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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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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인정받는 ‘작은 중수부’



태광그룹 비리 제보는 왜 서부지검으로 갔을까
등록 2010-10-26 06:52 수정 2020-05-02 19:26
대검 중수부도 1년4개월의 ‘휴식’을 끝내고 수사를 재개했다. 대검 중수부 직원들이 지난 10월21일 C&그룹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대검 중수부도 1년4개월의 ‘휴식’을 끝내고 수사를 재개했다. 대검 중수부 직원들이 지난 10월21일 C&그룹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한겨레 김태형

“대검 중수부와 서울서부지검 가운데 서부지검을 택했다. 서부지검장이 남기춘 검사고, 특수수사를 담당하는 형사5부는 이원곤 검사가 맡고 있다. 주요 검사들이 불법을 보면 끝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윤배(53)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서울서부지검을 골라 태광그룹의 비리 의혹을 제보했다. 그 배경에 대해 “시장에서는 남기춘 지검장에 대해 ‘거칠고 패소율이 높다’는 부정적인 판단과 ‘(불법을) 발견하면 끝까지 간다’는 긍정적인 판단이 있는데, 이 가운데 긍정적 판단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말대로 남기춘 지검장은 원칙을 앞세우는 ‘강골’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2003~2004년 대선자금 수사의 주임검사(대검 중수1과장)를 맡았다.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현 대법관)이 “대선자금 수사가 성공한 것은 남기춘 검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도 남 지검장을 인정한다. 김 변호사는 삼성에서 뇌물을 받지 않은 검사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남 지검장을 꼽았다. 또 200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지검장이 대선 수사에서 당시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의 구속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명동 채권 시장을 샅샅이 뒤져 삼성 채권을 찾아낸 남기춘 검사가 송광수 검찰총장실에 찾아가 이학수 실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남기춘 검사의 의견은 묵살됐다.”

물론 남 지검장의 수사 방식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거칠고 투박한 수사 스타일로 기소 뒤 재판에서 패소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부지검 ‘넘버 2’인 봉욱 차장검사가 이를 잘 보완해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봉 차장은 남 지검장과 정반대로 곱상한 외모에 꼼꼼한 일처리를 자랑한다. 2008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장으로 근무할 때 주가조작 혐의로 재벌 2~3세를 조사했고, 일부는 구속시키기도 했다.

이같은 서부지검의 진용에 대기업들은 더욱 긴장하고 있다. 수사 대상인 한화그룹 관계자는 “당초 사건이 대검 중수부에서 서부지검으로 넘어가면서 조금 안도했지만, 남기춘 지검장을 비롯해 서부지검의 검사들을 보고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남 지검장은 현재 한화·태광그룹 수사를 담당하면서 ‘소(小) 중수부장’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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