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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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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스퀘어] 사람을 그리다, 사람이 그립다

경기도 수원에서 마주친 고단한 얼굴을 담은 이주영 화가의 ‘2020년 그림일기’
등록 2020-12-21 23:45 수정 2020-12-22 00:04

2월28일 경기도 수원의 오래된 구도심 팔달문과 재래시장이 모여 있는 곳. 지동교와 여러 시장, 주변의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표정 속에 코로나19를 마주하는 두려움과 경계의 모습이 묻어난다. 저들 안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 고단한 일상에 느닷없이 닥친 역병의 공포가 빨리 종식되길 바라며….

3월11일 길 위의 표정들을 장지(한지의 일종)에 콩테(목탄과 흑연, 점토 등이 혼합된 연필 모양 크레용)로 기록한다. 한명 한명의 눈빛과 표정에서 절절한 소리가 들린다. 더 많은 소리를 담자.

3월24일 구도심의 사람들, 밀려나거나 정지된…. 오랜 시간 익숙한 정서에 맞는 중장년층과 도시 서민, 노점상·노숙인 등이 섞여 다른 곳에선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과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 속에 가슴 먹먹해지는 나를 본다. 그냥 우두커니 정지된 한 컷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4월2일 검은색은 있건 없건 어리거나 늙었거나 누구이든 간에 공평하다. 그들은 다 같고 아리고 애틋하며 고맙고 미안하다. 다리 위에서 멀어지거나 만나거나 아슬아슬하게 난간 끝에 서 있거나 눕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거나…. 수많은 색이 다리 위에 있다.

4월14일 사람을 그린다. 사람 사람 그리고 사람…. 숨은 미안함이 가득한 날이다.

5월1일 지동교 위엔 여전히 바람에 노출된 흔들리는 영혼들이 초점 잃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제가 내일인 이들을 감히 예단하거나 건방진 미안함을 경계하며…. 일이 흔들린다.

6월4일 다리 위의 삶, 너 혹은 나, 부여잡거나 간신히 간절히, 기대거나 차라리 눕거나, 가장 낮고 좁게.

7월4일 붙잡아 손사래 치고 중력에 매달리고 큰소리로 침묵하고…. 피곤하다.

8월21일 고맙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날일 들일 한두 번도 아닌데 감사할 일인데도 한구석 덜지 못한 끈적한 미안함이란…. 맑은 영혼의 한 걸음을 새긴다.

10월12일 빈눈으로 본 흰눈 첫눈이다. 휘파람 소리다. 지동의 발자국 소리는 붉은 쿨럭임이다. 집!

그림·글 이주영 화가

*1959년생으로 주로 경기도 수원에서 작품 활동을 해온 이주영 화가는, 코로나19를 겪는 ‘길 위의 사람들’을 기록한 이 그림들로 2021년 1월8~28일 수원 해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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