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창조경제, 적어도 뜻풀이는 ‘창조적’

대통령 눈치 보며 ‘립싱크’에 여념 없는 장차관들… ‘창조금융’ ‘창조관광’ ‘창조직업’, 부처 업무보고는 신조어 콘테스트장
등록 2013-04-10 16:10 수정 2020-05-02 19:27

현오석 경제부총리에게 창조경제란?
“융합형·선도형 경제를 지향하고 공정한 시장 경쟁에 바탕을 두는 것.”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 장관 후보자에게 창조경제란?
“기술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는 것.”
윤종록 미래부 2차관에게 창조경제란?
“두뇌를 활용해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
유민봉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에게 창조경제란?
“결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
안상훈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에게 창조경제란?
“공동체적 경제주체들을 활성화시킨다는점에서 두 번째 새마을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4월1일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야당은 그가 창조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땅투기 등 각종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왼쪽).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핵심 국정철학인 ‘창조경제’의 개념과 추진 전략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청와대에서 ‘경제정책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지난 4월1일 국회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야당은 그가 창조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땅투기 등 각종 의혹이 있다는 이유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왼쪽).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핵심 국정철학인 ‘창조경제’의 개념과 추진 전략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청와대에서 ‘경제정책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 첫 거론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철학인 창조경제의 ‘현대레알사전’식 풀이다. 고위 관료·전문가마다 자신의 자리에 따라 정의가 제각각이다. 그나마도 하나같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 에둘러 표현하고 있어 창조경제의 정곡을 파고든 해석이 없다.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창조경제에 알맹이 따윈 없었던 것일까.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처음 입에 올린건 그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9월28일이었다. 그는 ‘대구·경북의 발전 방안’을 묻는 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성장하느냐, 어떻게 일자리를 만드느냐다. 지금은 창조경제가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고 답했다. 추상적인 단어의 나열이나마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창조경제 구상을 처음 내비친 것이다. 그 뒤 10월18일 창조경제는 최우선 경제공약으로 격상된다. 내용도 다소 구체화됐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론은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경제 운영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이 개념은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언급하기 보름 전인 9월14일 이야기했던 ‘스마트 뉴딜’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그는 “스마트는 정보기술(IT), 뉴딜은 내수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의미인데 우리말로 더 잘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창조경제는 스마트 뉴딜의 한국말 표현인 셈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스마트 뉴딜을 창조경제로 바꿔 부른 시점이 묘하다. 당시 유력 대선주자이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박 대통령보다 일주일 앞선 9월21일 창조경제란 단어를 먼저 사용했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IT전문가답게 “지식정보산업이 발전하면서 창조경제를 만들어내고 한쪽에선 그 원동력으로 경제민주화로 복지를 강화하는 선순환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창조경제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다만 대선 공약을 공식 발표할 때는 혁신경제로 정리해 표현했다.

물론 안 후보도 창조경제의 원조는 아니다. 2001년 영국의 경영전략가인 존 호킨스가 영화·음악·패션 같은 문화 창조산업을 중심으로 한 발전 전략을 담은 창조경제론을 냈고, 2008년엔 리처드 플로리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그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창조도시를 소개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2007년 대선 때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노동자·중소기업의 혁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람 중심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2008년엔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규제와 비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을 자율과 실용주의로 바꾼다는 뜻에서 창조경제를 주장했다. 이렇게 창조경제는 정형화된 개념이 아닌 만큼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창조경제가 국정철학으로 위상이 높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지금처럼 향후 국정 방향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주지 않으면 각 부처는 정책을 만드는 데 오락가락하고, 기업이나 개인은 투자와 같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탓이다.

애초에 창조경제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으로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출발했다. 이를 박근혜표 경제정책으로 만든 대선캠프에서부터 확실하게 방향 정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당시 캠프의 정책을 총괄하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창조경제의 핵심을 창조적 인재 양성에 있다고 봤다. 그는 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제는 기술과 기술자에 기댄 하드웨어적 기술입국 방식의 경제발전은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사회과학·인문학이 과학과 융합된 창조과학이 필요하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제성장 공약을 주로 만든 당시 김광두 힘찬경제추진단장의 방점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한 신성장동력 마련과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있었다. 그러나 이전 정부들도 새로운 먹거리로 추진했던 ICT,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등 첨단 융합기술 연구·개발(R&D)지원과 창조경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부동산·물가 안정화’도 창조경제?

결국 당시 박 후보자는 애초 구상인 스마트 뉴딜에 더 가까운 김 단장식 풀이를 선택했지만 창조경제의 모호함은 박 대통령 당선 직후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그대로 유전됐다. 인수위는 지난 2월21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최우선 국정목표에 두면서도 창조경제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데는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창조경제의 하위 세부 국정과제에는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산업육성, IT·소프트웨어(SW) 융합을 통한 주력산업 구조 고도화, 농림축산업의 신성장 동력화, 수산의 미래 산업화, 고령친화산업육성, 중소 중견기업의 수출 활성화 등 온갖 분야의 지원 전략이 망라돼 창조경제의 의미를 더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여기에 안정적 세입 확충, 공공부문 부채와 국유재산 관리 효율화, 부동산 시장 안정화, 물가의 구조적 안정화, 소비자 권익 보호 등처럼 완전히 생뚱맞은 정책들까지 끼어들어 창조경제의 진면모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당연히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자 혼란은 더 커졌다. 국정철학에 맞게 구체적인 시행전략을 짜고 정책을 만들어야 할 정부 부처들이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이다. 이명박 정부가 국정비전인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 7대 경제대국)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발표한 뒤각 부처가 대통령의 코드 맞추기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창조경제 실현을 주도할 미래부 장관에 내정된 최문기 후보자조차 지난 4월1일 인사청문회에서 창조경제의 개념을 묻는 질문에 박근혜식 원론적 해석만 되풀이해 “입만 벙긋거리며 창조경제 립싱크에 여념이 없다”(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는 질타를 받았다.

그래도 각 부처는 국정철학 공유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어설픈 구호를 쏟아내고 있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신흥 경제권 관련 협력을 확대하겠다”(외교부), “개성공단에 국가투자설명회를 추진하는 등 해외시장을 확대해 창조경제에 기여하겠다”(통일부), “창조경제 핵심동력을 육성하기 위해 무인·로봇·센서·유도기술 등을 활용한 신무기 체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국방부) 등 각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는 ‘창조’가 빠지지 않는다. ‘창조금융’(금융위원회), ‘창조관광’(문화체육관광부), ‘창조직업’(고용노동부) 등 신조어도 계속 창조되고 있다. 선대인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은 “창조경제는 위에서 지시하고 밑에서는 ‘무슨 뜻일까’ 궁리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창조경제는 오랜 기간 다양한 사고, 아이디어, 생활방식이 부딪치고 융합되면서 만들어지는 거다. 과거 지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관료들 중에 창조경제를 이해하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본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이 나서 정리 시도했건만…

새 정부가 경제 부흥의 두 가지 축으로 내건 경제민주화가 이름만 남은 데 이어 창조경제까지 논란에 휩싸이자 보다 못한 박 대통령이 직접 정리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3일 “창의성을 우리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ICT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서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개념을 정의했다. 말만 길게 늘였을 뿐 이전 설명 그대로다. 혼쭐이 난 정부는 미래부를 중심으로 범부처 창조경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하고, 중앙공무원교육원을 통해 창조경제를 전파하는 ‘창조경제 실천과정’을 운영하기로 하는 등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지만 창조경제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정철학에 맞는 신규 투자나 인력 채용으로 발 빠르게 화답했던 기업들도 창조경제에 대해선 이해가 제각각이다. 창조경제를 신기술 간 융합으로 해석하거나 창조적인 인재 양성으로 보는가 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기업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의중을 알아야 뭘 해도 할 텐데 지금은 별로 잡히는 게 없어 일단은 (방향이 구체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덕분에 민간 연구소들이 바빠졌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일찌감치 올해 초 ‘미래시장연구실’을 만들어 ‘창조경제 의미와 새 정부의 실현 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놨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창조경제연구단’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 경제팀에서 토론이 제대로 안 돼 다들 짐작만 하는 것 같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제일 싫어한다. 세계경제까지 불확실한데 정책방향까지 오리무중이면 부처는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정책을 못 만들고, 기업은 투자를 못해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백번 양보해 정부 출범 초기인 지금은 당·정·청, 전문가, 기업 등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창조경제의 개념을 정립해가는 해프닝 정도로 웃어넘길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면 얼마 못 가 잔인한 현실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내년 예산을 편성하는 하반기에는 새 정부의 창조경제 패러다임에 따라 돈을 풀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필요한 곳에 돈을 제대로, 제때 투입하지 못하면 정부가 자신하는 ‘경제부흥’은커녕 2%대 경제성장률도 이룰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그렇다고 정부가 조바심에 돈을 특정 분야에 쏟아부으면 경제에 거품이 낄 위험도 높다.

증시 수혜주들 들썩… 게이트 우려도

실제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키워드로 ICT, 과학기술, 창업, 벤처기업을 자꾸 언급하자 증권가에선 벌써부터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흘러들 것으로 기대되는 수혜주들이 들썩이고 있다. 창업투자회사주, 음성인식·동작인식 등 감성 정보종합기술주, 미디어·콘텐츠 관련주, 모바일 융합기술 관련주, 헬스케어주 등은 ‘창조경제주’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으로 IT 벤처사업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가 과열을 초래한 김대중 정부가 떠오르는 부분이다.

새누리당 소속 한 재선 의원의 걱정이다. “내년부터 예산을 집행하려면 올해부터 미래부가 돈을 대줄 (창조경제 아이디어가 있는) 대학이나 기업 등을 심사해나갈 거다. DJ 때는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테헤란로에 헬리콥터로 돈을 뿌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나. 지금은 사회가 더 투명해졌다. 몇십조원은 풀릴 텐데 선정·지원 과정에 사고가 발생해 각종 게이트가 터져나올 가능성이 높다.” 알맹이도 없고 관료의 이해도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 있는 창조경제가 우려스러운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