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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과격 시위 장면만 편집해 홍보… “누가 찍었는지는 우리도 몰라”
등록 2009-02-10 11:35 수정 2020-05-03 04:25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의 원인을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탓으로 돌리며 여론을 왜곡하려 드는 건 경찰·검찰과 수구 언론들만이 아니다. 참사가 발생한 지 고작 사흘 뒤인 1월23일, 한나라당이 철거민들의 과격한 시위 장면만을 모아 편집한 동영상을 제작해 각 시·도당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은 김유정 민주당 의원이 경찰과 용역업체가 합동으로 강경 진압 작전을 벌인 정황을 보여주는 경찰 무전 교신 내용을 공개한 날이다.

한나라당이 용산 철거민의 시위 장면만을 편집한 동영상을 시·도당 홈페이지 등에 올려달라며 보낸 협조 공문.

한나라당이 용산 철거민의 시위 장면만을 편집한 동영상을 시·도당 홈페이지 등에 올려달라며 보낸 협조 공문.

시·도당 홈페이지와 포털에 올려

한나라당은 1월23일 한선교 홍보기획본부장 명의로 된 ‘용산 참사 전철련 과격 폭력 동영상 게시 협조건’이란 한 장짜리 문건을 각 시·도당과 당원협의회, 소속 의원실로 보냈다. ‘협조’의 내용은 간단했다. “용산 참사의 배후로 드러나고 있는 전철련의 과격·폭력 시위의 심각성을 알리는 동영상을 제작했다. 해당 동영상 파일을 웹하드에서 다운로드받아 시·도당 및 당협위원회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에 게시해달라.” 문건은 “최근 일어난 용산 참사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철거민 사망 소식과 경찰의 강경 진압만을 집중 보도해 정부와 경찰에 대한 국민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동영상 제작·배포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나라당이 배포한 3분36초짜리 동영상에는 철거민들이 벽돌을 깨 던지거나 새총을 쏘는 장면, 화염병을 던져 건물 바깥쪽 도로에 불이 번지는 장면 등 자극적인 화면들이 반복적으로 편집돼 있다. 또 “용산 참사의 배후로 전국철거민연합이 관련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보호돼야 할 선량한 철거민과 전철련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등의 자막을 올려, 마치 참사가 전철련 때문에 빚어진 일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하루 전날인 22일 윤상현 당 대변인의 브리핑과 똑같은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1월2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도 이 동영상을 상영했다.

원본 동영상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동영상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장면이 1월22~23일 경찰청 홈페이지에 잇따라 올라온 ‘용산 방화 사건’ 동영상과 촬영 각도나 구도가 유사하다.

이와 관련해 한선교 홍보기획본부장은 “(편집되기 전 원본 동영상의 출처가) 경찰은 아니다”라면서도 “누가 찍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보 쪽에서 너무 자기들 주장대로 만든 동영상을 풀어서 (여론을) 몰고 가기에, 동영상 대 동영상으로 대응한 것”이라며 “참사의 원인을 누구라고 지목하는 건 아니고, 그 새벽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국민의 판단을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도 “지나쳤다” 비판론

하지만 당 안에선 “지나쳤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고참급인 한 보좌관은 “용산 참사의 본질은 ‘전문 시위꾼’이 왔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했다는 것”이라며 “당에 불리한 여론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일단 덮고 보자는 태도가 한나라당의 한계 같다”고 자조했다.

임태훈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이 사건의 조사 결과를 보고 대응 방안을 논의해보자고 언론에 얘기해놓고, 뒤에선 경찰과 똑같이 가해자를 편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느냐”며 “동영상 유포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야당이 요구하는 국정조사와 특검제 도입 등을 모두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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