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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빚 ‘폭탄’인데, 왜 무덤덤할까?

2021년 예산안 재정수지 -3.6% 예상… “일단 낸 빚 잘 써야”

제1330호
등록 : 2020-09-11 20:19 수정 : 2020-09-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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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6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코로나19 이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변화를 두고 ‘50년을 이어온 한 시대의 원칙이 하나둘 흐릿해지는 조짐’이라고 적었습니다.(제1307호 ‘바이러스 재난이 국가를 소환했다’) 조짐은 이제 좀더 명확하게 적힙니다. ‘이미 큰 흐름에서 정책 환경의 세팅은 끝났다. 민간은 정부가 책임지고 정부는 중앙은행이 책임지는 구조다.’(삼성선물, ‘정부와 연준의 잠재적 갈등, Tail-Risk에 대해’) 

지난 이야기 - 빚이 늘어도 이자는 줄었다

정부는 9월1일 2021년 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뒤이어 10일, 2020년 네 번째 추가경정예산안도 발표했습니다. 예상대로, 다른 나라들처럼 재정 적자가 불어납니다. 여기 얽힌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국가채무가 늘어남에도 ‘나랏빚 폭탄’ 유의 비판(지난 이야기)이 왜 더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지(뜨는 이야기),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진짜 잠재적 위험은 무엇일지(반전 이야기)를 씁니다.

내년 예산 규모는 555조8천억원입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줘 8.5%, 추가경정예산(3차)에 견줘 1.6% 늘어난 수준입니다. 재정수입은 0.2%(본예산 대비) 늘어나는 데 그칠 거로 내다봅니다. 많이 쓰고 적게 버니 재정수지는 당연히 악화합니다. 국내총생산(GDP)에 견준 통합재정수지 적자 폭은 2021년 -3.6% 정도 되리라고 봅니다.

몇 해 전을 생각하면 놀라운 숫자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통합재정수지 -3%는 넘을 수 없는 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국가채무(945조원)는 GDP 대비 46.7%, 올해보다 4.9%포인트 정도 올라갈 거로 보입니다.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 ‘해마다 초슈퍼 예산 남은 건 나랏빚 폭탄’(<중앙일보>)이고 ‘빚 1천조 물려준다’(<조선일보>)고 걱정합니다. 1천조, 폭탄이라는데 발 빠르다는 주식시장은, 덤덤합니다. 코스피지수는 제 갈 길을 가며 조금 오릅니다(9월1일, 전 거래일 대비 1.01% 상승). 국가부채의 절대 액수는 이제 큰 공포를 자아내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재정 여력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대목은, 원래도 쌓아온 빚의 규모 자체만은 아니었습니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건 ‘부담을 늘리지 않으며 계속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가’(이자비용)와 ‘시장의 다른 영역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가’(구축효과)입니다.

세입이 부족할 때 정부는 국채를 찍어 돈을 끌어옵니다. 이때 중요한 건 ‘금리’입니다. 대개 정부의 실질적인 부담은 빌려온 돈에 대해서 매년 지급해야 할 이자비용(금리)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국가채무를 줄이라는 압박이 온다면 당혹스럽겠지만, 유난히 안정적으로 재정을 운영해온 우리 정부한테, ‘원금을 갚아내라’고 빚쟁이가 들이닥칠 위험은 극히 낮으니까요. 우리 국채에서 외국 채권자 비중이 2018년 기준 12.5%로 적은 편이기도 합니다(OECD 평균 37.3%). 그래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GDP에 견주려면 오랫동안 쌓아온 국가채무가 아니라, 이자비용을 봐야 적절하게 재정 부담을 가늠할 수 있다”(우석진 명지대 교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자비용은 꾸준히 감소했습니다. 정부가 돈을 끌어오기 위해 평균적으로 치른 비용 수준, 그러니까 국고채 평균 조달 금리는 2010년 4.48%에서 2019년 1.57%까지 가파르게 내려갑니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와 재정건전성 리스크’)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상황이 지속했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 더해 거시경제(환율·재정 등) 안정성만은 다른 나라들에 견줘 탁월하게 지켜온 덕(혹은 탓)에 한국 국채 인기가 높기도 했습니다.(인기가 많으면 굳이 비싼 비용(금리)을 치러가며 돈을 빌릴 필요가 없겠죠?) 이에 따라 GDP 대비 국고채 이자 비율은 2010년 1.14%에서 2019년 0.85%까지 내려옵니다. 재정 규모가 커지고 그만큼 빚도 더 냈지만, 실제 부담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 간 데 없이 빚을 내도 될까? 모든 경제 사정이 그렇듯 지켜야 할 ‘선’은 있습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시장 금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어떻게? 정말 거칠게 적어봅니다. 예를 들어 100만큼의 국채가 있던 시장에, 정부가 “재정지출을 위해 빚내야 하니 이것도 사주시오” 하고 100만큼의 국채를 추가로 던진다고 생각해봅시다. 수요가 일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공급이 늘어납니다. 이제 국채를 사줄 사람은 거드름을 피울 겁니다. “더 높은 금리를 주면 살지 말지 생각해볼게.” 시장에서 국채 금리가 올라갑니다. 정부가 돈을 끌어오는 데 부담(이자)은 늘어납니다.

여기서만 그치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그런데 국채 말고 다른 채권들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국채는 모든 채권 금리의 가장 밑바탕에 있습니다. 한 나라의 시장 안에서 국채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기는 어렵습니다.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 금리도 올라갑니다. 기업은 울상을 짓습니다. “이제 투자 좀 해보려고 했는데, 못 빌리겠다.” 시중은행 금리도 올라가겠죠. 은행 대출을 생각하던 누군가도 울상을 짓습니다. “빚내서 이거저거 좀 사보려고 했더니만.”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으로 전반적인 금리가 올라가고, 민간에서 돈이 필요한 이들이 돈을 구할 수 없게 되고, 성장이 정체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것을 재정의 ‘구축효과’라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구축효과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극단적인 사례일 뿐입니다. 갑작스레 금리가 오르기에는 저성장의 규모와 깊이가 엄청나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믿고 있습니다.

8월27일 온라인으로 중계된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뜨는 이야기 - 정부의 적자가 상황의 버팀목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에서 뜨는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중앙은행은 경기과열, 그러니까 인플레이션과 잘 싸웁니다. 다만 실물경제의 저성장을 구원하는 데는 약한 모습입니다. 금리를 낮춰 돈을 풀면 될까요? 경기가 불확실할 때 무작정 풀어낸 돈은 특정 자산으로 쏠립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이건 다시 저성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효과적으로 필요한 곳에 재정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합니다. 중앙은행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위해 막대한 빚을 끌어와도, 이자 부담을 덜 수 있게 저금리 상태를 유지해주는 역할로 한발 물러섭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믿게 된 이야기입니다.

지난 몇 달을 돌아봅니다. 크고 작은 일들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5%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소소한(?) 일도 있었습니다. 4차 추경에 따른 국채 추가 발행 우려로 9월 들어 시장에서 국채 금리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한국은행이 5조원어치 국채를 사주겠다고 발표하고, 금리는 다시 안정을 찾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각종 정책을 내고 최근 들어 ‘앞으로 단기간 물가가 좀 오른다고 해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AIT, 평균물가목표제)고 선언합니다. 정부를, 적자재정을 온 힘을 다해 지원합니다. 예전 같으면 충격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던 재정 적자 수준이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환경입니다. 사실 정부의 적자가 지금을 버티게 해줄 유일한 버팀목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 반전의 위험은 없을까? 조금은 의심을 품어보기로 합니다. “지금의 믿음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가 모르는 세상으로 가고 있는데 단선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위험할 것 같다.”(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반전 이야기 -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저금리 환경, 그로 인한 재정지출 확대가 별다른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물가만 가파르게 오른다면? 더군다나 미국 같은 특정한 나라는 회복했는데 우리만 헤매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의문문인 이유는 말 그대로 테일리스크(벌어질 가능성은 작지만 한번 벌어지면 큰 재앙이 되는 위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상상해봅니다.

돈은 유달리 풀려 있고, 재정정책은 상대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잘 만듭니다. 동시에 지속적인 저금리는 경제구조를 왜곡(자원의 비효율적 배분, 좀비기업의 양산, 불균형 등)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 경제의 고른 성장과 무관하게 물가만은 가파르게 오를지도 모릅니다. 더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 중앙은행이 갑자기 엄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저금리를 유지하지 않고 이제는 물가도 잡고 왜곡된 자원 배분도 막을 것’이라고 선언해버린다면? 끔찍합니다. 중앙은행만 믿고 정부도 민간도 빚을 늘려놓은 상황입니다. 이런 반전이 벌어지면 경제주체 모두 갑자기 큰 이자 부담을 집니다. 정부조차 도울 여력이 사라집니다.

한국은행이 그럴 리 없다고 해도,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손쓸 도리도 없이 위험에 놓입니다.”(우석진 교수) 더 높은 금리를 준다는 세계 최강 안전자산 미국 국채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우리 국채는 인기를 잃고, 외화가 유출되고, 그러니 우리도 금리를 따라 올리지 않을 수 없고… 여기까지만. 다시 한 번, 금리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가능성이 낮은 상상의 영역입니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믿는 것만으로도 시장은 먼저 출렁일 수 있습니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상상일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모르는 세상’을 지나고 있습니다. 결국 “기왕 빚내서 끌어온 재정을 정말 잘 써야 한다”(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익숙한 결론으로, 다만 조금 더 절박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언제 올지 모를 반전의 시점까지 성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정부가 이번 예산안의 간판으로 내걸고, 투자자들이 알아서 몰려가는 한국판 뉴딜 수혜 기업과 주주만으로 될 일은 아닙니다. 되도록 많은 국민이 성장의 수혜를 고르게 나눠 받아야 하고, 저금리로 불거지는 시장 왜곡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여느 때보다 큰 힘을 가진 정부는 그만큼 현명할 수 있을까요? ‘뜨는 이야기’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풀어낸 적자재정이 해야 할 일의 무게는 ‘반전의 가능성’ 앞에 한껏 무거워집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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