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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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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윈터 이즈 커밍’?

일론 머스크 말에 더해진 중국발 규제 강화 움직임이 하락세 불러와,
6개월 투자자가 가격 하락 주도 3년 투자자는 ‘존버’ 중
등록 2021-05-29 08:07 수정 2021-05-31 03:04
중국 쓰촨성의 비트코인 채굴장 모습. 연합뉴스

중국 쓰촨성의 비트코인 채굴장 모습. 연합뉴스

2021년 4월 사상 최고 가격을 경신한 비트코인 가격이 5월 말 다시 반토막 났다. 투자자들 사이엔 자조 섞인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표현)이 돈다. ‘비트코인 시즌2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3년여의 ‘존버’(주식·암호화폐 하락장에서 상승장이 오길 기다리며 오래 버틴다는 뜻) 끝에 맞은 짧은 봄이 막을 내렸다는 의미다.

중국, 채굴장 폐쇄 발표 이어 블랙리스트 등재 조치

투자자들이 말하는 ‘비트코인 시즌2’의 시작과 끝엔 모두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있다. 일론 머스크는 5월19일 자신의 트위터에 ‘테슬라가 비트코인 결제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비트코인 채굴(암호화폐의 거래내역을 기록한 블록을 생성하고 그 대가로 암호화폐를 얻는 행위)과 거래에 드는 어마어마한 전력량이 탄소배출 절감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3월 말에 테슬라는 현금뿐 아니라 비트코인으로도 자사 전기차를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뿐 아니라 다른 암호화폐 가격도 일제히 올랐다. ‘암호화폐 그거 다 투기 아니냐, 실제 암호화폐로 살 수 있는 게 뭐가 있냐’는 회의론자들의 비웃음에 ‘비트코인 한 개로 테슬라 모델3 한 대 뽑을 수 있다’고 응수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의 트위트로 한 달 반도 안 돼 상황이 반전됐다. 개당 4만3천달러가량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3만1천달러까지 떨어졌다. 4월15일 기록한 약 6만3천달러라는 신고가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5월26일 오후 10시 현재는 4만달러 수준을 겨우 회복한 상태다.

일론 머스크와 더불어 중국발 규제 강화 움직임도 이번 가격 하락에 크게 한몫했다. 중국 인터넷금융협회와 은행업협회, 지급결제협회 등은 5월19일 회원인 금융기관이 암호화폐 거래나 펀드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성명을 냈다. 중국의 행정부 격인 국무원도 5월21일 암호화폐 채굴장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5월25일 값싼 전기료 때문에 대규모 채굴장이 몰려 있는 네이멍구(내몽골)자치구에서 좀더 구체적인 제재안이 나왔다. 네이멍구자치구는 기업이나 개인이 채굴업자에게 부지나 전력 등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되면 금융서비스 이용과 해외여행 등에 제한을 받는 ‘블랙리스트’에 등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금지령’은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일찍이 2013년 금융기관의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 제공을 막았다. 2017년엔 신규 암호화폐 발행(ICO)과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거래 서비스를 막았다. 하지만 채굴 행위, 그것도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채굴까지 본격 단속하는 건 처음이다. 중국에는 전세계 비트코인 채굴 시설의 65% 이상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채굴장이 밀집한 중국 지역에 자연재해가 일어나 전기료가 올라가면 전세계 비트코인 가격이 영향받았다.

앞선 ‘암호화폐 겨울’과 다른 점

이번 하락세가 앞선 ‘암호화폐 겨울’(2018~2020년)과 구별되는 점이 또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 현물 거래 중심으로 돌아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레버리지와 선물,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등 투자 수단이 더 다양해졌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그만큼 복잡해졌다는 뜻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연구진은 암호화폐 파생상품 시장이 커질수록 변동성 장세가 소규모 개인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치명적으로 바뀔 거라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현재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량이 그 기초 자산이 되는 현물 시장 거래량보다 커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소규모 개인투자자는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반면 기관을 비롯한 대규모 투자자는 상승 가능성뿐 아니라 하락 가능성에도 고르게 베팅한다. 구조적으로 개인투자자가 손해 볼 가능성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FTX와 바이낸스 등 암호화폐 거래소는 암호화폐 가격이 1배 상승하면 증거금(이용자가 맡긴 돈)의 100배까지 수익을 낼 수 있는 레버리지 상품을 운영한다. 가격이 예측과 일치하게 움직이면 현물보다 큰 수익이 나지만, 반대로 움직이면 청산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번 하락장을 예측하지 못하고 상승 포지션을 유지한 투자자들은 증거금을 강제 청산 당하는 등 큰 손해를 봐야 했다. 국내에선 한 유명 암호화폐 유튜버가 40억원 가까운 자산을 강제 청산 당한 사실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레버리지 상품을 통한 매도가 추가적인 매도를 낳으면서 더 큰 폭의 가격 하락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과거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면, 운용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기관투자자도 ‘물렸다’(손실을 봤다)는 점이다. 개인에 비해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기관조차 손쓰지 못했을 정도로 이번 하락장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암호화폐 데이터업체 ‘비트코인 트레저리’에 따르면 5월26일 기준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공시한 전세계 주요 기업 중 6곳이 이번 하락장에서 손실을 봤다. 이 중엔 게임회사 넥슨의 일본 법인과 중국 IT 기업 메이투,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등도 포함됐다. 예컨대 넥슨은 4월 말 개당 5만8226달러(약 6500만원)에 비트코인 1717개를 샀다고 공시했다.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넥슨은 원금의 34%가량을 잃은 셈이다.

‘존버’하는 호들러가 저가 매수 중

암호화폐 거래 정보는 은행 거래 정보와 달리 지갑 주소만 알면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다. 블록체인에 거래 정보가 투명하게 저장·공개되기 때문이다. 이에 어떤 성향을 가진 이들이 어떤 암호화폐를 사들이거나 팔아치우는지 추적하면 대략적인 가격 변화 예측이 가능하다. 물론 시장엔 언제든 예측 불허 변수가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블록체인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기업들은 1~3년 전 비교적 낮은 가격에 암호화폐를 구매한 호들러(Hodler, ‘holder’의 변형으로 암호화폐 장기투자족을 의미)들이 계속 ‘존버’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글래스노드는 “최근 6개월 사이 암호화폐를 구매한 신규 투자자들의 공포심에 따른 급격한 매도가 이번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또 다른 분석 기업 크립토퀀트는 호들러들이 한발 더 나아가 저가 매수 중이라고 분석했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re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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