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노무현의 꿈 행정수도 이전, 국민들은 지지한다

수도권 인구 분산으로 주택 수요 감소 효과 ‘긍정적’
등록 2020-07-25 05:22 수정 2020-07-29 07:40
세종시 중심부 모습. 세종시 제공

세종시 중심부 모습. 세종시 제공

문재인 정부 집권 뒤 폭등한 부동산값이 결국 ‘민주당’의 해묵은 과제인 행정수도 이전 정책까지 불러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포문을 연 행정수도 이전 제안은 당대표 후보들과 잠재적 대선 후보들의 전폭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이 협조할지 불확실한데다 청와대 역시 유보적이어서 이 정책이 실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7월20일 김태년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행정수도를 제대로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 국회가 통째로 세종시로 내려가야 한다. 청와대와 (서울에 남아 있는) 정부 부처도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렇게 해야 서울·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21일엔 “사회적 논의를 위해 국회에 행정수도 완성 특위를 구성하자”고 야당에 제안했다.

여당 원내대표 이어 대선 후보들도 찬성 뜻

이날 김 대표의 제안에 지지가 쏟아졌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21일 “국가 균형발전 역할을 선도할 수 있다”고 환영했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이낙연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을 목표로 여야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시 당대표 후보인 김부겸 전 의원도 “수도권 일극 중심 체제를 해소할 해법은 행정수도”라고 밝혔다. 민주당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수도권 집중은 부동산 가격 폭등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거들었다. 역시 잠재적 대선 후보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행정수도 이전을 계획했던 대로 추진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심지어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도 정진석·장제원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찬성 뜻을 밝혔다.

여론조사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7월22일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맡겨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조사한 결과, 행정수도 이전에 찬성한 사람은 53.9%, 반대한 사람은 34.3%로 찬성이 반대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많았다. 반대가 많거나 찬반이 팽팽했던 과거의 조사 결과와는 확연히 달랐다.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은 2004년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결정에 따라 중단됐다. 그러나 세종시로 이전한 정부 부처와 서울에 있는 국회·청와대의 거리가 멀어 정부 업무에 지장이 많았다. 이에 따라 국회는 세종시에 분원을 설치한다면 상임위원회 17개 중 10개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을 옮기는 방안이 가장 타당하다는 연구 결과를 2019년 8월 발표했다. 국회 분원 설계비 10억원도 2020년 예산에 배정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청와대는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세종시에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흐름을 막아섰다.

전문가들은 국회와 청와대의 이전은 부동산값 안정 효과를 낼 것으로 봤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은 “국회와 청와대가 세종시로 가면 서울의 주택 수요는 확실히 줄어든다. 적잖은 공무원이 이동하고, 세종시로 이주하지 않았던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도 옮겨갈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2017년 국회의 ‘국회 분원 설치의 타당성 연구’ 보고서를 보면,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7만 명 넘는 인구가 지방으로 이주하고, 30년 동안 지방에 5조원의 생산 효과가 이전된다.

“세종시 투기 이전 우려… 보유세 강화가 정공법”

상징성과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국가가 지향하는 바가 지방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다. 또 국회나 청와대뿐 아니라 정부 관련 민간단체들까지 이전을 촉진할 것이다. 함께 논의 중인 수도권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서울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세종시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김성달 부동산건설개혁본부 팀장은 “서울에서 부동산 투기가 줄 수 있지만, 그만큼 세종시로 투기가 이전될 수 있다. 부동산 투기 자체를 잡으려면 보유세 등 세금 정책으로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헌재의 위헌 결정 문제도 남아 있다. 2004년 헌재는 법률을 통해 수도를 이전하는 건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에 어긋난다며 노무현 정부의 행정수도 건설 정책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또 관습헌법을 변경하려면 성문헌법에 수도 관련 조항을 새로 넣어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려면 원칙적으로 개헌해야 한다. 2018년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재 김태년 대표가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은 개헌이 아니라, 기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개정하는 방식이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여야 합의로 행정도시특별법을 개정해 국회와 청와대를 옮긴다면 헌재가 다시 위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주호영 원내대표는 “헌재 결정에 따른 국회·청와대 이전의 위헌성을 해소해야 한다”며 법률 개정 방식에 반대한다. 또 여야가 합의하더라도 노무현 정부 때처럼 반대하는 이들이 헌법소원을 내면 또다시 ‘정치 문제’가 ‘사법화’된다. 따라서 개헌을 통해 수도 조항을 넣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문제는 개헌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현재 논의 중인 국회 분원과 대통령 제2집무실을 먼저 만들어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개헌 시기에 수도 조항을 포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행정수도 논의 과정

세종시 행정수도 논의 과정


청와대는 “수도 이전은 개헌 사항” 미지근

또 하나 불확실성을 더하는 건 청와대의 소극적인 태도다. 김태년 대표의 행정수도 이전 제안에 청와대 관계자는 “여야 논의와 국민 여론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법률이 아니라 헌법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018년 개헌안 제출 때 수도 조항을 포함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법률 개정 방식 추진에서 빠지겠다는 뜻이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현재 상태에서도 국회 분원과 대통령 2집무실은 설치가 가능하고 개헌하면 더 확실히 이전할 수 있다. 문제는 지난 3년 동안 균형발전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청와대가 과연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다. 그것이 이번 일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