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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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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에 포격당한 대통령 지지율

연평도 포격·천안함 침몰 등 안보 이슈 때마다 지지율 되레 하락…

진보·보수 모두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대북정책 탓 분석
등록 2010-12-09 06:49 수정 2020-05-02 19:26

‘북풍’은 이명박 대통령의 ‘늪’일까?
결집효과(Rally around the flag effect)라는 게 있다. 외부로부터 안보 위기가 닥칠 경우 정부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똘똘 뭉치는 현상을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안보, 특히 북한 관련 이슈는 대체로 보수 정권 쪽에 유리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공식’이었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다소 비판적이던 여론도 집권세력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선거를 앞두고 북한에 도발을 요청하고, 잊을 만하면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을까.
 
포격 일주일 만에 3.9%포인트 빠져

안보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진다. 연평도 피격 사건 당일인 11월23일 저녁 이 대통령이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안보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은 떨어진다. 연평도 피격 사건 당일인 11월23일 저녁 이 대통령이 서울 용산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서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런데 ‘북풍’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반대로 부는 것 같다. 11월23일 북한이 60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 거주지를 향해 포탄 세례를 퍼부은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도 오히려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이가 늘어났다. 연평도 포격 일주일 뒤인 11월29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주간 정례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2.7%로 일주일 만에 3.9%포인트가 빠졌다.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1월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이 대통령 지지율이 44.2%로, 10월 조사 때(51%)보다 6.8%포인트 낮아졌다. 11월2일 지지율 52%를 기록했던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11월27일 44.7%로 7.3%포인트 줄었다. 40% 초·중반대 지지율이 낮은 수치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직후 청와대가 자체 조사해 자랑스럽게 내놓은 ‘60% 이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물론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가 “G20의 효과가 사라지면서 거품이 조정된 것”이라거나 “낙폭이 대체로 오차범위(±3.1~3.5%) 안에 있는 수준”이라는 반박이 가능하다. 하지만 ‘추세’가 중요한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런 현상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에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흔들렸다. 리얼미터가 사건 직후인 3월29일 실시한 주간 정례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40.0%로, 전주(44.4%)보다 4.4%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4월12일 실시한 조사에선 40.4%가 나와 3월23일 조사(45.0%)보다 4.6%포인트 하락했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4월10~11일 벌인 여론조사에선 지난해 12월26일의 같은 조사(49.8%)보다 5.2%포인트 떨어진 44.6%였다. 지지층이 결집할 만한 충격적인 안보·북한 관련 이슈가 터졌는데도 오히려 이 대통령 지지율은 빠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은 결국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정체성 없이 이미지 관리에만 의존”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이 대통령은 ‘북풍’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2006년 추석 전까지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해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 사실을 발표한 뒤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와 10%포인트 이상 지지율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의 아성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그를 따돌렸다. 안보 위기가 닥치자 박 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이 아킬레스건이 됐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한 번도 뒤집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표면적인 원인은 ‘정부가 대응을 잘못해서’다. 하지만 응답자가 ‘잘못’으로 꼽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 동아시아연구원·한국리서치가 4월24일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이 대통령과 정부의 태도에 대해 응답자의 35.5%만 ‘적절하다’고 답했다. 33.1%는 ‘지나치게 북한 눈치를 본다’고 답했고, 26.0%는 ‘지나치게 북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0% 가까운 이가 정부의 대응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 높아진 같은 기관의 11월27일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잘못 대응했다’는 응답이 72.0%를 차지한 가운데, 잘못된 대응의 내용으로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를 꼽은 사람이 응답자의 36.5%, ‘미온적인 군사 대응’을 꼽은 사람이 23.8%, ‘대북 대응 방향 혼란’을 꼽은 사람이 13.1%였다. 앞의 대답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응을, 뒤의 두 대답은 강경한 대응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수·진보 양쪽에서 모두 불만이 표출되는 형국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에 대해 “보수 성향 유권자는 북한이 도발했는데도 정부가 나약한 모습을 보여 국민의 안위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본다. 진보 성향 유권자는 대북 관계에서 대화·협력을 도외시한 정부의 고립 정책이 북한의 공격을 유발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안보 분야는 진보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보수층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이 대통령 지지를 유보하고, 나아진 경제지표나 G20, 공정사회 슬로건 등에 주목했던 진보층은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정체성’이 없다는 지적과도 연관된다. “평화 수호든 반공이든 분명하게 정책 기조를 세우고 그에 기반해 개별 정책을 실행해야 보수·진보 모두한테서 비판받는 일이 없을 텐데, 현 정부는 ‘확전 방지’ 발언 논란에서 보듯 단발적 메시지나 인사 조처 같은 이미지 관리에만 의존한다”(김봉신 미디어리서치 사회여론조사본부1팀 차장)는 것이다.

국민이 대북정책 자체를 워낙 불신하기 때문에 결집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햇볕정책을 실시할 때도 서해교전이 벌어졌고, 강경책을 취하는 지금도 북한의 공격을 당했다. 그러다 보니 대북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여당에서조차 비판이 나온다”며 “반대 목소리가 크면 결집효과가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북 강경론에 대한 비판 여론 더 많아

근본적으로 여론 지형이 이 정부의 ‘뜻’과는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앞의 11월27일 조사 결과다. 연평도 도발이 ‘햇볕정책 때문’이라는 응답은 39.4%로,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 때문’이라는 응답(51.3%)보다 11.9%포인트 낮았다. 피격 대응과 관련해 ‘전투기 폭격을 자제한 것은 적절했다’는 응답은 56.6%로, ‘전투기로 폭격해야 했다’(39.3%)는 응답보다 17.3%포인트나 높았다. 이는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과 반등의 해법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에 대해선 한나라당에서도 공감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정욱 의원은 “북 도발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면서도 확전은 원하지 않는 여론엔 모순점이 있다”면서도 “집권한 지 3년이나 지났고, 대북정책도 지난 정부와 달라졌다. 그런데 ‘지난 10년 탓’을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누구 탓을 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안보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을 보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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