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열두 살 비트코인 성장기

‘아나키즘 화폐’로 태어나 미 월가 먹잇감으로 큰 비트코인의 역사
등록 2021-06-20 06:52 수정 2021-06-23 05:53
연합뉴스

연합뉴스

다소 누그러졌대도 뉴스 하나, 트위트 하나에 등락을 거듭하는 비트코인 열풍은 여전하다. 2009년 무정부주의 화폐를 꿈꾸며 탄생한 비트코인이 2021년 그저 변동성 강한 자산으로만 인식되기까지 우여곡절을 전한다. 비트코인 스스로 적어본 자서전이다. 암호화폐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움직임도 함께 담았다. _편집자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날 데려가려고 아우성친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나도 날 잘 모른다. 암튼 난 ‘비트코인’이라 불린다.

1. 탄생

생일은 2009년 1월3일. 안타깝게도 부모가 누군지는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라고들 하는데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낳자마자 떠나버린 부모지만 그래도 남긴 것은 있다. 태어나기 두 달 전인 2008년 10월31일 ‘비트코인: 개인 간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썼다.1 그 일기는 누구한테도 통제받기 싫다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특히 정부나 은행 없이도 날 통해서 누구나 물건을 사고팔거나 금융서비스를 할 수 있기를 바랐다.2

그러다보니 날 ‘무정부주의(아나키즘) 화폐’라고 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블록체인이라는 인큐베이터를 통해 건강하게 태어난 첫 번째 ‘전자화폐’가 됐다.3 그러나 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찾는 사람도, 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쓸모가 없었다. 전자화폐라는 꼬리표가 있었지만, 날 갖고 물건을 살 수 없었다.

2010년 5월22일은 특별한 날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개발자 라스즐로 핸예츠가 ‘비트코인 포럼’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에 “1만 비트코인을 줄 테니, 피자 두 판을 배달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근처 피자가게에서 피자를 배달하고, 1만 비트코인을 받아 갔다.4 내가 처음 결제에 사용된 순간이다. 미미하지만 그때부터 내 몸값은 조금씩 올라갔다.

세계 2위 규모 선물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는 2017년 12월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개설했다. AP 연합뉴스

세계 2위 규모 선물거래소인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는 2017년 12월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개설했다. AP 연합뉴스

2. 첫 전성기

피자 두 판과 날 바꿀 수 있었지만 여전히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일본 도쿄에서 날 사고팔 수 있는 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주식처럼 손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소문이 돌자 몸값이 빠르게 올라갔다. 그때 0.06달러였다.5

거래할 곳이 등장하자 <타임> <포브스>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언론들이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소개했다. 몸값은 어느새 10달러를 넘어섰다.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불법 총기류나 마약을 사고파는 ‘실크로드’라는 다크웹에서 현금보다 선호했다. 이때부터 도박·마약처럼 부정적 이미지로 내 이름이 뒤덮였다.6 그러다 이더리움 등 수많은 동생이 태어났다.7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도 기술 하나를 배우기로 했다. 피자 한 판 결제하다가 가격이 달라진다고 놀림받았던 느려터진 거래 능력을 빠르게 고쳤다. 여전히 이더리움보다는 느리지만, 조금 빨라졌다.8 결제 속도가 빨라지자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몸값은 어느새 3천달러. 날 빼닮은 ‘비트코인캐시’라는 동생도 태어났다.9

세계 각지에서 거래할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지고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기회의 땅 미국에 있는 세계 2위 규모의 선물거래소 시카고상품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관심을 보였다. 2017년 12월 이들은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개설했다.10

첫 전성기의 시작이었다. 비트코인 선물 상품이 판매되자 몸값은 금세 1만9천달러까지 뛰었다. 거품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승승장구했다. 꺼지지 않을 불꽃 같았다.

3. 암흑기

한국에서는 더 뜨거웠다. 2017년 1월 119만원이었지만 그해 12월 2160만원을 넘어섰다. 불과 1년 사이 몸값이 10배 이상 올랐다. 전세계 어디서든 사고팔고 거래할 수 있었지만, 유난히 한국에서 더 비쌌다. 사람들은 ‘김치프리미엄’이라고 했다.11 몸값이 크게 오르자, 너도나도 거래소를 찾아왔다. 부르는 게 값이었다. 눈만 깜박여도 값이 큰 폭으로 뛰었다. 사람들은 나를 화폐가 아닌 투기 수단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정부가 움직였다.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측보다 강한 정부 방침에 사람들은 움찔했다. 투기해서라도 다른 이들이 돈 버는 것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공포가, 정부의 압박으로 하루아침에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에 밀려났다. 가격은 하루아침에 600만원까지 내려앉았다. 공포가 공포에 밀려, 모두가 공포에 빠졌다.

물론 가격이 폭락한 것은 한국 때문만이 아니었다. 전세계 실물경제 불황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실제 폐쇄하면서 극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날 버리고 떠났다. 하지만 조용히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내가 신기했는지, 비로소 숨겨진 능력과 가치를 봤다.12 별다른 기술이 없다고 여겼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중요한 기술이 발견됐다. △탈중앙성 △위·변조 불가성 △이중지급 불가성 △투명성 등이다.13 이런 특징을 가진 날 ‘화폐’(Currency)라고 부르는 부류도 있지만, 화폐가 아니라 가치를 지닌 무언가 정도라고 규정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논쟁이 생긴 것은 사실 부모 때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정부 같은 신용기관이 없어도 지급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나를 표현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암호화폐’(Cryptocurrency)라고 불렀다.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화폐로 태어났고 실제 결제에 사용되니 ‘화폐’가 맞다는 주장이다.14

반면 화폐가 아니라는 쪽은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초당 4~5개밖에 결제를 못하고 심지어 결제 완료까지 최소 15분 이상이 걸린다. 이는 국경을 초월해 전세계 사람들이 동시다발로 쓰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어떤 이가 100만원짜리 물건을 결제하려는데, 내 몸값이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 누가 사용할까 싶다. 현재로선 화폐보다는 가치를 가진 무언가인 ‘자산’(Asset)에 가깝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최근에는 암호화폐나 가상화폐가 아니라 가상자산(Virtual Asset), 암호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021년 6월3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 연합뉴스

2021년 6월3일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 연합뉴스

4. 대투기 시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암호화폐의 암흑기는 뜻하지 않게 끝났다. 2019년 12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세계 각국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한 경제를 살리려는 경기부양책으로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풀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등에서 2020년 시장에 푼 돈만 약 7350조원에 이른다. 이 중 미국에서만 4조8500억달러(약 5400조원)가 풀렸다. 한국도 약 286조원이 풀렸다. 여기에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코로나19 이후 기준금리를 0.25% 선까지 내렸다.

이유야 무엇이든 시장에 돈이 풀리고 금리가 제로(0)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넘쳐나는 돈을 투자할 곳을 찾았다. 세계 각국 증시는 실물경기가 침체 국면임에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2020년에만 43.6% 올랐다. 한국 코스피 지수도 30% 넘게 올랐다. 주식시장에 몰린 돈은 부동산과 원자재로 흘러갔다.

그다음 타깃은 바로 암호화폐. 돈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2021년 4월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며 8천만원을 웃돌았다. 화폐냐 자산이냐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번째 전성기, ‘대투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 4대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약 13조8천억원이었다. 각각 15조1천억원, 11조원 수준인 코스피와 코스닥 일거래대금과 맞먹을 정도였다.

몸값이 왜 폭등하는지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찾아봤다. 2030세대가 대거 들어왔다.15 이들은 가진 돈이 없으면 빚내서라도 사모았다. 2030세대가 나를 투자 대상으로 점찍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목돈이 필요한 부동산 투자보다는 소액으로 ‘대박’을 노릴 수 있는 내게로 뛰어들었다. 월급만으로는 ‘사회 계층사다리’를 건너지 못한다는 공포는 2030세대를 투기로 밀어넣었다.

5. 운명

개인들이 투기 대상으로 여길 때, 조용히 다가온 무리가 있었다. 세계 경제와 금융을 좌지우지한다는 미국 월가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 제이피(JP)모건이나 골드만삭스 등은 처음에 나를 ‘사기’ ‘쓸모없는 쓰레기’로 치부했다. 화폐는커녕 자산도 아니라고 깔봤다. 2021년 초 몸값이 치솟자 이들의 눈빛이 180도 바뀌었다. 탐욕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금을 대체할 만한 가치 수단이라는 미명하에 월가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 폴 튜더 존스, 스탠리 드러큰밀러 등을 비롯해 테슬라, 마이크로스트래티지, 넥슨, 매스뮤추얼 등도 사들였다. 난 제도권 금융 시스템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결국 그들에게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먹잇감이 돼버렸다.

재밌는 건 아나키스트 화폐, 기존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릴 무기라고 치켜세우던 이들조차 나를 금융삼품으로 여겼다. 심지어 기존 금융제도권에 편입돼야만 내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들 공공연히 말했다.

내가 앞으로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지금까지 비트코인에 각국 금융 당국이 신경을 안 쓴 이유는 굳이 관심 두거나 규제할 만한 규모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한국 금융 당국 관계자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내 성장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몸값을 모두 더하면 7500억달러(약 838조원)에 이르고, 동생들까지 합하면 2조5천억달러(약 2794조원)를 넘어서기 때문이다.16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투기든 투자든, 화폐든 자산이든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나를 제도권 화폐(법정화폐)로 바꾼다. 나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살아남으려면 기존 금융시스템이나 국가권력에 반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여전히 어디선가 화폐로 쓰는 사람이 있겠지만, 기존 금융시스템을 인정하고 그것에 편입되는 순간 새 금융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은 생각보다 더 빨리 올지 모른다.

박근모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mo@coindeskkorea.com

*<코인데스크코리아>는 한겨레신문사의 자회사 22세기미디어와 블록체인 분야 글로벌 선도 미디어 코인데스크가 함께 만든 블록체인 전문매체입니다. ‘비트코인 탄생 12년’ 특집 기사는 <코인데스크코리아>와 <한겨레21>이 함께 기획했습니다.

1. 암호화폐의 목적, 기술적 특성, 전망 등을 담은 문서로 ‘백서’(White paper)라고 한다.
2.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의 첫 블록에 영국 일간지 <타임스>의 2009년 1월3일 기사 제목을 남겼다. ‘재무장관, 은행에 두 번째 구제금융 임박’. 금융위기에 휘청이는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으로,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정부와 금융권이 있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 셈이다.
3. 블록체인(Blockchain)은 데이터 상자(block)를 연결(chain)한 구조다. 상자에 한번 담은 정보는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4. 라스즐로 핸예츠가 피자 두 판을 주문하고 지급한 1만 비트코인은 현 시가(업비트 기준 1비트코인은 약 4600만원)로 약 4600억원에 해당한다. 피자 한 판에 약 2300억원인 셈이다. 이를 기념해서 블록체인 업계에선 매년 5월22일을 ‘피자데이’라고 한다.
5.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는 2010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문을 연 ‘마운트곡스’(Mt.Gox)다. 마운트곡스는 2014년 2월 비트코인 85만 개를 해킹당한 뒤 파산했다.
6.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현금이나 신용카드와 달리 거래 내용을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사용자 신원은 알 수 없다. 이 탓에 불법거래나 랜섬웨어(악성코드 일종) 등에 비트코인이 이용됐다.
7. 이더리움은 2015년 캐나다 개발자 비탈리크 부테린이 만든 암호화폐다. 비트코인과 달리 스마트계약이라는 기능을 탑재했다. 스마트계약은 정해진 조건이 갖춰지면 자동으로 거래가 성사되는 프로그램이다.
8. 이더리움 결제 속도는 초당 15~30개다. 비트코인은 초당 4~5개다. 참고로 비자(Visa) 신용카드 결제 속도는 초당 5만6천여 건이다. 신용카드는 긁자마자 결제가 완료된다.
9. 비트코인캐시는 2017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하드포크 합의에 불만을 품은 중국 채굴업체 비트메인의 주도로 8월1일 탄생했다. 암호화폐 기능을 업데이트하는 걸 하드포크(Hard Fork) 혹은 소프트포크(Soft Fork)라고 한다.
10. 선물(Futures)은 기초자산이나 다양한 지수로 산출된 금전 등을 특정 시점에 인도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비트코인 선물 상품은 비트코인 가격 지표를 상품화해 판매한다.
11. 김치프리미엄은 국내의 매수 수요가 급증해서 비트코인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2017년 당시 국내외 가격차가 40%에 이르는 김치프리미엄이 발생했다.
12. 2018~2020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폭락기를 ‘크립토겨울’이라고 한다.
13. 비트코인의 네 가지 특성
① 탈중앙성: 은행 등 중개기관(사람의 개입) 없이 프로그램만으로 동작
② 위·변조 불가성: 한번 기록된 내용은 절대 지우거나 변경할 수 없음
③ 이중지급 불가성: 비트코인은 복제할 수 없음
④ 투명성: 모든 거래 내용은 누구나 볼 수 있음
14.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로 탄생한 화폐라는 뜻이다. 디지털 파일의 특징은 ‘복제가 쉽다’인데, 돈은 마구 복제되면 안 되니까 비트코인은 암호화 기술을 활용해 이 기능을 막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