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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조명철

강경보수에 발목 잡힌 탈북 엘리트의 꿈
등록 2013-11-05 06:22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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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라고 하고 싶다.”

지난 10월3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개성공단 현장 시찰에 동행하지 못한 데 대한 조명철(54·사진) 새누리당 의원의 소감이다. 탈북자 출신인 그의 방북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북한이 허가하지 않았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덤덤해 보였다. 자기만 쏙 빼놓고 날름 개성공단 방문길에 오른 동료 의원들이 야속할 법도 한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야 외통위원들은 ‘유감스럽다’면서도 강력 반발하진 않았다. 비판도 나왔다. 하태경 의원(새누리당)은 “북한 당국의 입장 발표에 항의 한 번 없이, 동료 의원과 함께 가고자 하는 노력 한 번도 하지않은 채 바로 포기해버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대한민국 국회의 존엄과 권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조명철 의원이 한국에 온 것은 1994년 7월이다. 그는 북한 내각 건설부장(장관) 아버지와 대학교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김일성종합대(김대)를 나와 중국에서 유학한 뒤 김대에서 교편을 잡은 특권층 엘리트였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직후 남북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하던 시절이라 그의 ‘귀순’은 큰 화제가 됐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함께 공부를 한 김일성 주석의 아들 평일에 대한 박해 등 ‘김정일 정적’ 탄압 현실을 보고 김정일에 대해 심한 개인적 반감을 갖게 됐고,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확신을 느꼈다”고 했다.

이후 그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북한 경제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저술을 보면, 북한 경제 분야에서 관심이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탈북 초기엔 북한 가격 정책, 북-중 경제 관계, 북한의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 북한 기업의 관리 방식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북한 경제의 실상을 최대한 털어놓는 데 주력했다. 북한 고위층의 생활과 관련해 중요한 정보원이기도 했다. 1997년 KBS가 만든 김정일 국방위원장 관련 다큐멘터리에선, 조 의원이 남산고급중학교 출신이라며 출연해 학교 현황과 김 위원장의 학교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하면서는 관심의 초점을 ‘미래’로 옮겼다. 중국 ·베트남의 개혁 ·개방 정책, 남북 경협 방안 및 과제, 신의주 ·단둥 특구 개발, 북한의 경제 엘리트 분석, 개성공단 생산품의 해외 판로, 북한 광물 현황, 대북 비즈니스 매뉴얼 등이 저술 목록에 추가됐다. 2011년엔 공모를 거쳐 통일교육원장이 됐고, 지난해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공천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혈혈단신 가족을 떠나 한국에 와서 일에만 몰두하면서 20년이 흘렀다.

조명철 의원의 언어는 북한식 발음과 억양이 남아있지만, 서울말에 많이 가까워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탈북자’란 말 없이 그를 설명하지 못한다. 북한은 그를 위협한다. 지난해 우리 당국과 미국의 사주로 김일성 동상 훼손을 기도한다는 이른바 ‘동까모’ 사건과 관련해 “온 지구를 다 뒤져서라도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북한 성명에 그의 실명이 등장했다. 국회의원 당선 뒤 그는 경호상의 이유로 의원회관 맨 꼭대기층 끝방을 배정받았다.

남북이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거나 남한 내 정파 갈등이 첨예해지면, 북한이탈주민의 정치적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모든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보수, 그것도 ‘강경보수’를 택해야 한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에서 조 의원이 보였던 ‘강경보수’ 태도가 이 때문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조 의원은 “개발과 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한민국의 선례를 북한에도 가르쳐줘야 한다. 개발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개발을, 민주화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민주화를 북한에 심어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같은 현실에선 개발 쪽도 민주화 쪽도 조 의원의 말에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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