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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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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공화국에서 만난 새의 선물

바위의 땅 알타이공화국 3800km를 달리며 만난 흰죽지수리·금수리·긴점박이올빼미·흰발톱황조롱이… 척박한 땅에서 만난 생명의 신비
등록 2015-08-06 09:31 수정 2020-05-02 22:17
항라머리검독수리가 어린 새가 있는 둥지 옆 나뭇가지에서 주변을 살피다 날아가고 있다.

항라머리검독수리가 어린 새가 있는 둥지 옆 나뭇가지에서 주변을 살피다 날아가고 있다.

새를 좋아하는 조류 사진가에게 맹금은 로망이다. 우리가 예로부터 맹금이 시력이 좋은 것을 알고 있듯이 ‘매의 눈’ ‘수리의 눈’은 사람들에게 좀체 곁을 주지 않는다. 성격이 예민해서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얼마나 높이 날아오르는지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 이동하기 일쑤다.

금수리나 흰죽지수리 같은 대형 수리의 번식지가 사라진 한반도에선 시베리아나 몽골의 추위를 피해 오는 미성숙 개체(대부분 먹이경쟁에서 밀린 어린 새)만 드물게 볼 수 있는 실정이다.

짧은 여름에 번식에 나선 시베리아와 알타이 지역의 맹금류를 찾아나섰다. 금수리, 흰죽지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독수리 같은 대형 수리류와 긴점박이올빼미, 흰발톱황조롱이 등 우리 땅에선 보기 힘든 다양한 새들의 번식과 활동 모습을 지켜보며 카메라에 담았다. 해발고도 4천m에 이르는 알타이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남동쪽으로 몽골 및 중국, 남쪽으로 카자흐스탄과 접한 남한 크기만 한 러시아 알타이공화국의 험한 길 3800km를 24일 동안 달렸다. 여행엔 ‘러시아 맹금류 연구와 보호 네트워크’와 시베리아에코센터 전문가들이 함께했다.

바위로 된 작은 언덕이 초원과 어우러진 알타이공화국 중서부 지역 우스트칸의 작은 숲에서 흰죽지수리 둥지를 찾았다. 전형적인 시베리아의 풋힐(작은 언덕) 지형이다. 산이나 큰 숲, 나무가 없는 초원에 둥지를 트는 다른 수리류와 달리 이 새는 둥지 주변이 터져 시야가 확보된 작은 숲의 나무 위를 좋아한다. 사냥에 유리한 둥지 위치이지만 사람들 눈에 잘 띄기도 한다. 이는 번식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나무 둥지 위에서 흰죽지수리들이 땅다람쥐를 물어 당기며 먹이 다툼을 하고 있다. 먹이 환경이 나빠지면 어미 새는 건강한 새끼에게만 집중적으로 먹이를 주기도 한다.

나무 둥지 위에서 흰죽지수리들이 땅다람쥐를 물어 당기며 먹이 다툼을 하고 있다. 먹이 환경이 나빠지면 어미 새는 건강한 새끼에게만 집중적으로 먹이를 주기도 한다.

둥지의 어린 새는 크기와 깃털 색으로 보아 부화한 지 50여 일 정도 됐다. 서로 먹이를 물어 당기며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카메라와 망원렌즈, 위장 천막과 물, 약간의 음식을 챙겨 다음날 새벽 2시에 다시 산을 올랐다. 이 지역은 일찍 날이 밝아 새벽 4시면 주위가 이미 환하다. 촬영 준비를 끝내니 3시30분이었다. 어미 새도 모르는 틈에 어둠 속에서 둥지 주변으로 접근했기를 바라며 숨을 죽였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의 희망과 달리 어둠 속 침입자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어미 새들이 둥지 위를 날며 경계음을 냈다. 놀란 어린 새들이 둥지에 넙죽 엎드렸다. 잠시 뒤 둥지에서 일어나 어미를 부르듯 '깍깍' 소리를 냈다. 어미 새가 곧 둥지로 날아든다는 신호다.

둥지 위를 날다가 잠시 사라졌던 어미 새 한 마리가 둥지 왼쪽 숲 속에서 별안간 나타났다. 위장 천막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방향이다. 잠시 둥지에 앉는가 싶더니 날아온 방향으로 바로 몸을 돌려 다시 솟구쳐 사라졌다. 한 발에 사냥한 땅다람쥐를 움켜쥔 조심성 많은 암컷이었다. 새벽 2시에 숙소를 나왔으니 7시간30분 만이었다.

생김새 때문에 ‘빵차’라 불리는 러시아제 미니버스가 이번엔 차간우즌강의 독수리 둥지로 향했다. 몽골 국경에서 가까운 코쉬아카츠 읍내에서 기름을 채운 뒤 굉음을 내며 산을 오르고 비탈길을 달린 지 30여 분. 강이 내려다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간신히 걸친 듯한 둥지에 독수리가 서 있었다. 어미는 둥지의 어린 새를 지키며 산 능선에 엎드려 다가서는 침입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둥지로 향했다. 둥지로 가는 길에는 험난한 산지로만 넘나든다는 알타이 아르갈(야생 산양)의 똥자리가 즐비했다.

동행한 시베리아에코센터 엘비라 이사장과 에레나(러시아 조류 가이드)는 지난해에 이어 이곳에서 밴딩 작업(연구를 위해 새 다리나 날개에 인식표를 부착)을 했다. 독수리는 대머리의 볼품없는 외모에 덩치만 크고 동작이 느려 사냥을 못한다. 동물의 사체만 먹고 사는 ‘자연의 청소부’다. 시베리아와 몽골의 살인적인 추위와 바람을 피해 한반도까지 날아와 겨울철 축사에서 나온 죽은 소나 돼지, 닭으로 주린 배를 채우곤 한다. 이렇게 겨울을 ‘버티고’ 굳세게 살아남아 고향 절벽 위에 둥지를 틀었다.

러시아 맹금류 전문가들이 절벽 위에 지어진 독수리 둥지에서 밴딩 작업을 하고 있다.

러시아 맹금류 전문가들이 절벽 위에 지어진 독수리 둥지에서 밴딩 작업을 하고 있다.

말르이바쉬락 지역의 금수리는 많이 자라 둥지를 떠나기 직전이었다. 이소를 유도하는 어미 새는 사냥한 먹이를 들고 둥지로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멀리서 새끼 새를 부르고 있었다. 날짐승 중 금수리는 가장 강한 발톱과 부리를 가지고 있어 알타이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길들여 여우 사냥에 나서기를 좋아한다. 사냥한 먹이를 움켜쥐고 둥지로 들어오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지만 둥지 근처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둥지를 떠날 만큼 자란 어린 금수리. 다 자란 어미새는 다른 맹금과 경쟁해 100km²의 세력권을 확보하고 사냥 때 속도가 시속 200~250km에 이른다.

둥지를 떠날 만큼 자란 어린 금수리. 다 자란 어미새는 다른 맹금과 경쟁해 100km²의 세력권을 확보하고 사냥 때 속도가 시속 200~250km에 이른다.

처음 도착한 노보시비르스크 주변 자작나무 숲에선 긴점박이올빼미 둥지를 찾아나섰다. 펼치면 10m가 넘는 접이식 사다리를 메고 어른 허리만큼 오는 풀을 헤집고 다녔다. 러시아제 위성항법장치(GPS)는 둥지가 있는 나무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땀범벅인 채로 1시간여를 헤매다 찾은 둥지는 비어 있었다. 어린 새들이 하루 전 둥지를 떠난 것으로 보였다. 고생해서 왔는데 참 운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틀 뒤 운 좋게도 야영을 하던 비야 강가에서 어린 긴점박이올빼미를 아침 산책길에 만났다.

야영장 주변 아침 산책길에 만난 어린 긴점박이올빼미.

야영장 주변 아침 산책길에 만난 어린 긴점박이올빼미.

알타이공화국의 수도 고르노알타이를 지나 코쉬아가츠로 이어지는 세민스키 패스를 따라가면 10여 개의 흰발톱황조롱이 둥지가 모인 절벽이 있다. 근처에선 러시아 쪽 알타이 바위그림을 대표하는 칼박타쉬 암각화 유적이 발굴됐다. 애기황조롱이라고도 불리는 흰발톱황조롱이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됐다는 보고가 간혹 있지만, ‘오동정’(잘못된 관찰)이나 증거 부족을 이유로 한국의 야생조류 목록에 아직 포함되지 않고 있다. 메마르고 황폐한 바위투성이 알타이에서 역설적으로 고대의 화려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암각화가 발굴되었듯이 척박한 불모의 땅에서 움트고 자라는 온갖 생명이 신비로웠다.

어린 초원수리가 둥지 밖으로 배설을 하고 있다. 둥지 주변에 리모컨 장치를 한 카메라를 설치해 멀리서 촬영했다.

어린 초원수리가 둥지 밖으로 배설을 하고 있다. 둥지 주변에 리모컨 장치를 한 카메라를 설치해 멀리서 촬영했다.

차량으로 이동 중 만난 초원수리. 사냥을 위해 바위 위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량과 사람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차량으로 이동 중 만난 초원수리. 사냥을 위해 바위 위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차량과 사람에 놀라 날아오르고 있다.

바위산과 초원이 어우러진 알타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탈리아 유리나 제공)

바위산과 초원이 어우러진 알타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탈리아 유리나 제공)

알타이공화국(러시아)=사진·글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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