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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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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니 10월 재선 노린 것?

이재오 전 의원 복귀에 대한 은평 주민의 ‘그래도’와 ‘그래서’…
이르면 5월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상득과 기싸움 가능성
등록 2009-04-10 06:49 수정 2020-05-02 19:25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정치인이 어딨나.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재판은 여권이)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하는 재판이지. 그러니까 이재오가 재선거를 노리고 들어온 거지.”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서 9년째 꽃집을 하고 있는 오아무개(51)씨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의 귀국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뜸 이렇게 답했다. 구산동을 포함한 은평을 지역 주민들은 지난해 총선 때 이 전 의원을 ‘3선 의원’에서 ‘전직 의원’으로 만드는 대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에게 ‘금배지’를 달아줬다. 4월1일 만난 주민들은 오씨처럼 이 전 의원의 복귀를 ‘의도된 10월 재선거’와 연관짓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그래도…”와 “그래서…”로 엇갈렸다. 물론 “어쨌거나 관심 없다”는 주민도 상당했다.

이재오 전 의원이 4월1일 오전 서울 구산동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그의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당분간 정치적인 이유로 무악재와 한강다리를 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역구와 여의도는 10월 재선거 여부와 여권 권력지형 재편 등으로 술렁이고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이 4월1일 오전 서울 구산동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그의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날 “당분간 정치적인 이유로 무악재와 한강다리를 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역구와 여의도는 10월 재선거 여부와 여권 권력지형 재편 등으로 술렁이고 있다.

살 부대낀 정 vs “너무 빨리 돌아왔다”

공인중개사 김아무개(49)씨는 “재판이야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니냐”면서도 “그래도 실세가 당선돼야지. 이재오 떨어져서 역촌동 재개발 물 건너갔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했다. “지역구 의원이 힘이 있으면 예산이고 뭐고 조금이라도 더 따오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역촌동에서 만난 김아무개(65)씨도 “그 사람이 돼야 ‘빽’을 쓰든 뭘 하든 하지. 욕하는 사람들은 ‘이재오가 한 게 뭐 있냐’고 하지만, 수국사 앞에 체육시설 같은 거 전부 이재오가 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 됐다고 넥타이 한번 맨 걸 못 봤다. 늘 점퍼 차림에 등산화 신고 다니고, 산에 가서도 자기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 있으면 해장국 나르는 심부름도 했다”며 “문국현은 얼굴도 못 봤다. (10월 재선거가 치러져 이 전 의원이 출마한다면) 손을 한 번 잡아봐도 잡아본 이재오 찍어야지”라고 덧붙였다. 정권 실세의 힘을 발휘해 지역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와 ‘살 부대끼며 살아온 정’이 이 전 의원의 복귀를 반기는 이유였다.

반면, 그의 정치적 복귀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너무 빨리 돌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구산동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박아무개(64)씨는 “이재오는 여기서 재기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설혹 10월에 재선거가 있다 해도 그거 무시하고 3~4년 ‘나 죽었소’ 하고 있다 다음 총선에 나오면 몰라도, 지금은 무슨 명분이 있느냐”는 설명이었다. 꽃집을 하는 오씨도 “이 전 의원이야 이번 기회에 재도약할 기회를 노리는 거겠지만, 너무 빨리 들어왔다.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면 좀더 시간을 두고 조용히 지냈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친박근혜 정서’도 이 전 의원을 향한 반감의 한 축이었다. 구산동의 박씨는 “17대 총선 때 탄핵 역풍 때문에 이재오가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박근혜가 두 번인가 연신내에 와서 지원유세를 하는 바람에 당선됐는데, 당선되더니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공격하더라. 그건 배신 아니냐”고 했다. 지물포를 운영하는 안아무개(71)씨도 “이재오가 박근혜를 미워하면 절대 당선 안 된다. 나도 계속 (17대 총선까진) 이재오를 찍었지만, 박근혜 폄하 발언을 계속해서 미워하게 됐다”고 했다.

“당분간 무악재와 한강 다리를 넘지 않겠다”

이재오 전 의원도 자신을 둘러싼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당분간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4월1일 구산동 자택을 찾아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전 의원은 문국현 의원 재판과 관련해 “나는 관심 없다. 언제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건 초짜들이나 신경쓰는 거지, 내가 3선이나 했는데 그럴 군번은 지났지”라며 웃었다. 귀국 시점을 둘러싼 ‘의심’엔 “일이 다 끝났으면 집에 와야지, 출장 끝났는데 계속 딴짓하고 놀면 되겠느냐”고 했다.

당 안으로든 바깥으로든 ‘싸울 생각’이 없음도 강조했다. “당분간 정치적인 이유로 무악재와 한강 다리를 넘지 않는다.” 지역구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는 “(정계 복귀는) 국민들에게 물어봐야지 내 의지대로 되겠나. 이재오가 많이 쉬었으니까 정치를 새롭게 해보라고 하면 하는 거고, 나오지 말라면 못하는 것 아니냐. 국내에 있을 땐 내가 나서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밖에 나가 보니까 아니더라. 옳은 일이라면 내가 아니라도 나설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당분간은 이 전 의원이 눈에 띄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전 의원의 목표는 원내 진입이므로 최대한 몸을 낮출 것이다. 귀국만으로도 논란이 되는데, 현실정치에 개입하거나 박근혜 전 대표 쪽과 갈등을 빚었다간 금세 여론이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물론 ‘당분간’은 10월 은평을 재선거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다. 이 전 의원의 한 측근은 “당분간은 1년 가까이 비웠던 지역구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재선거가 치러진다면 출마하게 될 것이다. 주민들도 3선으로 키운 일꾼이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동정심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내 세력 재편 시도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원은 4월1일 “여당은 정부와 대통령을 도와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본분인데,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더 어려워진다. (하지만) 내가 말을 안 한다뿐이지, 눈 감고 세상을 안 보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론과 접촉을 굳이 피하지 않는 그다. ‘말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나설 것이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이명박 정권 ‘공동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은 필연적으로 서로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이상득’을 기치로 이 전 의원과 ‘전략적 제휴 관계’를 형성했다가 총선 불출마 문제로 틀어졌던 정두언 의원은 이 전 의원이 미국에 체류할 때부터 여러 경로로 교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 ‘영일 대원군’ 세력과 언제든 연합 전선

이명박 직계로 분류되는 초선 의원 일부도 ‘영일 대원군’으로 불리는 이상득 의원을 향한 불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언제든 ‘연합 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세력이다. 4월 경북 경주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박근혜계 정수성 후보의 사퇴를 종용해 물의를 빚은 것처럼 이상득 의원이 ‘전횡’을 반복한다면 이들의 결합은 얼마든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한나라당 내 한 인사는 “이상득 의원이 겉으로는 ‘화합’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은 박 전 대표에게 권력을 나눠줄 생각이 전혀 없다. 정수성 후보 사퇴 요구는 그런 이 의원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며 “이재오 전 의원과 정두언 의원, 일부 이명박 직계 등은 박 전 대표와는 손 잡을 수 없겠지만, 자기들끼리는 이상득이라는 ‘공공의 적’ 때문에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사이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5월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이상득 대 이재오·정두언’이라는 구도로 기싸움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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