모임


“자서전이 아닌 자술서를 써야 할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연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될까?
국회 국정조사특위는 2월11일부터 한국석유공사, 산업통상자원부 등 24곳에서 기관 보고를 받기로 지난 3일 여야 합의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공기업 3사를 상대로 4월께 청문회도 따로 열 예정이다. 하지만 증인 채택 문제와 관련해선 여야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야당은 이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부를 것을 요구하지만, 여당은 ‘정치 공세’라며 맞서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이 전 대통령은 “자원외교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러냐”고 답했다. 증인으로 채택될 리도 없고, 설사 채택된다 해도 출석할 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불러내기 위한 모임까지 등장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정의당,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나라살림연구소 등이 뭉친 ‘MB 자원외교 사기의혹 및 혈세탕진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모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이진요)라는 모임 별칭까지 붙였다.
‘이진요’는 지난 2월3일 발족식을 열어 “국민과 함께하는 국정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다음날인 4일에는 이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 근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조사 청문회 출석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자원외교뿐 아니라 4대강 사업, 불법 민간인 사찰, 내곡동 사저 사기사건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자서전이 아니라 검찰에 출석해서 자술서를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진요’ 소속 단체들은 이 전 대통령과 이상득 전 의원, 석유공사 등 공기업 3사 사장단을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이진요’는 앞으로 ‘MB 국정조사 국민조사단’을 꾸려 온라인 블로그(blog.naver.com/resourcedipl)와 페이스북 페이지(resourcedipl) 등을 통해 의견을 모으는 한편, 다음 ‘아고라’에서 MB 국정조사 증인 출석을 요구하는 10만인 서명운동도 벌일 예정이다.




-김신종 전 광물자원공사 사장은 고려대,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소망교회,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현대그룹 등 이 전 대통령과 인맥으로 연결된 사람들이었으니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을 것 같다.
=공기업 사장들로서는 평가에 반영되는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게 중요했을 거다. 만약 민간기업이 이런 투자를 했다면 사장 목이 10번은 잘렸을 거다. 민간기업은 이런 아마추어 같은 투자는 안 한다. 또 당시에 지식경제부나 국회, 감사원도 이런 엉터리 투자에 하나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거다.


MB의 자원외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현재 기획재정부 장관)이 하베스트 인수를 수차례 보고받고도 눈감아주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제기되는데.
=공기업에서 몇백만원짜리 출장을 가는데도 지경부에 보고하는데, 4조원 넘는 외국 기업을 사는데 ‘너희 알아서 해라’ 이렇게 했겠나?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지경부)는 공기업에 대한 지휘·감독권이 있다. 강영원이나 김신종이 MB 측근으로서 파워가 있었다 해도 정부의 지휘·감독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최경환 장관 문제가 불거지면 현 정부로도 불이 옮겨붙을까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책에는 ‘총체적 부실’이라고 썼는데, ‘묻지마 투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공기업도 부실을 어느 정도 알고 투자했을 거다. 그래야 자주개발률을 높일 수 있고, 그러려면 기업을 통째로 사야 하고, 그래서 쓸모없는 기업들을 바가지 쓰고 산 꼴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누가 작정하고 덤벼들면 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놓고 처벌받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반복되면 국가가 부도날 수 있다. 국정조사를 하는 주된 이유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책임질 사람에겐 응당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래야 뒤탈이 무서워서라도 앞으로 못한다. MB의 자원외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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