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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꿈과 절망, 밀레니얼의 저금리 생존기

등록 2020-07-04 07:04 수정 2020-07-14 08:02
증권·부동산·금융상품 투자 관련 어플리케이션이 깔린 스마트폰 화면. 박승화 기자

증권·부동산·금융상품 투자 관련 어플리케이션이 깔린 스마트폰 화면. 박승화 기자

1985년 L과 C가 태어났다. 1986년 K와 B와 S가 태어났다. 1996년 P가 태어났다.

바꿔 적는다.

7.8% 성장과 10% 예금금리 속에 L과 C가 태어났다. 11.3% 성장과 10% 예금금리 속에 K와 B와 S가 태어났다. 7.9% 성장과 10.8% 예금금리 속에 P가 태어났다. 갓 태어난 이들을 묶어 부를 이름은 아직 없었다.

고성장·고금리를 가리키는 숫자 안에서 엄마 아빠가 해야 할 일은 명료했다. ‘우직하게 일하라, 아껴라, 은행에 묻어라.’ 졸라매는 게 버거운 날에 숫자는, 또한 가능성을 이르며 토닥였다. 임금은 상승한다. 은행에 넣어둔 돈에 복리가 붙어 두 배가 되는 데 7~8년이면 족하다. 옆집도 앞집도 너희 집도, 언젠가 그렇게 ‘부를 쥘 수 있다’.

2020년. 그때 그 명료한 지침과 가능성의 세계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제 그때 그 부모 나이가 됐다. 이제 이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에게 주어진 숫자는 달라져 있다.

-1.2%(OECD, 6월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 1.07%(5월 은행권 저축성 수신금리), 0.5%(기준금리).

저성장·저금리를 가리키는 숫자 안에서 직장생활 7~8년차, 취업준비생 시절을 난다. 결혼을 생각하고, 자취방을 벗어나고 싶고, 취업을 노린다. 가만히 숫자를 본다. 엄마 아빠에게 그러했듯 이번에도 숫자는, 해야 할 일과 가능성을 전해줄 것이다.

따져본다. 은행에 고이 현금을 넣어뒀을 때 복리를 고려해도 두 배가 되기까지 기간은 어림잡아 70년이다. 그렇다면? 엄마 아빠의 방식은 분명 아니다. 부는 더 이상 임금과 저축으로 이룰 수 없다. 그런데 금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돈은 풀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아주 적은 어떤 기회로만 쏠릴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을 찾아낸다. ‘기회가 더 줄어들기 전에 예민하게 돈이 쏠리는 자산을 찾아내야 한다. 거기 올라타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코로나19로 역대급으로 위축된 경제, 반면 여념 없이 팽창하는 아파트 가격과 몇몇 기업의 주가를 보며 확신은 굳는다.

“투자 성공 스토리를 친구들이 수집해서 계속 알려줘. 걔들도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그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르잖아. 돼야 하잖아.”(K) 가능성은 흐릿하다. 그래도 결의는 굳다. 해이해지려던 마음을 메신저 창을 채운 소문들이 조이고 북돋는다. 힘을 얻는다. 적은 기회, 일말의 희망을 찾아 떠돈다. 유튜브로 팟캐스트로 공부한다. 때로 대화방 ‘주식 리딩방’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주식을 사고판다. ‘리더’(자칭 전문가)가 하라는 대로. 부를 둘러싸고 달린다. 쫓기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에는 동학개미운동의 주역이라고 부른다. 감탄하거나 우려한다.

판단은 정지하기로 한다. 그저 묻는다. 무엇이 너를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너를 들뜨게 했는지… 듣는다. 아득한 부에 닿으려 고생한 얘기, 성공한 얘기, 좌절한 얘기, 부심과 포기 사이 혼란스러웠던 마음… 고민한다. 11.3%, 10%의 세계에서 태어나 -1.2%, 1.07%, 0.5%의 세계에 적응하는 사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을까. 이대로 괜찮은 걸까.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1320호 표지이야기 밀레니얼 저금리 생존법
1. 모두 자산시장에 입성했습니까?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8900.html
2. 온라인 ‘주식 리딩방’ 24시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8901.html
3. 경기냐 구조냐…저금리·저성장 원인은?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489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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