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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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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층이 '세금폭탄 논란' 주도했다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늘어난 세금에
고소득층 부글부글, ‘증세 저항’ 키워가… 연말정산 논란 계기로
소득양극화 등 사회의 불평등 반영한 복지 증세 논의 이어져야
등록 2015-01-30 06:17 수정 2020-05-02 19:27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기획재정부 간부들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연말정산 세액 증가와 관련해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 기획재정부 간부들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연말정산 세액 증가와 관련해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총급여 5500만원 이하 약 1300만 명은 세 부담이 줄어들고, 5500만원 이상 7천만원 이하 약 100만 명은 세금이 2만~3만원 증가한다. 총급여 7천만원을 초과하는 약 160만 명은 세 부담이 증가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1월20일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소득이 7천만원이 넘는 경우 세 부담이 134만원 늘어난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2013년에 견줘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급여생활자는 10명 가운데 한두 명꼴에 불과하다.

만일 사정이 이렇다면 과연 왜 연말정산 논란이 2015년 1월 우리 사회를 이처럼 강타한 것일까. 우선 실제 개인의 세 부담 정도가 정부 설명과 다소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일부 항목을 조정한 탓에, 가구별로 의료비·교육비 등 지출액과 자녀 수에 따라 5500만원 이하 소득자라도 세금이 2013년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 연봉이 5500만원을 밑돌아 정부로부터 세금을 더 낼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기자 역시 연말정산 환급액을 미리 계산해본 결과, 2013년보다 환급액이 2만원 정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또 다른 미봉책을 내놓고

하지만 연말정산 논란이 ‘세금폭탄’으로까지 확대된 데는 또 다른 배경도 있다. 이번 연말정산 논란의 전개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소득층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유독 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등 보수 신문은 개정 소득세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연봉 7천만~9천만원대 소득자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1월21일치 를 보면, 연말정산의 변화 사례로 연봉 7500만원과 연봉 9천만원의 직장인을 소개했다. 정부 추산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냈다는 게 요지다. 역시 ‘연말정산, 13월의 울화통’ 기사(1월16일치)에서 연봉 7500만원인 김씨의 세금이 늘어난 사례를 등장시켰다. 이에 반해 세금을 더 돌려받거나 현상 유지를 한 다수 근로소득자의 목소리는 지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한 직장인이 국세청 누리집에 들어가 연말정산 안내문을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한 직장인이 국세청 누리집에 들어가 연말정산 안내문을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올해 연말정산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을 거치며 ‘증세 저항’으로 확대됐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민을 이기는 장사 없다”며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압박했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당정협의회에서 “나도 대략 계산해보니 800만~900만원을 낼 것 같더라. 사무실 주변 직원들부터 난리다”라며 ‘세금을 다시 돌려주는’ 소급 입법 적용을 주장했다. 야당의 태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13월의 보너스가 13월의 날벼락, 13월의 비명, 13월의 원망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소득세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는 소급 입법 카드를 꺼내들며 소득세법을 고치기로 했다. 2013년 법안을 개정할 때도 ‘증세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소득세법 개정안이 시행 첫해인 2014년 연말정산을 다 끝내지도 못한 채 또 다른 미봉책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고소득층의 의견이 과다 대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재정 전문가인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는 “세금 논쟁에서는 항상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 연말정산 소동을 계기로 증세에 대해 다 꺼내놓고 토론해야 하는데 정부가 (세 부담을 줄이는) 소급 입법으로 서둘러 끝내려 한다”고 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새정치연합이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 재정에 대한 대안 없이 ‘세금폭탄’을 말하는 것은 누구를 대표해야 할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올해 연말정산 논란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인식’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소득에 견줘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낮게 평가하려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세 부담이 커진) 연봉 7천만원 이상인 사람들은 상위 10%에 해당한다. 7천만원이 낮은 소득이 아니지만 7천만원을 받는 이들은 자신이 상위 10%에 해당될까라는 의구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통계상 소득수준은 상위 10%에 들어감에도, 정작 자신이 그에 합당할 만큼 세금을 내야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중위소득은 1074만원에 불과

통계자료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한 연구 결과는 이런 정황을 어느 정도 뒷받침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의 논문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을 보면, 연간 소득 4천만원 이상의 소득자도 개인소득 상위 15%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소득별로 소득자 분포를 나눠보면, 1천만원 이하, 1천만~4천만원, 4천만~1억원, 1억원 이상의 구간은 각각 48.4%, 37.4%, 12.4%, 1.8%로 분포됐다. 전체 개인소득자 3122만 명 가운데 한 해 소득이 1천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 48.4%에 이른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 해 소득이 4천만원 이상인 이들은 전체 소득자 가운데 14.2%를 차지했다. 이 개인소득은 소득세법상 포착되는 소득에 미신고 사업소득과 4천만원 미만의 금융소득 등 모든 소득을 포함한다고 김낙년 교수는 설명했다.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일자리, 일용직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나 이자·임대료 등 재산소득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포함해 국내 모든 개인소득자를 일렬로 세웠다. 일렬로 세워놓고 보면 중간에 위치하는 사람의 개인소득(중위소득)은 1074만원에 불과하고, 평균소득은 2046만원이었다. 김낙년 교수는 “실제로는 한국 사회에서 고소득층에 들어가는데 이보다 못 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했다. 물론 가구별로 의료비·교육비 등의 부담이 서로 다른 것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소득 쏠림 현상도 두드러진다. 김낙년 교수는 국세청과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20살 이상 성인 인구 3796만 명을 10개 구간으로 나눠 인원별 소득 비중을 산정했는데, 상위 1%의 소득 비중이 전체 소득 가운데 12.97%에 이르렀다. 상위 1%가 전체 소득 가운데 10% 넘게 가져간다는 것이다. 상위 0.1%(연소득 3억1767만원 이상)의 소득 비중은 4.46%였고,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48.05%나 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3년에 낸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시장 연구’ 보고서에서도 소득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하위 노동소득 분위의 실질 노동소득이 하락하고 상위 노동소득 분위의 실질 노동소득이 크게 증가해, 개인별 노동소득의 불평등이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가구소득 불평등으로 그대로 이어지면서 세금 등 재분배 정책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도 했다.

법인세는 놔두고 서민에게만 세부담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상태에서 올바른 증세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복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 적정 수준의 증세를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어떤 소득계층, 어느 사회·경제적 환경에 있는 소득자들이 세금을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강병구 교수는 “물론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임대소득,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제대로 안 하면서 담뱃세 등 서민층에게 부담이 되는 방식만을 정부가 추진한다면 토론이 제대로 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연말정산 Q&A


연소득 5500만원 이하, 왜 세금이 늘었을까


최근 직장인들의 최대 화제는 단연 연말정산이다. ‘지난해보다 세금이 훨씬 늘었다’ ‘환급금이 줄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직장인들은 연말정산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바빴다. 기사를 읽어봐도 답답한 게 많은데 그 답을 찾아봤다.
왜 내 세금이 늘어났을까.
2013년 바뀐 소득세법에 따라 세금이 늘어난 경우는 다양하다. 정부는 근로소득 5500만원 이상일 경우 연평균 2만~3만원, 7천만원 이상에서는 세금이 평균 134만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정부 설명과 달리 연소득 5500만원 이하에서도 세금이 늘어난 경우가 있다.
소득세는 자신의 소득에 세율을 곱해 세금을 산출한다. 소득공제는 세율이 곱해지기 전 소득에서 일부 금액을 빼주는 것이고, 세액공제는 세금이 계산된 뒤 여기에서 일정 비율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다. 바뀐 소득세법은 의료비·교육비·기부금 등 그동안 소득공제가 되던 항목을 세액공제로 전환했다. 자녀 수별로 액수가 커지던 다자녀 소득공제도 자녀세액공제로 통합했다. 따라서 가구별로 의료비·교육비 등의 비용과 자녀 수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근로소득공제가 전반적으로 축소됐기 때문에 5500만원 이하 소득자도 세금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1월22일 연 브리핑에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지금까지 계속 증세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때 증세의 정확한 개념은 세율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증세가 아니라고 했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안종범 수석은 근로소득공제 축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부자 증세가 맞나.
부자 증세의 방향은 맞다. 지난 소득세법 개편을 두고 계층별 소득세 부담률을 연구한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는 소득공제 항목의 세액공제로의 전환에 주목했다. 김 교수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8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교육비·의료비·기부금이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대폭적인 증세로 이어졌다. 4천만~8천만원 소득자는 전체적으로 미미한 증세가 있고, 4천만원 미만 소득자는 감세를 받았다. 증세 효과가 가장 큰 구간은 2억~3억원 소득자로 이들은 평균 1024만원의 세금이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근로자의 상위 10%가 전체 세액 가운데 부담하는 비중은 세제 개편 전 76.6%에서 80.8%로 높아졌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떤가.
두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의 경우 한국은 총소득 가운데 64.7%가 소득공제를 받지만 미국은 42.7%, 영국은 33.9%, 프랑스는 26.8%, 독일은 17%만 소득공제를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은 35.5%다. 한국은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를 많이 해주는 나라다.
소급 입법을 하게 되면 낸 세금을 나중에 돌려받을 수 있나.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다자녀가구와 1인 가구, 연금보험료 등에 세금 혜택을 늘리는 등 소득세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야당과 협의해 4월 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일단 3월 말까지 연말정산 결과를 분석한 뒤 세액공제를 얼마나 올릴지 결정할 예정이다. 소급 적용이 이뤄지면 해당되는 이들은 지난해 소득분에 대해 낸 세금 가운데 일부를 5월께 환급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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